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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사회적기업의 날, 이 날짜 앞에서 내가 잠시 멈추는 이유

by JiwonDay 2026.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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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은 사회적기업의 날이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고 사회적기업가의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지정된 법정기념일이다. 사회적기업이란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나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지역사회에 공헌함으로써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도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판매하는 영업활동을 병행하는 기업을 말한다. 「사회적기업 육성법」에 따라 인증을 받은 경우에만 이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 2010년 6월 8일, 법령 일부 개정을 통해 매년 7월 1일이 사회적기업의 날로 지정되었고, 이 날이 포함된 한 주는 사회적기업 주간이 되었다. 인식을 확산하고 설립을 촉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이 설명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반복해서 접해 온 문장이다. 공공기관 자료집의 첫 단락, 보도자료 속 정의 문장, 행사 소개 글의 요약 부분. 사회적기업이라는 단어는 늘 정제된 언어 안에 놓여 있었다. 중요한 일이라는 것도, 사회가 필요로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그 앎이 매번 같은 깊이로 내려가지는 않는다. 어떤 해에는 의미가 또렷하게 다가오고, 어떤 해에는 달력 속 날짜로만 남는다. 사회적기업의 날은 늘 같은 자리에 있지만, 그 앞에 서 있는 나는 해마다 조금씩 다른 상태다.

 

 

몸과 일상

그날 나는 방 안에 앉아 있었다. 창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여름 공기가 커튼을 아주 천천히 흔들었다. 책상 위에는 아직 정리하지 않은 노트와 인쇄물이 겹쳐 있었고, 의자에 앉은 허벅지는 차가운 좌판에 닿아 있었다. 자세를 바꾸기 위해 다리를 꼬았다가 다시 풀었다. 작은 움직임이 반복되었지만, 몸은 끝내 완전히 편안해지지 않았다. 어깨에는 미세한 긴장이 남아 있었고, 목은 자연스럽게 책상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나는 연필을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노트 한쪽 여백에 의미 없는 선을 몇 개 긋고, 다시 지웠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음과 방 안의 정적이 겹치며 시간이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사이 책상 위에 놓인 일정표 한 칸에 ‘7월 1일’이라는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사회적기업의 날이라는 작은 메모가 그 옆에 적혀 있었다. 나는 그 글자를 잠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옮겼다.

몸은 분명 이 방 안에 있었지만, 생각은 자꾸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오늘 해야 할 일들, 아직 끝내지 못한 과제, 미뤄 둔 약속들. 사회적기업이라는 단어는 머릿속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지만, 지금 이 자세와 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 날짜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 중요함이 손끝이나 허리의 감각으로 바로 전해지지는 않았다.

이때의 불편함은 크지 않았다. 대신 얇고 넓게 퍼져 있었다. 무시하기에는 분명히 느껴지고, 그렇다고 크게 반응하기에는 애매한 정도의 감각. 또래들 역시 각자의 방, 각자의 자리에서 비슷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기업의 날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각자의 일상 위를 조용히 스쳐 지나가고, 대부분의 몸은 원래의 리듬을 유지한다.

나는 이 분리를 애써 부정하지 않으려 한다. 의미 있는 날짜와, 나의 사소한 자세 사이에 생기는 간극을 인정하는 편이 더 솔직하다고 느낀다. 이해하려는 마음과, 아직 충분히 실감하지 못하는 몸은 동시에 존재한다. 그 사실이 나를 약간 불편하게 만들지만, 지금의 나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상태이기도 하다.

사회와 기억

사회적기업이라는 말은 언제나 제도와 함께 등장했다. 인증이라는 단어, 법률 조항, 지원 체계. 이 단어들은 주로 문서와 화면 속에서 만났다. 사회적기업 주간을 알리는 기사, 우수 사례를 소개하는 인터뷰, 행사 포스터의 문구들. 그 언어들은 대체로 긍정적이고 정돈되어 있다.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 지속 가능한 모델, 지역을 살리는 구조. 읽고 있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문장들이다.

하지만 그 언어들이 만들어지는 배경에는 더 복잡한 변화가 있다. 산업화 이후 사회는 빠르게 도시화되었고, 가족의 형태는 점점 더 작아졌다. 돌봄과 생계의 문제는 공동체보다는 개인에게 남겨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회적기업은 그런 공백을 메우기 위한 장치로 설명된다. 취약계층 고용, 지역 서비스 제공, 사회서비스의 보완. 익숙한 설명이지만, 그 안의 현실은 하나로 묶이지 않는다.

어떤 사회적기업은 지역 안에서 오래 자리를 잡고, 어떤 곳은 지원이 줄어드는 순간 바로 흔들린다. 누군가는 사회적기업에서 일하며 자신의 노동을 설명할 언어를 얻고, 누군가는 여전히 불안정한 조건 속에 머문다. 같은 제도 아래에서도 경험은 다르게 쌓인다. 사회적기업이라는 이름이 모든 현실을 균등하게 덮어 주지는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강조점도 달라졌다. 한때는 국가의 지원과 보호가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자립과 성과, 효율이 더 자주 언급된다. 사회적 가치 역시 수치와 지표로 설명된다. 의미 있는 일도 증명되어야 하고, 선의 역시 보고서의 형태로 정리된다. 이 변화는 이해되면서도 어딘가 어색하다. 제도화된 선의가 갖는 긴장이 느껴진다.

이 모든 담론 속에서 나는 주로 읽는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참여자라기보다는 관찰자에 가까운 위치. 알고 있지만, 깊이 들어가지는 않은 상태다. 사회적기업의 날은 그런 나의 위치를 다시 한 번 또렷하게 드러낸다.

기록과 미완

이 기념일에 대해 굳이 글을 쓰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사람의 기록이 과연 무엇을 남길 수 있을지 망설여진다. 나의 하루는 여전히 개인적인 일정과 감정으로 채워져 있고, 사회적기업의 가치가 그 모든 것을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 날짜를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내고 싶지도 않다.

내 삶을 유지하려는 마음과, 사회적 가치 앞에서 느끼는 거리감은 종종 부딪힌다. 그러나 그 충돌을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이해하려는 태도와, 아직 충분히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는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사회적기업의 날은 나에게 행동을 요구하기보다는, 내가 지금 어디쯤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계기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 글은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남는다. 나는 여전히 7월 1일이라는 날짜 앞에서 잠시 멈춘다. 그 멈춤이 무엇인지 명확히 이름 붙이지 않는다. 다만 이 시점의 몸과 생각을 기록해 둔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같은 깊이로 내려가지 않는 상태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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