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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의병의 날, 나라사랑은 언제 시작되는가

by JiwonDay 2026.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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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침마다 학교로 가는 길이 유난히 내 몸에 달라붙는다. 새벽에 겨우 떠진 눈이 다시 감기려 하고, 목도리 안쪽에 갇힌 숨이 뜨겁게 차오르다가 갑자기 차가운 플랫폼 바람에 식는다. 이어폰 한쪽이 자꾸 빠져서 손끝으로 귀 뒤를 만지작거리며 고치는데, 그때마다 내 머리카락이 목덜미를 스치고, 사소한 자극이 괜히 짜증으로 번진다. 지하철 안은 생각보다 덥고, 누군가의 어깨가 내 팔을 밀치면 별것 아닌데도 심장이 먼저 ‘툭’ 하고 튄다. 그런 날에는 “나라”, “국가”, “애국” 같은 단어가 유난히 멀다. 뉴스가 떠드는 기념일 이야기들도, 교양 수업에서 스치듯 지나간 역사도, 다 내 현실과는 다른 층에 있는 듯하다. 솔직히 말하면, 6월 1일이 ‘의병의 날’이라는 사실을 예전에는 제대로 붙잡아 본 적이 없다. 과제 마감일이나 조별 발표 날짜를 더 선명하게 기억하는 나에게, 누군가의 희생을 기리는 날은 달력 한 귀퉁이에 적힌 글자였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그 글자가 눈에 걸렸다. 나는 ‘나라’라는 단어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도, 싫어한다고 말한 적도 없다. 다만 그 단어가 내 하루의 체온과 연결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피곤해 보이는 순간, 문득 ‘이 피곤함을 말할 수 있는 자리 자체가 얼마나 큰 안전 위에 서 있는 거지?’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의병의 날이 단순한 역사 수업의 파트가 아니라, 내 일상 아래 깔린 바닥을 두드려 보는 날처럼 느껴졌다.

 

 

자발성이라는 가장 잔인한 선택

의병을 떠올리면 우리는 흔히 ‘자발적으로 일어난 사람들’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하지만 자발성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잔인하다. 강요가 없었다는 말은 선택의 책임이 오롯이 개인에게 내려앉았다는 뜻이니까. 조선 말기, 국가의 보호막은 여기저기 찢겨 나갔고, 공권력의 말은 힘을 잃었다. 을미의병과 을사의병 같은 이름으로 남은 흐름은, 사실 ‘이제는 더 못 참겠다’는 민중의 체온이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끓어오른 결과였을 것이다. 그때 의병으로 나선 사람들은 군인이 아니었다. 훈련된 전사가 아니라, 논에서 흙을 뒤집던 농민이었고, 서당에서 글을 읽던 유생이었고, 시장에서 물건을 나르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들이 총과 낫을 쥐는 순간, 손바닥은 거칠게 갈라지고, 한 번 움켜쥔 힘이 떨림으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고, 밤의 정적 속에서 발소리 하나에도 숨이 멎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보상도 약속도 없었다. 이름이 남을 가능성보다,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먼저 선명했을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움직였다. 영웅적 결단이라기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감정이 몸속에서 차오르다 끝내 밖으로 터진 것에 가까웠을지 모른다. ‘나라사랑’이라는 말이 교과서 속 표어가 아니라, 생존의 공포와 맞닿아 있던 순간. 의병의 자발성은 숭고함 이전에 처절함이었다. 우리는 그 선택을 쉽게 ‘정신’이라는 단어로 묶지만, 사실 그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망설임과, 무릎을 끌어안고 버틴 밤, 가족의 얼굴이 겹쳐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출정 전에 어린 동생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었을지도 모르고, 어떤 이는 부엌의 연기 냄새를 오래 맡으며 ‘이 냄새를 다시 맡을 수 있을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희생을 미화하지 않는 기억의 방식

‘의병의 자기 희생정신을 기린다’는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나는 자동으로 고개를 낮추게 된다. 존경과 조심스러움이 동시에 올라오니까. 희생은 분명 존중받아야 하지만, 동시에 다시 요구되어서는 안 된다. 의병이 보여 준 애국·애족 정신은 모두가 따라야 할 행동 매뉴얼이 아니라, 한 시대가 얼마나 벼랑 끝에 몰렸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에 가깝다. 그들은 나라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목숨을 내놓아야만 증명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의병을 이야기할 때, 그들을 너무 빛나는 존재로만 그리고 싶지 않다. 두려웠을 것이고, 발목이 잡히는 밤도 있었을 것이고, ‘내가 왜 여기까지 왔지’ 하는 후회가 목구멍까지 차오른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다리에 상처가 덧나 절뚝였을 테고, 누군가는 굶주림에 속이 쓰려도 남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싸움보다 ‘돌아갈 집이 없어질까’가 더 무서웠을 수도 있다. 그리고 더 잔인한 건, 그들의 선택이 기록에서 종종 ‘숭고함’으로만 정리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실의 희생은 발끝에서부터 올라온다. 추운 새벽에 젖은 옷이 살에 달라붙고, 배가 고픈데도 먹을 것을 남에게 먼저 내주고, 피가 굳어 옷자락이 무겁게 붙어 있는 상태로 또 걸어야 하는 것. 그런 구체적인 고통을 상상할수록, 나는 ‘정신’이라는 말로 그들을 편하게 정리하고 싶지 않다. 희생을 미화하지 않는 기억, 다시 같은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 존중. 그것이 의병 정신을 오늘로 가져오는 가장 정직한 방식일 것이다. 존경은 반복의 명령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오늘의 나라사랑, 오늘의 의병

2010년 5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6월 1일이 ‘의병의 날’로 지정되었다는 문장을 읽으면, 나는 ‘기념일’이라는 제도가 갑자기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발적으로 일어났던 의병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고, 그 애국·애족 정신을 계승·발전시켜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취지. 말은 단정하고 정돈되어 있는데, 그 말이 가리키는 과거는 정돈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나에게 의병의 날은 과거를 반복하라는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질문이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가, 어떤 불의 앞에서 ‘피곤하다’는 이유로 눈을 돌리고 있는가. 나라사랑은 거창한 희생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일상의 무관심을 의심하는 순간, 당연함을 낯설게 바라보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지하철에서 누군가 쓰러졌을 때 망설임 없이 다가갈 용기, 혐오와 조롱이 유행처럼 번질 때 조용히라도 ‘그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목소리, 작은 규칙을 지키는 성실함 같은 것들. 더 나아가 ‘국민통합’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나는 합치라는 명령보다 서로의 상처를 덜 찌르는 생활을 먼저 떠올리고 싶다. 의병이 지키려 했던 ‘나라’가 결국 사람들의 삶이었다면, 오늘의 의병은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쪽으로 얼굴을 바꿔야 한다. 거창한 깃발이 아니라, 내 주변의 약한 목소리를 무시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내가 틀렸을 때는 고집을 내려놓고 고치는 용기. 그런 작은 선택들이 쌓여서, 위기 앞에서 누군가가 홀로 떠밀리지 않게 만드는 바닥이 될 것이다. 나는 아직 20살이고, 대단한 것을 걸 각오는 없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달력 한 귀퉁이의 글자를 가볍게 넘기지 않겠다고, 아주 작게라도 마음속에서 약속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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