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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 기록의 날, 버틴 시간을 적는다는 것

by JiwonDay 2026.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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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괜히 기분이 들떠 있었다. 시험이 끝난 날도 아닌데, 이유 없이 가방이 무겁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뒤집어 보니 다 쓰다 만 노트, 구겨진 메모지, 이미 제출한 과제 초안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버려도 되는 것들이었다. 사실 대부분은 다시 펼쳐볼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한 장 한 장을 다시 펼쳐보며 잠시 멈췄다. 그날 강의실의 공기, 창가에 앉아 다리를 꼬고 필기하던 내 자세, 졸음을 참으며 적어 내려가던 글씨의 흔들림, 잉크가 번지며 남긴 얼룩까지 또렷하게 떠올랐다. 기록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하루의 감각을 되살린다. 오늘은 유난히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스마트폰 사진첩을 열어보니 정리되지 않은 스크린샷과 의미 없는 셀카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언제 찍었는지도 모를 하늘 사진, 커피 잔, 버스 창밖 풍경까지 모두 남아 있었다. 왜 나는 이렇게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을 남기고 있을까. 그 질문은 결국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나는 잊히고 싶지 않은 걸까, 아니면 나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은 걸까. 스무 살이라는 나이는 아직 설명되지 않은 감정이 너무 많아서, 말 대신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지는 나이다. 그렇게 사소한 감정에서 시작된 하루가, 우연히도 6월 9일 ‘기록의 날’과 겹쳐 있었다. 평범한 하루의 체온이 이 기념일을 통해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아침부터 괜히 기분이 들떠 있었다. 시험이 끝난 날도 아닌데, 이유 없이 가방이 무겁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뒤집어 보니 다 쓰다 만 노트, 구겨진 메모지, 이미 제출한 과제 초안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기록은 내 하루를 붙잡는 유일한 증거처럼 느껴졌다.

 

 

 

기록의 날, 왜 6월 9일인가

6월 9일은 세계기록관리협의회 ICA가 2007년 제정한 세계기록의 날이다. 기록을 관리하는 사람들만의 기념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 날의 의미는 훨씬 넓고 깊다. 기록은 단순히 문서를 쌓아두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잊지 않기 위해 만든 가장 오래된 장치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원인도, 민주주의의 발전도, 억울함과 진실의 경계도 모두 기록 위에 남아 있다. 기록이 없었다면 우리는 과거를 논할 수 없고,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조차 할 수 없다. 세계기록의 날이 국제적으로 지정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억은 개인에게는 감정이지만, 사회에게는 증거가 된다. 누군가의 말과 말이 충돌할 때, 결국 남는 것은 기록뿐이다. 그래서 기록은 늘 불편하다. 특히 권력에게는 더욱 그렇다.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면 진실은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록을 남기고 관리하는 행위는 언제나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선택이 된다. 6월 9일이라는 날짜는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기록이 사라질 때 세계가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상기시키는 신호다. 기록은 과거를 정리하는 수단이 아니라, 미래가 길을 잃지 않도록 붙잡아 두는 닻과도 같다. 6월 9일이 반복해서 기념되는 이유는, 우리가 기록을 너무 쉽게 잊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와 기록문화의 계승

한국은 오래전부터 기록에 집요한 사회였다. 왕의 말 한마디, 날씨의 변화, 농사의 상황까지 적어 두었던 전통은 우수한 기록문화의 뿌리가 되었다. 조선의 실록을 떠올리면 기록은 단순한 행정이 아니라 국가의 기억 그 자체였다. 현대에 들어 그 역할을 이어받은 곳이 국가기록원이다. 국가기록원은 2016년 ICA 서울총회를 계기로 기록의 중요성을 사회 전반에 알리는 행사를 꾸준히 열어 왔다. 기록사랑 백일장이나 공모전은 기록을 전문가의 영역에서 시민의 손으로 끌어내린 시도였다. 기록은 더 이상 먼 곳의 서고에만 있어서는 안 된다. 일상에서 참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문화가 된다. 2019년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며 기록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록은 권장 사항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책임이라는 선언이었다. 공공의 기록이 제대로 남지 않으면, 개인의 삶도 쉽게 왜곡된다. 그래서 기록을 관리한다는 것은 단순한 행정이 아니라 사회의 기억을 지키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기록은 차갑고 딱딱한 문서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숨결이 겹쳐진 시간의 층이 된다. 기록은 제도가 아니라 태도라는 사실이 이 지점에서 분명해진다.

나의 기록, 우리의 미래

나는 여전히 일기를 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잘 쓰고 싶은 욕심도 없다. 다만 그날의 감정이 몸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적어 두지 않으면, 며칠 뒤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변해버리는 것이 두렵다. 기록은 기억보다 정직하다. 감정은 미화되고 왜곡되지만, 적힌 문장은 그날의 체온을 그대로 품고 있다. 개인의 이런 사소한 기록들이 모여 사회의 기억이 된다. 오늘 내가 남긴 문장은 언젠가 누군가에게 시대의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록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꾸밈없는 하루, 솔직한 감각, 흔들리는 생각이면 충분하다. 기록의 날이 내게 남긴 가장 큰 의미는 이것이다. 기록은 과거를 붙잡는 행위가 아니라, 미래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라는 것. 오늘의 내가 남긴 흔적은, 아직 오지 않은 누군가에게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고 말해 줄 수 있다. 그렇게 기록은 조용히 시간을 건너며, 우리를 증언한다. 스무 살의 이 불안정한 하루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작은 역사로 남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오늘도 펜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그 펜 끝에서 기록의 날은 비로소 현재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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