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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 유엔군 참전의 날, 이 한여름의 몸으로 이 날을 보낸다

by JiwonDay 2026.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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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일이라는 이름의 날짜

7월 27일은 유엔군 참전의 날이다.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과 같은 날짜다. 전쟁은 끝났다고 말해지지만, 법적으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설명을 나는 여러 번 들어왔다. 이 날짜는 6·25전쟁에 참전하여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유엔 참전국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2013년 7월 26일, 「참전유공자 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며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고, 2020년 3월 24일에는 「유엔참전용사의 명예선양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며 다시 한 번 명확히 적혔다.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여러 참전국들이 정전협정일을 한국전 참전용사의 날로 기념해 온 국제적 흐름 역시 이 날짜에 겹쳐 있다.

이 설명들은 언제나 정확하고 단정하다. 날짜와 이유, 국제 관계와 법률의 문장들이 서로를 떠받친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장들 사이에는 늘 빠져 있는 것이 있다. 이 날짜가 한여름이라는 사실이다. 가장 덥고, 가장 가볍고, 가장 많은 피부가 드러나는 계절 한가운데에 이 기념일이 놓여 있다는 점은 설명되지 않는다. 매년 7월 말, 나는 이 날짜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몸으로 이 기념일을 통과한다.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보다, 어떤 상태로 서 있는지가 먼저 나를 드러낸다.

 

한 여름, 드러나는 몸

나는 서 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잠시 그늘 쪽으로 몸을 옮긴다. 햇빛이 직접 닿지 않는 위치를 찾는 이 짧은 움직임에도 여름의 기운이 묻어난다. 얇은 민소매 티셔츠는 어깨선과 팔의 윤곽을 그대로 드러내고, 허리를 타고 내려온 원단은 몸의 곡선을 숨기지 않는다. 짧은 치마는 바람이 불 때마다 의식하게 된다. 다리를 어떻게 두고 서 있는지, 무게를 어느 쪽에 실을지, 시선이 머무를 가능성이 있는 위치들을 본능적으로 계산하게 된다.

여름은 몸을 감추지 못하게 만든다. 계절이 사람의 태도를 바꾼다기보다, 사람의 외형을 먼저 노출시킨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몸의 형태를 알고 있게 되는 계절이다. 허리의 굴곡, 허벅지의 선, 햇빛에 바로 반응하는 피부의 온도까지. 이 계절에는 생각보다 감각이 앞선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의미보다 자세가 먼저 잡힌다.

주변을 둘러보면 또래들 역시 비슷하다. 노출이 많은 옷차림, 빠른 걸음, 웃음 섞인 말투. 기념일을 의식하는 기색은 거의 없다. 누군가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고, 누군가는 휴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름의 공기는 과잉되어 있고, 일상은 가볍다. 이 과잉 속에서 전쟁과 희생이라는 단어들은 쉽게 미끄러진다. 내 몸은 지금 더위와 시선, 균형을 먼저 처리하느라 바쁘다. 의미를 떠올리려 하면, 땀이 먼저 난다.

이렇게 서 있는 내 자세와, 수십 년 전 바다를 건너왔을 병사들의 몸을 겹쳐 보려 하면 어딘가 어긋난다. 그들의 몸은 기록 속에만 남아 있고, 내 몸은 지금 이 여름의 공기 속에 있다. 그 간격을 무시하려 하면, 기념일은 형식만 남는다. 그래서 나는 그 간격을 애써 메우기보다, 그대로 두고 서 있는 편을 택한다. 이 어긋남을 인정하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더 정직해 보인다.

지금 여기의 외국인들, 감사라는 말의 압력

길을 걷다 보면 외국인들을 자주 마주친다.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들, 한국어보다 영어가 먼저 들리는 순간들. 카페에서 주문을 기다리며 서 있을 때, 내 옆에 선 외국인의 키와 어깨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피부색, 체격, 말투. 특별할 것 없는 장면인데도, 어느 순간 ‘유엔군’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스친다.

과거의 유엔군과 지금의 외국인은 전혀 다른 존재다. 그럼에도 같은 ‘타국의 몸’이라는 점에서 두 이미지가 겹쳐진다. 과거에는 이 땅과 아무 상관이 없었을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여기에 와서 싸웠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런 전쟁과도 상관없이 이곳을 걷고, 커피를 마시고, 사진을 찍는 외국인들이 있다는 사실. 이 대비는 내 감정을 단순하게 두지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말을 배웠다. 교과서에서, 뉴스에서, 기념식에서 반복되는 문장이다. 감사는 마치 올바른 태도처럼 제시된다. 그 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감사라는 감정은 문장처럼 깔끔하게 정렬되지 않는다. 감사해야 한다는 압력을 느낄수록, 감정은 오히려 뒤로 물러난다.

외국인 옆에 서 있는 지금의 내 몸은 가볍다. 여름 옷은 시선을 끌고, 일상은 평온하다. 이 상태에서 과거의 희생에 대해 즉각적으로 깊은 감정을 불러오지 못하는 나 자신이 조금 불안해진다. 감사하지 않으면 무례한 사람이 되는 것 같고, 감사한다고 말하면 너무 쉬운 말로 그들을 정리해 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감사라는 말은 그래서 때때로 나를 침묵하게 만든다. 말을 고르는 동안, 나는 그 감정의 깊이를 스스로 검열한다.

타인들은 묵념하고,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고, 국가 간 우정을 이야기한다. 그 반응을 보며 나는 내가 너무 무심한 것은 아닌지, 아니면 솔직한 것인지 스스로를 살핀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이 날짜 위에서 겹치지만, 내 감정은 그 겹침의 중심이 아니라 가장자리에 머문다.

기록으로 남기는 미완의 상태

그래서 나는 왜 굳이 이 기념일에 대해 쓰고 있는지 다시 묻게 된다. 여름의 과잉 속에서, 내 몸은 지금의 삶을 긍정하고 싶어 한다. 햇빛, 노출된 피부, 가벼운 계획들. 그 위에 얹힌 기념일의 가치는 때때로 무겁다. 그렇다고 이 둘이 완전히 충돌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충돌하지 않기 때문에 더 난처하다. 내 일상이 유지될 수 있었던 조건과, 그 조건을 만든 과거의 희생은 분명히 연결되어 있다.

이 글은 감사의 형식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의미를 정리하거나 태도를 선언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날짜 앞에서, 여름의 몸을 가진 채 서 있는 나의 상태를 기록하고 싶다.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고, 외국인과 같은 공간을 지나가며, 감사해야 한다는 말을 알고 있지만 그 감정의 깊이에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 이 미완의 감각을 그대로 남기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 가능한 전부다.

기념일은 매년 같은 날짜에 돌아온다. 하지만 그 앞에 서는 몸은 매번 다르다. 오늘의 나는 여전히 여름 속에 있고, 그 여름의 과잉을 통과한 채 이 날짜를 지나간다. 멈춰 서 있고, 머뭇거리고, 쉽게 정리하지 않는다. 이 기록은 이해의 완성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저 이 기념일 앞에서 서툴게 머무르고 있는 나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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