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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일 인구의 날, 이 날짜 앞에서 내가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불안해지는 이유

by JiwonDay 2026.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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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일은 인구의 날이다. 2011년 8월 4일,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이 개정되면서 이 날짜는 법정기념일이 되었다. 인구구조 불균형이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어떤 파급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리고,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국민의 이해와 민간의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목적이 명시되어 있다. 이 날은 국제연합이 정한 ‘세계 인구의 날’과도 겹친다. 1987년 7월 11일, 세계 인구가 50억 명을 넘어섰던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날짜였다.

한때는 너무 많아진 인구를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날이, 지금의 한국에서는 줄어드는 숫자를 걱정하는 날이 되었다. 같은 날짜 위에 전혀 다른 방향의 시선이 겹쳐 있다. 국제사회가 인구 증가의 속도를 돌아보던 날과, 국가가 인구 감소의 속도를 계산하는 날이 포개져 있다. 늘어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날짜에, 줄어드는 것을 대비하라는 말이 얹힌다. 이 전환은 매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설명을 통해서만 이해되는 상태로 남아 있다.

법과 제도의 언어는 여전히 단정하다. 인구구조, 불균형, 파급 영향, 대응. 단어들은 감정을 허락하지 않는 방식으로 배열되어 있다. 그 문장 속에서 사람은 개인이 아니라 집합이 된다. 국민, 세대, 가구. 나는 이 기념일이 왜 필요한지 안다. 이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도 이해한다. 다만 이해와 체감 사이에는 늘 시차가 있다. 이 날짜가 돌아올 때마다, 나는 중요한 문제 앞에서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무감각이 무책임인지, 아니면 아직 내 몸의 속도로 도달하지 않은 상태인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몸과 일상

오후의 햇빛은 직접적이다. 옷을 갈아입는 동안 창으로 들어온 빛이 피부에 닿고, 공기는 얇게 데워진다. 민소매가 어깨를 드러내자 팔과 목선이 바로 외부와 연결되는 느낌이 든다. 허리선을 따라 옷감이 밀착되며 숨이 조금 더 짧아진다. 거울 앞에서 몸의 방향을 바꾸면 골반이 자연스럽게 틀어지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며 허벅지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몸은 이미 계절에 맞춰 반응하고 있다.

해질녘이 되면 같은 몸이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낮 동안 달아올랐던 체온은 서서히 식고, 대신 피부 위로 습기가 남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근육은 느슨해졌다가 다시 긴장한다. 이 시간대에는 이유 없이 기분이 가벼워진다. 특별한 약속이 없어도, 여름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이 들뜬다. 주위의 시선이 스쳐 가는 것도 분명히 인식된다. 그러나 그것은 부담이라기보다, 지금의 내가 이 계절 안에 있다는 확인처럼 느껴진다.

밤이 되면 여름의 들뜸은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낮에 느꼈던 가벼움은 가라앉고, 옷이 몸에 붙는 감각이 더 또렷해진다. 피부에 남은 열은 쉽게 빠져나가지 않고, 생각은 그제야 천천히 따라온다. 침대에 눕기 직전, 하루 동안 확장되었던 몸은 더 이상 커지지 않고 멈춘다. 숨은 고르게 내려가고, 근육은 자기 무게를 받아들이듯 가라앉는다. 이 정지의 순간에야 비로소 낮에는 도착하지 않았던 단어들이 따라온다.

인구의 날, 숫자, 구조. 열과 탄력을 가진 몸 옆에 놓인 그 단어들은 여전히 이질적이다. 내 몸은 하루 동안 확장되었다가 식고, 다시 멈추었는데, 그 언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속도로만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 어긋남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사회와 기억

인구의 날이 말하는 주요 내용은 대부분 구조에 관한 것이다. 출생률의 변화, 고령 인구의 증가, 노동시장과 복지 재정의 재편. 산업화와 도시화 이후 가족의 형태는 빠르게 바뀌었고, 핵가족화는 돌봄과 책임을 개인에게 더 많이 남겼다. 출산은 선택이 되었지만, 선택하지 않았을 때 따라오는 질문은 여전히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이 문제를 둘러싼 언어들은 대부분 ‘위기’로 시작한다. 인구 절벽, 소멸, 붕괴. 이어서 책임이라는 말이 따라온다. 미래 세대를 위해, 국가를 위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이 말들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 크다. 너무 커서 지금의 하루, 지금의 몸에 정확히 닿지 않는다. 그 언어들은 늘 나보다 앞서 있고, 나의 속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 책임의 언어는 종종 개인에게 조용히 내려앉는다. 아직 결정하지 않은 삶,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래 위에 미리 씌워진 질문들. 언제쯤, 어떻게,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하지만 이 질문들은 여름의 몸이 경험하는 시간과는 맞물리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하루 안에서도 여러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사회의 언어는 나를 하나의 고정된 지점에 세워 두려 한다.

주변에서 들리는 반응도 비슷하다. “요즘은 다 힘들지.” 그 말에는 이해와 체념이 함께 들어 있다.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현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려는 시도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문장 속에는 지금의 계절감, 여름 한복판에서 느끼는 이 들뜸과 식음, 다시 멈추는 감각은 들어가지 않는다. 과거에 배웠던 설명, 현재의 경고, 아직 상상되지 않는 미래가 한 날짜 위에서 겹쳐 있지만, 그 겹침은 여전히 몸보다 한 발짝 위에 떠 있다.

기록으로 남는 미완의 상태

왜 굳이 이 기념일에 대해 쓰고 있는지, 잠들기 직전에야 그 질문이 또렷해진다. 아마도 낮의 들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남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나는 너무 분명하게 살아 있는 개인으로 느껴진다. 계절에 반응하는 몸, 하루 안에서 변해 온 감각, 이유 없이 올라왔다가 식어 버린 기분들. 이 상태는 인구라는 말과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기념일이 나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이미 통계 안에 포함된 존재이고, 동시에 통계로는 설명되지 않는 하루를 살고 있다. 지금의 몸과 삶을 긍정하는 감각과, 인구의 날이 요구하는 집합적 시선은 서로 충돌하는 듯 보이지만 완전히 어긋나 있지는 않다. 다만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을 뿐이다.

이 글은 그 속도 차이를 줄이려 하지 않는다. 여름의 몸이 확장되고, 식고, 멈추는 과정을 지나도 여전히 남아 있는 이 거리감을 그대로 기록한다. 의미를 정리하지 않고, 태도를 명명하지 않은 채, 인구의 날 앞에서 서툴게 머무르는 상태를 남긴다. 이 미완의 위치가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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