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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홍수는 어디서 결정되고, 제방은 누가 고정하는가

by JiwonDay 2026.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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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친 다음에 남는 말들

폭우가 지나간 다음, 강은 비슷한 높이까지 불어났는데 설명은 달랐다. 한쪽에서는 “이번 홍수는 계획을 초과한 규모였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다른 쪽에서는 “설계 기준이 적절했는지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말이 뒤따랐다. 물은 같은 방향으로 흘렀지만, 책임이 향하는 방향은 달랐다. 누군가는 계획을 말했고, 누군가는 기준을 언급했다. 이 차이는 단순한 표현의 습관이 아니라, 홍수라는 위험을 어디에서 결정하고 어떻게 고정해 두었는가에 대한 구조의 차이에서 나온다. 하천 설계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위험을 관리하는 사회의 언어다.

 

 

1. 계획홍수는 어디에서 정해지는가

일본의 하천 설계 체계는 ‘계획’이 먼저 등장한다. 하천법에 근거해 수립되는 하천정비기본방침에는 계획고수유량과 계획고수위 같은 핵심 값이 포함된다. 이 값들은 단순한 계산 결과가 아니라, 해당 하천에서 어느 정도 규모의 홍수를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역할을 한다. 재현기간이라는 개념이 사용되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계획고수유량을 설명하기 위한 요소 중 하나로 작동한다. 다시 말해 일본에서는 “몇 년 빈도의 홍수인가”보다 “이 하천의 계획고수유량은 얼마인가”가 먼저 고정된다. 이 계획값은 이후 수립되는 하천정비계획과 개별 시설 설계의 기준점으로 작동한다.

한국에서는 접근 순서가 다르다. 하천법과 하천기본계획 수립지침은 계획홍수량을 산정할 때 설계홍수빈도라는 출발 조건을 명시한다. 국가하천이든 지방하천이든, 설계의 시작점에는 “이 하천은 몇 년 빈도의 홍수를 견디도록 설계할 것인가”라는 기준이 놓인다. 이 기준에 따라 홍수량을 계산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계획홍수량을 설정한다. 한국에서 재현기간은 설명을 위한 보조 개념이 아니라, 설계가 충족해야 할 조건으로 먼저 제시된다. 결과적으로 일본이 계획 문서에서 홍수의 규모를 ‘값’으로 소유한다면, 한국은 기준 문서에서 홍수의 규모를 ‘조건’으로 관리한다.

2. 제방과 하도 단면은 무엇에 의해 고정되는가

일본에서 제방과 하도 단면은 이미 정해진 계획값을 구현하는 문제로 다뤄진다. 하천관리시설등구조령에서는 계획고수유량, 계획횡단형 같은 용어가 정의되어 있고, 이 용어들은 설계자가 임의로 조정하는 대상이 아니다. 단면은 계획고수위와 계획고수유량을 전제로 설정되며, 그 틀 안에서 제방의 높이와 하폭이 결정된다. 만약 현장 여건상 조정이 필요할 경우, 이는 기준 위반이 아니라 ‘운용’의 문제로 다뤄진다. 구조령 자체보다는 그 운용 해설과 행정 판단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단면은 기준 검토의 산물이기보다, 계획의 그림자에 가깝다.

한국에서는 단면이 기준 검토의 결과물로 등장한다. 국가건설기준인 하천설계기준은 제방 높이, 여유고, 하폭, 수위 계산 방법 등을 절차적으로 규정한다. 설계자는 주어진 설계홍수빈도와 홍수량을 바탕으로 수리 계산을 수행하고, 그 결과가 기준을 만족하는지 검토한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설계 조건을 조정하거나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단면은 고정된 전제가 아니라, 기준 충족 여부에 따라 반복적으로 검토되는 대상이 된다. 일본에서 단면이 계획을 따르는 형태라면, 한국에서 단면은 기준을 통과해야만 확정된다.

3. 계획을 초과했을 때 무엇이 다시 움직이는가

홍수가 계획을 넘어섰을 때 일본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표현은 “계획을 초과했다”는 말이다. 이 표현은 이미 계획고수유량과 계획고수위가 명확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피해가 발생하면 문제는 설계자의 판단보다는 계획 자체의 적정성으로 이동한다.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하는가, 계획 규모를 상향해야 하는가가 논의의 중심이 된다. 책임의 방향은 개인이나 현장 판단이 아니라, 계획 체계로 향한다. 위험은 계획의 범위를 넘었는가의 문제로 재정의된다.

한국에서는 같은 상황에서 질문의 방향이 달라진다. “설계 기준이 충분했는가”, “설계홍수빈도가 적절했는가”라는 검토가 이어진다. 이는 기준 적용의 타당성을 다시 묻는 과정이다. 하천기본계획 수립지침에는 계획홍수량을 초과하는 홍수가 발생했을 경우 계획 변경이나 재검토가 가능하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실제 논의는 기준을 어떻게 적용했는지, 절차가 적절했는지로 수렴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위험은 계획의 한계를 넘었는가보다는, 기준을 잘 사용했는가의 문제로 해석된다.

 

 

같은 홍수 앞에서 일본과 한국은 다른 위치에 서 있다. 한쪽은 계획을 먼저 세우고 그 계획이 넘었는지를 묻는다. 다른 쪽은 기준을 먼저 제시하고 그 기준을 잘 사용했는지를 묻는다. 이는 기술 수준의 차이나 안전 의식의 차이라기보다, 위험을 어디에 고정해 두는가에 대한 구조의 차이다. 계획에 고정된 사회에서는 위험이 계획을 초과했는지가 문제로 떠오르고, 기준에 고정된 사회에서는 위험이 기준 적용의 문제로 돌아온다. 이 차이는 제방의 높이보다 깊은 곳에서, 우리가 위험을 설명하는 언어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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