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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 마약퇴치의 날, 이 날짜 앞에서 내가 멈추는 이유

by JiwonDay 2026.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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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는 알고 있지만, 몸은 아직 따라오지 않는다

6월 26일은 마약퇴치의 날이다. 국제연합(UN)이 마약류 오남용과 그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전 세계적으로 마약 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정한 세계마약퇴치의 날이다. 한국에서는 이 취지에 따라 1991년부터 기념식을 열어 왔고, 2017년 4월 18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을 통해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다. 마약류 등의 오남용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고, 마약류와 관련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 분명히 적혀 있다. 이 문장들은 교과서처럼 정확하고, 행정문서처럼 단정하다. 그래서 나는 이 기념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이 날짜가 매년 돌아올 때마다, 그 중요함이 언제나 내 몸까지 내려오지는 않는다. 달력 위에서는 분명히 표시되어 있는데, 내 하루의 감각은 그만큼 분주하지도, 무겁지도 않다. 기념일은 분명 사회의 시간인데, 그 사회의 시간이 내 개인의 리듬과 꼭 맞물리지는 않는다. 나는 이 날짜를 외우고 있지만, 이 날짜가 요구하는 감정까지 정확히 꺼내 들고 있지는 못한 상태로 서 있다.

 

 

걷고 있는 몸, 스쳐 지나가는 경고문

나는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지하철 입구를 지난다. 발바닥은 이미 오늘 하루의 무게를 알고 있는 것처럼 바닥을 익숙하게 딛는다. 오른발과 왼발이 번갈아 나가고, 그 리듬은 의식하지 않아도 유지된다. 가방끈이 한쪽 어깨에 조금 더 눌린다. 그 무게를 바꾸기 위해 잠깐 손을 올렸다가, 다시 내린다. 자동문 옆에 붙어 있는 포스터 하나가 시야 가장자리에 걸린다. 마약퇴치의 날을 알리는 문구, 강한 색 대비, 경고처럼 굵은 글씨. 하지만 나는 그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고개는 아주 약간만 돌아갔다가 다시 정면으로 돌아온다.

몸은 이미 집을 향해 방향을 정해 두었다. 에스컬레이터 쪽에서 올라오는 바람이 종아리를 스친다. 실내와 실외의 온도 차이가 피부에 닿는 순간, 나는 잠깐 숨을 고른다. 포스터를 읽지 않아도 그 내용이 무엇일지는 알고 있다. 위험하다는 말, 조심하라는 말, 예방하자는 말. 그 문장들은 이미 여러 번 본 형태라서, 눈으로 따라가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완성된다. 그래서 시선은 자연스럽게 더 앞을 본다. 발을 어디에 놓을지, 사람을 어떻게 피해갈지 같은 즉각적인 판단이 몸을 점유한다.

옆에서 지나가는 또래들은 더 빠르다. 누군가는 이어폰을 낀 채 고개를 끄덕이고, 누군가는 휴대폰 화면을 내리다 웃는다. 서로의 팔꿈치가 스칠 듯 말 듯 지나간다. 그 누구도 포스터 앞에서 서 있지 않다. 이 장면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안도감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낀다. 나만 무심한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 그리고 이렇게 무심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불편함. 내 몸은 지금 아무 문제 없이 움직이고 있고, 숨도 고르고, 심장 박동도 안정적이다. 그래서 더더욱 위험이라는 단어가 피부까지 내려오지 않는다.

마약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뉴스 속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진다. 내 다리는 지금도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고, 허벅지 근육은 익숙한 긴장만을 유지한다. 통제되지 않는 몸을 상상하라는 경고와, 지금 이 순간 잘 통제되고 있는 내 몸 사이에는 분명한 간격이 있다. 나는 그 간격을 일부러 줄이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지도 못한 채 걷는다. 위험을 알리는 문장과, 아무 일 없이 집으로 향하는 내 몸은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것처럼 나란히 지나간다. 나는 그 분리를 인정하면서도, 완전히 편안해지지는 못한 상태로 발걸음을 이어 간다.

화면 속 기록, 축약된 위험

마약에 대한 대부분의 이미지는 화면을 통해 들어왔다. 뉴스 클립의 짧은 영상, 포털 메인에 뜨는 제목, SNS에서 캡처된 기사 이미지. 사건은 늘 압축되어 있다. 몇 줄의 요약, 몇 초의 영상, 숫자로 환산된 양과 형량. 중독의 시간은 잘리지 않지만, 기록은 항상 잘린 상태로 도착한다. 나는 그 축약된 기록을 반복해서 본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만든 빠른 유통 구조, 핵가족화된 사회에서 개인이 고립되는 과정, 범죄 조직의 국제적 연결망 같은 설명들이 화면 아래 자막처럼 붙는다. 정보는 충분한데, 체류 시간은 짧다. 클릭하고, 스크롤하고, 넘긴다.

학창 시절의 기억도 비슷하다. 보건 교과서의 사진, ‘한 번의 선택이 인생을 바꾼다’는 문장. 시험이 끝나면 페이지는 덮이고, 기억은 희미해졌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미디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유명인의 얼굴이 나오면 클릭 수는 늘고, 며칠 지나면 다른 사건이 덮는다. 마약은 늘 ‘사건’으로만 기록된다. 누군가의 일상으로 스며드는 시간, 몸이 서서히 변하는 과정은 화면에서 길게 머물지 않는다. 나는 그 기록 방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왔다.

하지만 이 기념일을 앞두고 다시 화면을 들여다보면, 이상한 공백이 보인다.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오히려 남의 일이 된 느낌. 자주 접한 단어라서 무뎌진 감각. 또래들도 비슷하다. “요즘 심각하다”라는 말은 기사 링크와 함께 오지만, 그 대화는 오래 이어지지 않는다. 과거의 교과서, 현재의 미디어, 미래를 향한 경고가 한 화면 안에서 겹쳐 있지만, 그 겹침은 내 몸에 도달하기 전에 사라진다. 나는 그 간극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 채, 화면을 끈다.

기록을 남기지만, 결론은 미룬 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 기념일에 대해 쓰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마약퇴치의 날이 내 삶을 직접적으로 바꾸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관하다고 말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의 나를 긍정하고 싶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이 몸,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삶을 쉽게 부정하고 싶지 않다. 동시에 이 기념일이 말하는 가치는 분명히 존재한다. 사회가 왜 이런 날짜를 만들었는지, 왜 반복해서 상기시키려 하는지도 이해하려고 한다. 두 생각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 다만 아직 하나로 정리되지 않을 뿐이다. 나는 이 상태를 서둘러 명명하지 않기로 한다. 확신도, 다짐도 없이 그저 기록으로 남긴다. 이 날짜 앞에서 나는 완전히 무감각하지도, 완전히 공감하지도 못한 채 서 있다. 그 어정쩡한 상태 자체가 지금의 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여기까지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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