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와 제도의 표면
7월 7일은 도농교류의 날이다. 이 기념일은 2013년 6월 12일, 「도시와 농어촌 간의 교류촉진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법정기념일이 되었다. 도시와 농어촌 사이의 소통 여건을 조성하고, 상호 교류를 일회성에 그치지 않게 정착시키겠다는 목적이 그 배경에 있다. 농어촌과 도시가 지속적으로 만나는 장을 마련하고, 도농 간 균형 발전과 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려는 취지에서 지정된 날짜다. 설명만 놓고 보면 단정하고 명확하다. 제도는 언제나 이렇게 매끄러운 문장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7월 초라는 시점도 의미심장하다. 한 해의 절반을 막 넘긴 시기, 도시의 대학은 방학을 앞두고 있거나 막 시작된 상태다. 농촌에서는 여름 작물이 본격적으로 자라나는 시간이다. 학사 일정과 농사 일정이 우연히 겹치는 이 시점에, 국가는 ‘교류’를 말한다. 나는 이 설명들을 여러 번 읽어왔고, 그래서 이 기념일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중요한 취지라는 것도, 균형 발전이라는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도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해하고 있다는 감각은 늘 머리 쪽에만 머물렀다. 이 날짜가 내 하루의 리듬이나 몸의 자세를 바꾼 적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매년 7월 7일은 달력 위에서는 분명한데, 실제 시간 속에서는 쉽게 흐려졌다.

사소한 행위에서 시작되는 몸의 거리
가방을 정리하는 손이 잠시 멈췄다. 여름이 되면 항상 들고 다닐지 말지를 고민하게 되는 휴대용 선풍기를 넣었다가 다시 꺼냈다. 가방의 무게가 어깨에 어떻게 걸릴지를 상상하면서, 나는 늘 이런 사소한 판단을 반복한다. 앉은 자세에서 허리는 완전히 펴지지 않았고, 의자 끝에 걸친 채로 약간 앞으로 기울어 있었다. 발바닥은 바닥에 닿아 있었지만, 체중은 한쪽으로 더 실려 있었다. 이런 자세로 공지 프린트를 훑어보다가 ‘도농교류’라는 단어를 다시 보게 되었다.
체험 프로그램 안내, 봉사활동 인정 시간, 이동 일정. 글자들은 정렬되어 있었고, 정보는 친절했다. 하지만 내 몸은 그 안내와 즉각적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주변을 보면 같은 과 친구들은 각자 다른 화면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어폰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농촌 봉사 이야기를 하다가도 금세 아르바이트 일정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 전환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굳이 멈춰 서서 생각할 틈이 없었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었지만, 그 반응이 내 안에서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이날의 불편함은 아주 미세했다. 도농교류의 날이 중요하다는 말과, 지금 이 순간 내 몸이 느끼는 감각 사이에 어긋남이 있다는 정도. 나는 도시의 실내에 앉아 있었고, 에어컨의 찬 공기가 팔에 닿았다. 농어촌의 여름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습기나 흙의 감촉은 상상 속에만 있었다. 타인의 시선은 느껴졌지만, 그 시선은 이 기념일을 향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일정과 화면을 향해 있었다. 내 몸은 그 무심함 속에 섞여 있었다.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그 불편함을 굳이 확대하지 않는 태도. 개인의 몸 감각과 기념일의 의미가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 순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교류’라는 언어의 두께
도농교류의 날을 설명하는 핵심 단어는 언제나 ‘교류’다. 교과서와 제도 속에서 이 단어는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사용된다. 서로 부족한 것을 채우고, 이해를 넓히며, 함께 성장한다는 서사. 나는 학창 시절에 이런 문장들을 여러 번 읽었다. 농촌 체험학습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짧은 설명을 듣고, 정해진 코스를 따라 걷고,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하루. 그날의 기억은 선명하지만, 그 기억이 관계로 이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산업화와 도시화 이후 농촌의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심화되었다는 설명은 이제 상식처럼 반복된다. 핵가족화로 인해 농촌 공동체의 구조가 변했고, 도시와 농촌의 생활 리듬은 점점 더 달라졌다. 그래서 교류는 ‘일상’이 아니라 ‘행사’의 형태를 띤다. 지속성을 말하지만, 실제로 지속되는 것은 제도와 언어뿐인 경우가 많다. 미디어에서는 도농교류의 성공 사례가 밝은 이미지로 소비된다. 웃고 있는 얼굴들, 정돈된 풍경들. 그 장면을 보는 타인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하지만 그 호의가 일상의 선택을 바꾸는 경우는 드물다.
언어로서의 교류는 매끈하지만, 그 언어를 사용하는 나의 위치는 언제나 도시 쪽에 고정되어 있다. 나는 소비자로서 농산물을 선택하고, 참여자로서 프로그램에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농어촌의 시간 속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다. 과거에는 생활이었던 왕래가 현재에는 선택 가능한 옵션이 되었다. 미래에 대한 전망 역시 제도적 언어로만 제시된다. 이 세 겹의 시간이 7월 7일이라는 날짜 안에서 겹쳐 있지만, 그 겹침이 내 하루를 실질적으로 바꾸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기념일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쓰는 이유를 다시 묻는 기록
왜 굳이 도농교류의 날에 대해 쓰고 있는지, 이 질문은 글을 쓰는 동안 여러 번 돌아왔다. 이미 알고 있다고 믿어왔던 것을 다시 꺼내 적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내 몸은 여전히 도시의 리듬 속에 있고, 농어촌의 삶을 직접 살아본 적은 없다. 이 기념일이 말하는 가치와, 내가 지금 긍정하고 싶은 나의 삶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있다. 하지만 그 간극이 곧바로 모순으로 이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아직 이 교류를 몸으로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쪽에 가깝다. 이해하려는 태도와, 이해하지 못한 채로 남아 있는 상태가 동시에 존재한다. 이 글은 어떤 행동을 촉구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태도를 명명하려는 시도도 아니다. 다만 이 날짜 앞에서 내가 얼마나 쉽게 ‘알고 있다’고 착각해왔는지를 기록해두고 싶었다.
도농교류의 날은 여전히 설명 가능한 제도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설명의 바깥에서 머뭇거리는 사람이다. 이 두 문장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 놓인 나의 상태를 그대로 두는 것, 그것이 지금 이 글의 역할에 가깝다. 완결된 결론 없이 남겨두는 이 기록은, 7월 7일이 다시 돌아올 때마다 같은 질문을 다시 꺼낼 수 있는 자리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