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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 사회복지의 날, 이 날짜 앞에서 내가 선뜻 서지 못하는 이유

by JiwonDay 2026.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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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은 ‘사회복지의 날’이다. 2000년 1월 12일, 「사회복지사업법」이 개정되면서 이 날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다. 날짜의 근거는 분명하다. 9월 7일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공포된 날이다. 이 법은 빈곤을 개인의 무능이나 불운으로 돌리지 않고, 국가의 책임으로 명시했다. 전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단순한 급여 지급을 넘어 자립과 자활을 위한 서비스까지 포함하는 제도적 틀이다. 사회복지의 날은 국민의 사회복지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사회복지사업 종사자들의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모든 설명은 교과서처럼 정돈되어 있고, 뉴스 기사처럼 요약 가능하다.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사회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장치라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런데 매년 9월 7일이 오면, 이 날짜가 나의 하루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오지는 않는다. 기념일이 있다는 사실과, 그 기념일 앞에 서 있는 나의 몸 사이에는 늘 미세한 간격이 남아 있다. 이 날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이해하려 하지만, 그 의미가 곧장 감정이나 태도로 내려오지는 않는다.

 

서 있는 몸, 도움받지 않는 쪽에 있다는 자세

아침에 집을 나서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을 때, 내 몸은 특별히 긴장하지 않는다. 가방 끈은 어깨에 익숙하게 걸려 있고, 허리는 자연스럽게 펴져 있다. 휴대폰을 한 손에 쥐고 서서 화면을 내려다보는 자세는 평소와 다르지 않다. 사회복지의 날이라는 문구를 어디선가 스쳤던 기억은 있지만, 그 사실이 내 발의 무게를 바꾸지는 않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 나란히 선다.

그 순간 나는 분명히 ‘도움받지 않는 쪽’에 서 있다. 최소한 지금의 나는 그렇다. 장학금 신청서를 써본 적은 있어도,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로 분류된 적은 없다. 지원이라는 말을 들을 때, 그것은 항상 약간 바깥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내 몸은 아직 스스로 움직이고, 스스로 벌어들일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가진 쪽에 있다. 그래서인지 사회복지를 떠올릴 때의 자세는 늘 약간 멀찍하다. 나와 직접 맞닿아 있지 않다는 안도와, 그 안도가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조심스러움이 동시에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또래들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날을 특별히 언급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다. 누군가는 과제 마감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는 주말 계획을 말한다. 사회복지의 날이라는 말은 공기 중에 떠 있다가도 금세 사라진다. 나는 그 무심함 속에서 편안해지면서도, 동시에 약간 불편해진다. 중요한 날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몸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바로잡기 위해 자세를 고쳐 세우지는 않는다. 그냥 그렇게 서 있는 상태로 하루를 시작한다.

제도와 기억,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

사회복지의 날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제도와 법의 언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최저생활 보장, 자립자활서비스 같은 말들. 학창 시절 사회 교과서에서 이 단어들을 처음 배웠을 때, 나는 그것들이 이미 완성된 장치라고 생각했다. 나라가 알아서 해주는 것, 잘 작동하고 있는 시스템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시험을 위해 외웠던 정의들은 머릿속에 남았지만, 그것이 실제 삶에서 어떤 시간과 노동으로 유지되는지는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도시화와 산업화,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가족 내부에서 해결되던 돌봄과 부양의 역할이 사회로 넘어왔다는 설명도 배웠다. 그때의 나는 그 설명을 너무 매끄럽게 받아들였다. 사회가 대신해 준다는 말은 편리했고, 제도가 있다는 사실은 든든해 보였다. 하지만 그 제도를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자주 빠져 있었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떠올릴 때도, 나는 막연한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를 돕는 일, 의미 있는 일이라는 추상적인 말들.

시간이 지나고 뉴스를 통해 사회복지 현장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그제야 제도의 이면이 조금씩 보인다. 인력 부족, 감정노동, 과중한 업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려’라는 단어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그 노동이 얼마나 쉽게 당연시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사회복지의 날이 왜 존재하는지 이해하면서도, 나는 그 이해가 너무 얇다는 생각을 한다.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제로는 표면에 불과했다는 느낌. 이해와 체감 사이에는 여전히 시간이 겹치지 않는다.

기록하려는 이유, 아직은 닿지 않는 자리

굳이 이 기념일에 대해 쓰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당장 행동으로 옮길 것도 아니고, 어떤 다짐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사회복지의 날 앞에서 나는 여전히 ‘대상자가 아닌 사람’의 자리에 서 있다. 그 사실은 내 삶을 긍정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이 기념일의 가치와 어긋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직은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몸이라는 감각이, 이 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데 장애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무관한 존재는 아니다. 제도가 있다는 사실 덕분에, 언젠가의 불안을 미리 덜어낸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복지는 나의 현재를 직접 건드리지는 않지만, 나의 바닥을 조용히 받치고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이 기념일과 나 사이의 거리가 아주 조금 줄어든다.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직 몸으로 겪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간격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이 글은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사회복지의 날이 나에게 무엇이어야 하는지 정리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 날짜 앞에서 내가 어떤 상태로 서 있는지를 기록해 둘 뿐이다.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멀찍이 서 있었던 상태. 고개는 끄덕였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던 상태. 이 미완의 자리 자체가 지금의 나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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