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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모른다’는 말은 왜 어떤 사회에서는 안전하고, 어떤 사회에서는 위험해질까

by JiwonDay 2026.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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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구 앞에서 한 사람이 멈춰 서 있다. 질문은 길지 않다. 이 절차를 오늘 안에 처리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상대는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고, 화면을 다시 확인한 뒤 고개를 든다. “확인해보겠습니다.” 목소리는 평온하고, 사과도 덧붙여진다. 기다려 달라는 말은 없다. 대신 연락하겠다는 약속만 남는다. 다른 장소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이번에도 질문은 단순하다. 상대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시작한다. “지금은 이 단계고, 다음에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완벽히 확신에 찬 말은 아니지만, 흐름은 제공된다. 질문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두 장면 모두 무례하지 않다. 누구도 불쾌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 남는 것은 다르다. 한쪽에서는 ‘절차가 진행 중이었다’는 인상이 남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사람이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지’가 평가의 기준이 된다. 말은 같았다. 지금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그 말이 놓인 자리는 같지 않았다. 어떤 사회에서는 그 말이 업무의 일부가 되고, 어떤 사회에서는 설명 능력의 공백처럼 읽힌다. 이 글은 말투를 교정하려 하지 않는다. 어떻게 말해야 안전한지를 가르치지도 않는다. 대신 같은 말이 왜 서로 다른 위험도를 갖게 되는지, 그 말이 닿는 바닥의 구조를 따라가려 한다.

 

왼쪽 프레임은 확인과 절차가 보호되는 일본의 일상을, 오른쪽 프레임은 즉각적 설명과 반응이 요구되는 한국의 업무 공기를 같은 인물의 태도·포즈·공간 대비로 드러낸다. 같은 ‘모르는 상태’가 구조에 따라 안전함과 부담으로 갈라지는 순간을 시각화한 장면이다.

 

발화와 책임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일본의 공공기관이나 기업 응대 매뉴얼에는 ‘확인하겠습니다’, ‘현 시점에서는 알기 어렵습니다’라는 표현이 표준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이 표현은 임시방편이 아니다. 업무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공식 신호다.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즉답은 친절함의 문제가 아니라 관리 실패로 분류된다. 업무 책임은 개인의 판단력보다 절차의 정확성에 귀속된다. 담당 범위를 벗어난 정보에 대해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능력 부족의 고백이 아니라, 권한을 넘지 않았다는 증명에 가깝다. 모른다는 말은 위험을 줄이기 위한 장치로 작동한다. 한국에서도 확인 절차는 존재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설명의 즉시성이 응대의 품질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잘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은 그 자체보다, 그 뒤에 설명이 이어지지 않을 때 문제로 남는다. 설명은 정확하지 않아도 제공되어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구조 속에서 정보 숙지의 책임은 개인에게 넓게 분배된다. 담당 범위를 넘어선 사안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기대가 작동한다. 그래서 같은 “모르겠다”는 말이, 한쪽에서는 절차의 일부가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준비 상태를 드러내는 신호가 된다.

실수 이후의 기록 방식은 무엇을 문제로 삼는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본의 보고 문서는 개인의 인식보다 과정의 흐름을 먼저 확인한다. 어디에서 확인 단계가 있었는지, 누락된 절차는 무엇이었는지가 중심이 된다. 왜 몰랐는지는 부차적인 질문이다. 중요한 것은 몰랐던 상태가 제도 안에서 어떻게 처리되었는가다. 재발 방지 대책 역시 개인의 태도보다는 구조 보완으로 이어진다. 체크리스트 추가, 승인 단계 조정, 책임 구간 재설정이 문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모른다’는 말은 기록되지만, 그 자체로 비난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는 사고 이후의 문서에서 개인의 판단 과정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어느 시점에서 인지하지 못했는지, 왜 판단이 늦었는지가 서술의 중심이 된다. 재발 방지는 교육 강화, 주의 환기, 개인의 각오 표명과 함께 정리되는 경우가 많다. 질문이 허용되는 위치도 다르다. 일본에서는 질문이 사전에 배치된다. 합의 이전의 질문은 정상이지만, 실행 단계의 질문은 준비 부족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실행 중 질문이 드물지 않다. 문제는 질문의 존재가 아니라, 왜 그 판단을 아직 하지 않았는가에 있다. 이 차이는 질문의 성격이 아니라, 판단이 언제 누구에게 요구되는지를 보여준다.

평가와 일상에서 ‘모른다’가 남기는 흔적

평가 제도에서도 이 구조는 반복된다. 일본에서는 신중함과 절차 준수가 안정성의 지표로 관리된다. 즉답을 피하고 확인을 요청하는 태도는 책임 회피가 아니라 리스크 관리로 읽힌다. 빠른 판단은 유능함 이전에 위험 요소로 분리된다. 한국에서는 상황 판단의 속도와 설명 능력이 평가 언어로 사용된다. 문제를 즉시 이해하고 말로 정리하는 능력은 업무 이해도의 증거처럼 작동한다. 확인 중이라는 상태는 잠정적인 공백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 행정 창구나 서비스 현장에서도 이 차이는 체감된다. 일본에서는 확인 후 재연락이 자연스럽고, 기다림은 절차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에서는 대략적인 설명이라도 즉시 제공되기를 기대하는 장면이 많다. 설명이 없는 확인은 종종 불안으로 남는다. 여기서 잠시 멈출 필요가 있다. 이 차이는 개인의 성격이나 태도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어떤 사회에서는 확인 중 상태를 제도가 보호하고, 어떤 사회에서는 판단의 공백을 개인이 메우도록 설계되어 있을 뿐이다.

‘모른다’는 말이 안전해지는 사회는, 개인이 판단하지 않아도 되는 대신 시간을 비용으로 지불한다. ‘모른다’가 위험해지는 사회는, 속도를 얻는 대신 개인에게 더 많은 설명 책임을 부여한다. 그래서 이 글은 어떤 말이 옳은지 묻지 않는다. 말을 바꾸라는 조언도 하지 않는다. 대신 왜 어떤 말이 그 자리에 놓였을 때 문제처럼 보이지 않는지를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불안해지는 순간은, 대개 누군가 말을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말을 감당하도록 설계된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불편한 질문은 이것일지 모른다. 우리는 언제부터 말을 평가하고 있었고, 그 말이 위험해 보이도록 만든 것은 정말 그 사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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