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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4·3희생자 추념일 ― 교과서 밖에서 시작된 나의 첫 질문 스무 살이 되고 나서야 나는 내 몸을 제대로 느끼기 시작했다. 강의실로 가기 전 거울 앞에 서서 옷을 고르고, 어깨선과 허리선을 살피며 오늘의 나를 확인하는 순간들. 그렇게 살아가는 평범한 대학생의 하루 한가운데, 달력 속 ‘4월 3일’이라는 숫자가 갑자기 나를 붙잡았다. 4·3희생자 추념일. 분명 교과서에서 본 단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는 기억이 흐릿했고 감정은 없었다. 지금의 나는 다르다. 숨 쉬고, 걷고, 내 몸의 감각을 또렷이 느끼는 지금의 내가 이 날짜를 다시 마주한다는 사실이 묘하게 무거웠다. 교과서 밖에서, 아주 개인적인 질문 하나가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이름, 다시 마주한 순간 고등학생이었을 때의 나는 빠르게 지나갔다. 시험 범위에 포함된 사건명, 연도, 그리고.. 2025. 12. 29.
4월 1일 수산인의 날, 바다에서 식탁까지 이어진 하루 아침 공기가 아직 차가운 날, 강의실로 가기 전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묶다가 문득 바다가 떠올랐다. 스무 살이 된 나는 이제 대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도시의 리듬 속에 살고 있지만, 몸 어딘가에는 여전히 짠내와 파도의 기억이 남아 있다. 살짝 드러난 어깨와 허리선, 단단해진 다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몸이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누군가가 새벽의 바다로 나갔기 때문이라는 걸. 4월 1일 수산인의 날은 달력 속 작은 글자지만, 그 하루는 결코 작지 않다. 수산업과 어촌의 가치를 알리고, 수산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되새기기 위해 만들어진 이 날은 내 일상과도 은근히 맞닿아 있다. 오늘은 바다에서 시작해 식탁에 닿기까지의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온몸으로 건너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 천.. 2025. 12. 29.
3월 24일 결핵 예방의 날 ― 결핵은 과거형일까?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건 스트레칭이다. 잠에서 덜 깬 몸을 일으켜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묶는다. 쇄골과 어깨선이 드러나는 민소매를 입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오늘도 잘 살고 있다는 감각, 몸이 나와 잘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 그런데 어느 날, 평소처럼 넘기던 기침 하나가 마음에 걸렸다. 그날이 3월 24일, 결핵 예방의 날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이상하게도 ‘결핵’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교과서 속 문장이 아니게 느껴졌다. 우리는 결핵을 오래전 가난한 시절의 병, 흑백사진 속 이야기로 밀어두었다. 항생제가 있고 병원이 가깝고, 건강에 대해 말하는 콘텐츠가 넘쳐나는 지금의 일상에서는 이미 끝난 이야기처럼 취급한다. 하지만 내 20살의 하루는 늘 빽빽하다. 강의실, 카페, 도서관, 대중교통... 2025. 12. 29.
3월 21일 암 예방의 날, 검진과 예방은 다르다는 이야기 아침 햇살이 커튼 틈으로 스며들 때, 나는 아직 잠기 덜 깬 몸으로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다리를 늘어뜨린다. 스무 살, 대학 새내기라는 말은 가볍게 들리지만, 몸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강의실 계단을 오르내리며 느끼는 허벅지의 단단함, 밤늦게 과제를 하다 보면 배 속에서 올라오는 묘한 긴장, 그리고 거울 앞에서 옷을 고를 때 마주하는 나 자신의 실루엣. 3월 21일 암 예방의 날은 이런 일상의 한가운데서 나를 멈춰 세운다. 아직 젊고 건강하다고 믿는 지금, 왜 굳이 ‘암 예방’이라는 단어를 꺼내야 할까. 이 날은 2006년 10월 27일 「암관리법」 개정을 통해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암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높이고, 예방·치료·관리 전반에 대한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서다. 국가가 굳이 날.. 2025. 12. 28.
3월 15일 3ㆍ15의거 기념일 - 그날, 거리에서 시작된 민주주의 봄기운이 막 올라오는 캠퍼스에서 나는 스무 살의 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얇은 니트가 어깨선을 따라 흐르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다리 근육이 탄탄하게 반응한다. 거울 속 내 몸은 아직 미완성 같지만, 그래서 더 솔직하다. 새내기 특유의 어색함과 과감함이 동시에 깃든 몸. 강의실로 가는 길, 달력 앱 알림이 잠깐 뜬다. 3월 15일, 3ㆍ15의거 기념일. 순간 숨이 멎듯 멈춘다. 투표권도, 발언도 너무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처럼 살아왔는데, 그 자연스러움이 사실은 누군가의 상처 위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스친다.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교과서에선 늘 단정했지만, 현실 속에서는 땀과 체온, 분노와 두려움이 뒤섞인 상태였을 것이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내 몸의 감각을 느낀다. 숨, 맥박, 긴 다리의 균형.. 2025. 12. 28.
3월 11일 흙의 날, 지구의 피부를 돌아보는 날 나는 가끔 맨발로 흙 위에 서 본다. 도시의 바닥은 늘 차갑고 매끈한데, 흙은 다르다. 발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온기와 미세한 요철, 숨 쉬듯 미묘하게 변하는 감촉이 몸을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깨운다. 3월 11일, 흙의 날은 그런 감각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날이다. 우리는 흔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환경을 말하고, 바다를 떠올리며 위기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정작 매일 밟고 서 있는 흙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잊는다. 흙은 지구의 피부다. 피부가 상처 입으면 몸 전체가 아프듯, 토양이 망가지면 생태와 인간의 삶도 함께 흔들린다. 이 날은 거창한 선언보다, 나의 몸과 흙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솔직하게 느껴보는 시간에 가깝다. 흙 위에 앉아 치마 자락이 조금 더러워져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내가 자연의 .. 2025.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