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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 6·25전쟁일 ― 아직 끝나지 않은 날짜 앞에서

by JiwonDay 2026.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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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은 달력 위에서 늘 같은 자리에 놓여 있지만, 그 날짜가 품고 있는 무게는 해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교과서에서 수없이 읽었고 시험 문제로도 여러 번 풀어봤다. 후세들에게 6·25전쟁의 참상과 역사적 교훈을 상기시키고, 참전용사의 위훈과 명예를 선양하며, 국민의 호국정신과 안보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이 날은 기념일이 되었다. 휴전 이후 국방부와 문공부가 주관해 기념행사를 이어오다가, 1973년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다는 설명도 이미 익숙하다.

중요하다는 건 분명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중요함이 언제나 같은 감정의 밀도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어떤 해의 6월 25일은 유난히 더 덥고, 어떤 해의 6월 25일은 시험 기간 한복판에 끼어 있다. 그날도 나는 등교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카페에 앉아 아이스 음료를 마신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무게와 지금의 내 하루 사이에는 늘 미묘한 간극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기념일을 단순히 과거를 추모하는 날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세대의 시간이 한 지점에서 겹치는 날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이해하려 애쓰는 지금의 나와, 살아냈던 누군가의 시간이 겹치는 지점 말이다.

 

 

몸으로 지나가는 평화의 하루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여름 옷이 몸에 잘 맞는지 한 번 더 확인한다. 어깨가 너무 드러나지 않았는지, 걸을 때 치마 자락이 불편하지 않은지 같은 사소한 감각들이 하루를 시작하는 기준이 된다. 지하철 안에서 나는 손잡이를 잡고 서 있고, 몸은 자연스럽게 균형을 찾는다. 창에 비친 내 모습은 평온하다. 이 평온함이 얼마나 많은 우연과 희생 위에 놓여 있는지, 몸은 쉽게 잊는다.

플랫폼에서 느껴지는 시선들 속에서도 나는 그저 오늘의 나로 서 있다.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순간을 알아차리지만, 그것이 위협적이지 않은 일상이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이 나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전쟁을 직접 겪지 않았고, 총성과 굶주림을 기억하지 않는 몸이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느긋하게 하루를 걷는다. 친구들은 6월 25일이라는 날짜를 달력에서 보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오늘 뭐 있었지?”라는 말로 대화를 넘기고, 수업 이야기나 약속 이야기로 화제는 금세 바뀐다.

그 무심함을 비난할 수는 없다. 나 역시 비슷하니까. 전쟁의 사회적 의미와 내 몸의 감각은 아직 완전히 연결되지 않는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몸으로는 체감하지 못하는 상태. 평화로운 일상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것이 얼마나 취약한 균형 위에 놓여 있는지 자주 잊는다. 그래서 6·25전쟁일은 내게 아직 ‘생각해야 하는 날’에 가깝다. 자동으로 감정이 따라오는 날은 아니다.

배웠지만 이해하지 못했던 시간들

6·25전쟁의 주요 내용은 이미 여러 번 배웠다. 남과 북, 이념의 대립, 전선의 이동, 휴전 협정.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며 이 전쟁은 점점 더 ‘과거의 사건’처럼 정리되어 왔다. 핵가족화된 사회에서 전쟁 경험은 집안의 중심 이야기에서 조금씩 밀려났고, 직접 들을 수 있는 증언은 점점 줄어들었다. 학교에서는 기념일마다 방송을 듣고, 교실에서 잠시 묵념을 했다. 그 순간들은 정해진 형식 안에서 흘러갔다.

그때의 나는 시험 범위 안에서만 전쟁을 이해했다. 연도와 사건 순서를 외우는 데 집중했고, 참전용사의 삶이나 전쟁 이후의 상처까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그 시절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기사와 기록을 읽으며 전쟁의 참상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감정은 여전히 복잡하다. 이해가 늘었다고 해서, 그 무게를 온전히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었다.

어느 날 SNS에서 우연히 본 한 문장이 마음을 흔든 적이 있다. “우리 할아버지는 6월만 되면 말을 줄이셨다”라는 짧은 글이었다. 구체적인 설명도 없었지만, 그 문장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내가 아직 살아보지 않은 미래의 시간이 한순간 겹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평범한 하루와 누군가의 침묵이 같은 달력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실감났다.

기억하려는 태도에 대하여

왜 나는 이 기념일에 대해 굳이 글을 쓰고 있을까. 스스로에게 그렇게 묻게 된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기록일 수도 있고, 나 자신을 설득하기 위한 과정일 수도 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지금의 나와, 국가가 요구하는 호국정신 사이에는 어딘가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 내 몸과 삶을 긍정하고 싶은 마음이, 희생과 헌신을 강조하는 서사와 어긋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둘은 완전히 모순되는 태도는 아닐지도 모른다. 안전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기억 방식일 수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다,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쪽이 지금의 나에게는 더 정직하다.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시간을 함부로 단순화하지 않는 것, 그리고 너무 쉽게 잊지 않으려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은 아직 미완이다. 6월 25일을 어떤 감정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나는 여전히 형성 중인 상태다. 확정된 답을 내리기보다는, 매년 이 날짜 앞에서 조금씩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가능성을 남겨두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이 빈자리에 끼워 넣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오늘의 기록을 여기까지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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