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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생활·직장 맥락에서 ‘약속을 지킨다’는 말이 다르게 작동하는 방식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상대는 이미 와 있었고, 말은 없었다. 몇 분이 지나자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반대로 정확히 맞춰 도착했는데도, “조금 기다렸어요”라는 말이 덧붙는 장면도 낯설지 않다.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상적인 순간이다. 그런데 이 장면이 왜 이렇게 불편하게 남는지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사람들은 보통 이런 상황을 개인의 예의나 성격 문제로 정리한다. 내가 너무 느슨했는지, 아니면 상대가 지나치게 까다로운지 따져본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에서 이 장면이 다르게 해석되는 이유는 개인에게 있지 않다. 사회가 ‘약속’이라는 행위를 어떤 단위로 처리하도록 설계했는지에 있다.일본과 한국 모두 약속을 중요하게 여긴다. 시간 엄수 역시 양쪽 모두에서 강한 규범이다. 그럼에도 .. 2026. 1. 29.
(한국과 일본) 생활 규칙이 작동하는 방식과 ‘합법과 허용’의 경계 아무 문제도 없을 것 같았던 행동이 뒤늦게 불편해지는 순간이 있다. 규정을 확인했고, 절차도 밟았고, 법적으로 문제 될 요소는 없었다. 그런데도 분위기가 가라앉거나, 말수가 줄거나, 관계의 온도가 달라진다. 누군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이후의 태도가 달라지고, 누군가는 바로 “그건 좀 그렇지 않냐”고 말한다. 비슷한 장면은 반복된다. 규칙을 지켰다는 확신은 있는데, 결과는 어딘가 어긋난 느낌이다.이때 많은 사람은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너무 융통성이 없었나, 아니면 눈치를 못 챘나. 혹은 상대가 예민했던 건 아닐까. 하지만 이런 자기 점검은 종종 답을 주지 않는다. 같은 행동이 어떤 사회에서는 별일 없이 지나가고, 어떤 사회에서는 미묘한 문제로 남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개인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2026. 1. 29.
(한국과 일본) 홍수는 어디서 결정되고, 제방은 누가 고정하는가 비가 그친 다음에 남는 말들폭우가 지나간 다음, 강은 비슷한 높이까지 불어났는데 설명은 달랐다. 한쪽에서는 “이번 홍수는 계획을 초과한 규모였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다른 쪽에서는 “설계 기준이 적절했는지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말이 뒤따랐다. 물은 같은 방향으로 흘렀지만, 책임이 향하는 방향은 달랐다. 누군가는 계획을 말했고, 누군가는 기준을 언급했다. 이 차이는 단순한 표현의 습관이 아니라, 홍수라는 위험을 어디에서 결정하고 어떻게 고정해 두었는가에 대한 구조의 차이에서 나온다. 하천 설계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위험을 관리하는 사회의 언어다. 1. 계획홍수는 어디에서 정해지는가일본의 하천 설계 체계는 ‘계획’이 먼저 등장한다. 하천법에 근거해 수립되는 하천정비기본방침에는 계획고수유량과 계획고수.. 2026. 1. 28.
(한국과 일본) 도움을 받았을 때의 부담감은 어디에 남는가 누군가가 잠깐 시간을 내주었다. 급한 상황에서 대신 전화를 해주었고, 서류 한 장을 챙겨주었고, 길게 설명해주었다. 상황은 해결되었다. 문제는 사라졌다. 그런데 몸 어딘가에 남는 감각이 있다. 말로는 분명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끝나고 난 뒤 오히려 더 신경이 쓰인다.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이건 이미 갚은 걸로 계산되는지, 아니면 아직 남아 있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 장면은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회사, 학교, 이웃, 가족 바깥의 관계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그 이후에 무엇이 남는지가 더 오래 머문다. 이 글은 바로 그 ‘남는 것’이 일본과 한국에서 어떻게 다르게 설계되어 있는지를 살펴본다. 도움의 기본 위치는 어디에 놓여 있는가일본과 한국의 차이.. 2026. 1. 26.
(한국과 일본) 연락이 없을 때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 메신저 창에는 마지막으로 보낸 문장이 남아 있다. 읽음 표시도, 답장도 없다. 일정은 이미 합의되었고 시간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이 상태에서 사람들은 전혀 다른 판단을 한다. 어떤 사람은 아무 일도 없다고 느끼고, 어떤 사람은 이 침묵 자체가 문제라고 느낀다. 손은 화면 위에서 멈춘다. 다시 한 번 확인 메시지를 보내야 할지, 아니면 기다려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 장면은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직장, 약속, 행정, 인간관계 어디에서나 반복된다. 이 글은 ‘연락이 빠르다, 느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연락이라는 행위가 사회 안에서 어떤 기능을 담당하도록 설계되어 있는지를 한국과 일본을 비교해 살펴본다. 무응답의 기본값 그리고 책임과 설계일본 사회에서 무응답은 대체로 기존 합의.. 2026. 1. 26.
(한국과 일본)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택과 손해 보지 않으려는 선택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누군가가 뛰어온다. 이미 버튼은 눌렸고, 문은 거의 닫히고 있다. 지금 손을 뻗으면 다시 열 수는 있다. 그러면 안쪽에 있는 사람들은 몇 초를 더 기다려야 한다. 누군가는 무심하게 휴대폰 화면을 다시 내려다볼 것이고,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숨을 고를 것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작은 불편이 아무에게도 언급되지 않은 채 남을 수도 있다.이 선택에는 규칙도 없고, 매뉴얼도 없다. 버튼을 눌러도 되고, 누르지 않아도 된다. 다만 선택을 한 뒤, 설명해야 할 사람이 되는지, 아무 설명 없이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지가 갈린다. 그리고 그 차이는 생각보다 오래 기억된다. 그 순간의 판단이, 이후의 관계나 평가와 연결되는 사회도 있고, 그저 지나간 장면으로 흘러.. 2026.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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