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시간대의 지하철. 열차 문이 닫히기 직전, 누군가는 짧게 전화를 받았다가 급히 끊고, 누군가는 휴대폰을 귀에서 떼지 않은 채 주변을 한 번 더 훑어본다. 어떤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어떤 사람은 굳이 필요 없어 보이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먼저 꺼낸다. 그 장면에는 단속도 없고, 명확한 처벌 규정도 없다.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없는 행동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미 몸으로 반응한다. 시선을 피하고, 설명을 준비하고, 때로는 이유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 장면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에서 반복되는 익명적 장면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익숙한 장면이 일본에서는 ‘민폐’라는 말로, 한국에서는 ‘눈치 없는 행동’이라는 말로 다르게 정리된다는 사실이다. 같은 행동을 두고도 사회가 붙이는 이름이 다르다는 것은, 그 행동을 해석하는 경로 자체가 다르다는 뜻이다.

규칙은 무엇을 기준으로 작동하는가
일본과 한국은 모두 규칙이 촘촘한 사회다. 그러나 규칙이 작동하는 기준점은 다르다. 일본에서 규칙은 법 이전에 ‘공동 이용의 흐름’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설명된다. 공공장소의 안내문을 보면, 금지나 처벌보다 “주변 분들께 불편을 드립니다”라는 표현이 먼저 등장한다. 규칙은 국가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명령이 아니라, 이미 공유되고 있다고 전제된 이용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배치된다. 그래서 규칙을 어겼을 때 중요한 것은 의도나 사정이 아니라, 그 행동이 흐름을 끊었는가 여부다. 반면 한국에서도 규칙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그 규칙은 항상 동일한 강도로 적용되지 않는다. 같은 행동이라도 시간대, 장소, 주변 사람의 구성에 따라 문제로 지적되기도 하고 넘어가기도 한다. 규칙이 있다는 사실보다, 그 규칙이 ‘지금 이 상황에 적용되는지’가 중요해진다. 이때 규칙은 고정된 기준이라기보다, 관계 속에서 해석되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결국 두 사회의 차이는 규칙의 엄격함이 아니라, 규칙을 판단하는 기준이 어디에 놓여 있는가의 차이다.
규칙을 어겼을 때, 누가 반응하는가
규칙 위반에 대한 반응 방식은 그 사회가 갈등을 처리하는 방법을 드러낸다. 일본에서는 규칙을 어겼을 때 대부분 직접적인 지적이 발생하지 않는다. 대신 주변의 시선이 잠시 머물고, 대화가 끊기며, 공간의 공기가 미묘하게 바뀐다. 그 침묵은 애매하지만 분명한 신호다. 문제는 말로 설명되지 않지만, 행동의 결과는 즉각적으로 전달된다. 한 번 ‘민폐’로 인식되면, 그 인식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사과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규칙 위반이 비교적 빠르게 언어로 표면화된다. “여기서는 그러시면 안 됩니다”라는 말, 표정이 섞인 지적, 혹은 이유를 묻는 질문이 등장한다. 충돌은 발생하지만, 동시에 설명과 사과, 상황 정리의 여지도 생긴다. 그 과정에서 감정 소모는 개인에게 남지만, 관계를 회복할 경로는 열려 있다. 일본의 제재는 조용하지만 되돌리기 어렵고, 한국의 제재는 시끄럽지만 조정 가능하다는 점에서, 두 사회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부담을 개인에게 넘긴다.
개인은 어떤 계산을 학습하게 되는가
이 구조 속에서 개인이 학습하는 것은 규칙 그 자체가 아니라 계산 방식이다. 일본에서 개인은 늘 보이지 않는 타인의 불편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 행동이 누군가의 이용 흐름을 방해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은 행동 이전에 자동으로 작동한다. 규칙을 어기지 않았더라도, 민폐로 읽힐 가능성이 있다면 행동을 줄이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한국에서 개인은 관계 반응을 먼저 계산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이 행동이 어떻게 보일까”, “괜히 말이 나오지는 않을까”라는 질문이 앞선다. 규칙의 존재보다, 그 규칙을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이 판단 기준이 된다. 여기서 잠시 멈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긴장은 정말 개인의 눈치 부족이나 배려 부족 때문일까. 아니면 그렇게 계산하도록 요구받는 구조 속에서 오랫동안 생활해 온 결과일까. 이 질문은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규칙을 어겼다는 평가가 개인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가 설계한 해석 경로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조용히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