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은 6ㆍ10만세운동기념일이다. 달력 속에서 이 날짜는 다른 기념일들과 나란히 놓여 있지만, 그 안에는 1926년 6월 10일이라는 분명한 하루가 들어 있다. 순종의 장례일이었던 그날, 일제의 강제병합과 식민지배에 항거하는 만세시위가 학생들을 중심으로 서울 곳곳에서 일어났다. 애도를 명목으로 한 통제와 질서가 준비된 날에, 사람들은 전혀 다른 감정과 목소리를 거리로 꺼내 들었다. 이 기념일이 제정된 이유는 일제에 맞서 싸운 순국선열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계승하기 위함이라고 설명된다. 그러나 그 설명을 이해하는 것과, 그 의미를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언제나 같은 속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마음이 실제로 반응하는 사이에는 늘 미묘한 간격이 있다. 이 간격은 무지에서 비롯되기보다는, 오히려 너무 많은 기념일과 너무 빠른 일상 속에서 생겨난 거리감에 가깝다. 그래서 이 날은 단순한 추모의 날짜라기보다, 서로 다른 세대의 시간이 겹쳐지며 어긋나는 지점처럼 느껴진다. 그 어긋남 속에서 나는 이 기념일을 바라보고 있다.

유리창에 비친 아침, 몸이 먼저 감지하는 하루
아침 등굣길의 지하철은 늘 그렇듯 붐빈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은 생각보다 선명하다. 몸에 잘 맞는 옷을 입고 서 있는 자세, 손잡이를 잡은 손의 각도, 발끝에 실린 체중의 방향까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사람들 사이에서 시선이 스칠 때면 약간의 긴장과 함께, 이 나이의 몸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불편함과 무관심, 그리고 스스로를 인식하는 감각이 한순간에 겹친다. 캠퍼스로 향하는 길은 평소와 다르지 않고, 카페 앞 테이블에는 노트북과 아이스커피가 놓여 있다. 친구들의 대화는 시험 일정, 과제 마감, 아르바이트, 주말 약속으로 이어진다. 그 틈에서 6월 10일이라는 날짜는 좀처럼 호출되지 않는다.
나 역시 머리로는 이 날의 의미를 알고 있지만, 몸은 여전히 평범한 하루의 리듬을 따른다. 이 괴리는 의도적인 회피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일상 감각에 가깝다. 또래들 사이에서 기념일은 때로는 너무 많고, 때로는 너무 멀다. 누군가는 기념일을 챙기는 일 자체를 피곤해하고, 누군가는 아예 기억하지 않는다. 개인의 몸 감각과 기념일이 가진 사회적 의미는 아직 내 안에서 하나로 겹쳐지지 않는다. 그 분리된 상태를 억지로 봉합하기보다, 지금은 그 간격을 그대로 두는 쪽이 더 솔직하게 느껴진다. 이 나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태도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즉각적으로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아직은 유예된 감각.
학생이라는 이름의 거리, 배운 역사와 사는 역사
6ㆍ10만세운동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순종의 장례일인 1926년 6월 10일, 서울 곳곳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고, 그 움직임은 곧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학생과 시민들이 함께 거리로 나섰고, 이 운동은 이후 학생 주도의 항일운동이 더욱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3ㆍ1운동,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과 함께 주요 만세운동으로 꼽힌다는 설명은 교과서 속에서 익숙하다. 그러나 그 익숙함이 오히려 거리감을 만들기도 한다. 너무 자주 등장하는 사건은 시험 문제로만 남고, 실제의 감정은 빠져나간다.
학창 시절의 나는 이 사건을 시험 범위 안에서만 이해했다. 날짜와 명칭, 의의를 외우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왜 하필 학생들이었는지, 그들이 거리로 나설 때 어떤 두려움과 결심이 있었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감정이 단순해진 것은 아니다. 산업화와 도시화, 핵가족화를 거치며 기념일의 의미는 점점 형식 속으로 들어갔고, 2020년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다는 사실도 뉴스의 한 줄로 소비되었다. SNS에서 누군가가 이 날을 언급하는 글을 올리는 것을 보며 잠시 멈칫하지만, 곧 다른 게시물에 밀려난다. 과거의 학생들과 현재의 나는 같은 이름을 공유하지만, 그 이름이 놓인 자리와 위험의 크기는 전혀 다르다. 이 차이를 무시한 채 감동을 강요받을 때, 오히려 마음은 더 멀어진다.
기억을 기록한다는 것, 아직 완성되지 않은 태도
왜 굳이 6ㆍ10만세운동기념일에 대해 글을 쓰게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의 몸과 삶을 긍정하며 살아가려는 태도는, 누군가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는 요구와 충돌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즐겁게 걷고, 웃고, 일상을 누리는 내가 이 날을 말해도 되는지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두 태도는 완전히 모순되지는 않는다. 기억은 반드시 엄숙한 자세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고, 계승은 동일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나에게 가능한 방식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음을 인정한 채 기록을 남기는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보다는 ‘어떤 태도로 기억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쪽에 서 있다. 이 글은 분명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아직 형성 중인 인식을 기록하는 시도에 가깝다. 시간이 지나면 이 날을 대하는 감정도 달라질 것이다. 더 무거워질 수도 있고, 더 또렷해질 수도 있다. 다만 지금 이 시점에서의 나는, 이 기념일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그것을 지나치지 않으려 한다. 6월 10일을 지나며 남겨진 이 흔들림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경험을 조용히 끼워 넣을 수 있는 여백으로 남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