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아침이었다. 전날 밤 늦게까지 휴대폰을 붙잡고 있다가 잠들었고, 공휴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알람을 아예 맞추지 않았다. 늦잠을 자도 괜찮다는 생각은 몸을 유난히 무겁게 만들었다. 이불 속은 아직 따뜻했고, 잠옷 아래로 전해지는 체온이 이상할 정도로 또렷했다. 반쯤 열린 창문 사이로 초여름 특유의 습한 공기가 천천히 방 안으로 흘러들어 왔다. 아무 일정도 없는 날의 공기는 늘 묘하다. 해야 할 일이 없다는 안도감과,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는 막연한 죄책감이 동시에 섞여 있다. 침대 위에서 뒤척이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 하루가 그저 ‘쉬는 날’로만 남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계가 열 시를 조금 넘긴 순간,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단순한 경고음이 아니라, 길고 낮게 이어지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는 동안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마셨고, 몸을 일으켜 앉은 채로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방 안의 모든 소리가 멈춘 것처럼 느껴졌고, 그 짧은 정적 속에서 오늘이 6월 6일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현충일. 쉬는 날이라는 이유로 아무 생각 없이 보내고 있던 이 시간이,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존재하는 날이라는 사실이 마음 한쪽을 눌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있다는 이 상태가, 오늘이라는 날짜 앞에서는 어딘가 어긋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평소에는 무심하게 넘겼던 공휴일이, 그날만큼은 유난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 불편함은 하루 종일 몸에 남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현충일이라는 이름의 무게
현충일이라는 단어는 어릴 때부터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순국선열과 전몰호국용사를 기리는 날이라고 배웠고, 교과서 속 문장은 늘 비슷한 표현으로 반복되었다. 시험을 위해 외웠고, 시험이 끝나면 잊었다. 그 말들이 실제 사람의 삶과 연결된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국권회복을 위하여 헌신·희생하신 분들’이라는 문장을 가만히 곱씹어보면,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들어 있다. 지금의 나는 하루 일정 하나를 정하는 데도 망설이고, 사소한 선택 앞에서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오늘 뭘 입을지, 누구를 만날지 같은 아주 작은 선택조차도 몇 번씩 고민한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의 미래 자체를 포기했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이 아니라, 아예 내일을 가질 수 없는 선택을 했다. 현충일이라는 이름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진 이유는, 그 희생이 너무도 현실감 없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감사해야 한다는 말은 쉬운데, 감사한 마음을 실제로 느끼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 간극 앞에서 나는 괜히 작아졌고, 애국이라는 단어를 쉽게 입에 올리지 못하는 내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들의 죽음이 너무 커서, 오히려 어떻게 감정을 가져야 할지 몰라 멀어졌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억하지 않는 것이 무례하다는 걸 알면서도, 기억하는 방법을 배운 적은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6월 6일, 제사의 계절에 놓인 국가의 기억
현충일이 왜 6월 6일인지 알게 되면서, 이 날이 단순히 달력에 적힌 숫자가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다. 6월은 6·25 전쟁이 시작된 달이고, 동시에 망종이라는 절기가 있는 시기다. 망종은 예로부터 조상의 제사를 지내던 때였다. 국가는 이 전통적인 시간 감각 위에 집단적인 기억을 올려놓았다. 1956년 현충기념일로 지정되고, 이후 현충일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법정기념일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잊히지 않게 붙잡아 두려는 노력처럼 느껴진다. 날짜를 정하고, 규정을 만들고, 매년 반복해서 기념하지 않으면 기억은 너무 쉽게 사라진다. 그래서 이 날은 축제가 될 수 없고, 늘 조금 무겁다. 국가는 제도를 통해 기억을 유지하려 하지만, 그 제도 아래에는 언제나 슬픔이 깔려 있다. 조용한 하루로 남겨진 이유도, 누군가를 크게 기리기보다는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라도 불러내지 않으면 사라질 이름들이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기억은 자연스럽게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국가가 대신 날짜를 붙잡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의 나와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안전하게 길을 걸었고, 밤이 되면 불이 켜진 방 안에서 조용히 하루를 정리하고 있다. 이 평온함은 너무 익숙해서 특별한 감정 없이 지나쳐버리기 쉽다. 하지만 현충일이라는 날짜는 억지로라도 멈춰 서게 만든다. 지금 숨 쉬고 있는 이 몸, 자유롭게 말하고 선택할 수 있는 이 일상이 누군가의 부재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애국심을 크게 외치지 않아도, 오늘만큼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게 된다. 기억하지 않으면 반복된다는 말이 진부하다고 느껴졌지만, 이 날을 보내며 그 말이 왜 계속 반복되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현충일은 이제 나에게 단순한 공휴일이 아니다.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하루, 그리고 살아 있는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의 하루가 되었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이 하루를 가볍게 넘기지는 않겠다는 다짐 정도는 남는다. 그 다짐이 크지 않아도, 이 날을 의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