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30

4월 22일 정보통신의 날, 보이지 않을 때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손이 먼저 가는 건 늘 휴대폰이다. 알람을 끄고, 화면을 켜고, 무의식적으로 와이파이 표시를 확인한다. 파란 아이콘이 떠 있으면 마음이 느슨해진다.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그 표시가 사라질 때가 있다. 데이터도 느리고, 페이지는 열리지 않고, 메시지는 보내지지 않는다. 그때 느끼는 묘한 불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마치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 든다.이상하다. 전기는 여전히 들어오고, 나는 침대에 있고, 몸도 멀쩡한데. 연결이 끊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하루의 리듬이 흔들린다. 그 순간 깨닫는다. 내가 얼마나 많은 기술 위에 서서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기술들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너무 자연스럽게 내 일상에 녹아 있는지.20살, 대학생. 강의실로 향하기 전 거울 앞에 서서.. 2025. 12. 31.
4월 21일 과학의 날에 대해 ― 숫자와 공식 사이에서 살아남기 아침 알람이 울리기 전부터 몸이 먼저 깨어 있었다. 전날 밤, 통계 과제 마감 시간에 맞추느라 노트북 위에 엎드린 채 잠들었기 때문이다. 20살, 여대생 지원이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화장은 최소한으로, 대신 거울 앞에서 몸선을 한 번 훑어본다. 어제보다 어깨가 조금 더 단단해 보이고, 허리 라인은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곡선을 유지하고 있다. 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 짧은 순간이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한다. 과학은 내게 낭만이 아니다. 공식은 위로가 되지 않고, 숫자는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과학을 배운다. 살아남기 위해서다.4월 21일 과학의 날이 다가오면 학교는 유난히 분주해진다. 포스터가 붙고, 세미나 공지가 쏟아진다. 하지만 내 일상은 여전히 시험, 과제, 발.. 2025. 12. 30.
4월 19일 4ㆍ19혁명기념일, 캠퍼스에서 민주주의를 체감하다 봄은 늘 내 몸부터 먼저 깨어나게 만든다. 얇아진 옷감이 피부에 닿을 때의 감각,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바람이 허리선을 스치며 지나갈 때의 미묘한 긴장감, 그리고 그 모든 감각 위에 얹히는 스무 살의 자의식. 나는 지금 이곳에 있고, 살아 있고,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낀다. 강의실로 향하는 길, 게시판에 붙은 포스터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4월 19일 4ㆍ19혁명기념일’. 솔직히 말하면 그 전까지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너무 크고 딱딱해서, 내 일상과는 어딘가 분리된 개념처럼 느껴졌다. 시험 범위에 포함되면 외웠고, 뉴스에서 나오면 흘려들었다. 취업 걱정, 성적 관리, 오늘 입을 옷을 고르는 일 같은 훨씬 더 급한 문제들이 늘 앞에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햇빛에 바랜 포스터 앞에서.. 2025. 12. 30.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대해, 봉사활동 하루가 남긴 질문 4월의 햇살은 언제나 과감하다. 캠퍼스의 계단 난간을 타고 내려오는 빛이 다리선을 길게 드러내는 오후, 나는 그날도 여느 때처럼 짧은 재킷과 가벼운 원피스를 입고 봉사활동 장소로 향했다.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을 고르고, 립을 한 번 더 바르는 사소한 준비가 왠지 나를 보호해 주는 갑옷처럼 느껴지던 스무 살의 봄이었다. ‘도움 주러 간다’는 마음은 분명 선했지만, 마음 한켠에는 알 수 없는 긴장과 기대가 뒤섞여 있었다. 장애인 관련 봉사활동이라는 단어는 늘 교과서적 문장으로만 다가왔고, 현실의 결은 상상 속보다 훨씬 거칠다는 사실을 나는 아직 몰랐다. 현장에서 마주한 얼굴들은 나의 예상을 비틀었다. 웃음이 먼저 나오기도 했고, 침묵이 길어지기도 했다. 어떤 순간에는 내 몸의 움직임 하나, 시선의 높이 하나.. 2025. 12. 30.
4월 16일 국민 안전의 날, 기억하지 않으면 반복된다는 말의 무게 스무 살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 있다. 몸은 하루아침에 어른이 되지 않지만, 책임은 어느 순간 갑자기 몸 위에 내려앉는다.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아침 햇살 속에서 나는 내 그림자를 확인한다. 길고 곧게 뻗은 다리, 단단한 허벅지,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고요히 확장되는 가슴의 리듬. 이 몸으로 세상을 걷는다는 건 자유이자 위험이다. 그래서 4월 16일은 달력 속 숫자에 머물지 않는다. 그날의 공기, 그날의 색, 그날 이후 우리가 배워야 했던 질문들이 내 일상에 스며든다. 수업 사이 휴대폰 알림을 확인하며 멈칫하던 기억, 뉴스의 자막이 교실의 소음을 밀어내던 순간, “괜찮다”는 말이 얼마나 가벼운지 깨닫던 밤. 국민 안전의 날은 추모로 시작했지만, 나에게는 몸의 감각으로 이어진다. 안전은 규칙이 아니라 .. 2025. 12. 30.
4월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 캠퍼스에서 처음 제대로 마주한 이름 스무 살이 되자, 하루의 리듬이 바뀌었다. 아침마다 옷장을 열고 오늘의 나를 고르는 시간, 강의실로 향하는 계단에서 느껴지는 허벅지의 힘과 균형, 유리창에 비친 몸선이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순간들. 몸은 내가 살아온 시간을 고스란히 품고 있고, 마음은 아직도 새로 배울 게 많다. 그런 날이었다. 교양수업 과제로 ‘기념일’을 조사하라는 공지가 떴고, 무심코 클릭한 주제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시험지에서 스쳐 지나간 그 이름. 연도와 장소를 외우던 기억만 남아 있던 그 단어가, 이번에는 노트북 화면을 넘어 내 하루로 들어왔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의자를 당겨 앉아 자세를 고쳤다. 시험을 위한 암기가 아니라, 내가 이해하고 싶은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글자를 따라가며 숨.. 2025.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