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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 바다의 날, 파도 앞에 서 있는 나

by JiwonDay 2026.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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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바다와 아무 상관없는 하루였다. 강의실의 공기는 난방을 덜 끈 것처럼 애매하게 따뜻했고, 창가에 앉아 있던 나는 햇빛에 데워진 의자 때문에 계속 자세를 바꿨다. 종아리 안쪽에 닿는 양말의 고무줄 자국이 유난히 선명하게 느껴졌고, 노트 위로 떨어지는 빛은 펜 끝을 번쩍거리게 만들어 눈이 금세 피로해졌다. 누군가 던진 가벼운 농담에 웃어야 할 타이밍을 놓친 뒤로는, 괜히 얼굴이 뜨거워지고 심장이 빨리 뛰었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내 기분을 이렇게 좌우한다는 게 얄미워서, 나는 더 시크한 척하며 커피를 주문했는데, 막상 한 모금 삼키자 생각보다 너무 써서 목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몸은 피곤한데 머리는 예민해서, 손목에 걸린 가방 끈의 거친 섬유감까지 신경이 쓰였다.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흔들릴 때마다 어깨 근육이 긴장했다가 풀렸고, 그 반복이 오히려 나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이런 날에는 꼭 이유 없이 어딘가를 ‘바라보고’ 싶어진다. 말을 줄이고, 사람을 피하고, 대신 넓은 것을 보고 싶다. 그래서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바다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그냥 파도를 보고 있으면 오늘 하루의 가시 같은 기분도 같이 닳아 없어질 것 같았다. 바다에 가면, 내가 못난 표정을 짓고 있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바람이 부는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집 앞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하나 집어 들었는데, 계산대 앞에서 줄이 길어지는 바람에 괜히 손이 땀에 젖었다. 뒤에 서 있던 사람이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자, 나도 모르게 심장이 철렁했고, 그 순간 내가 얼마나 날카롭게 하루를 견디고 있는지 들켜 버린 느낌이 들었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틀어도, 가사 하나하나가 나를 비웃는 것 같아 결국 끄고 말았다. 내 안에서 계속 ‘괜찮아’와 ‘안 괜찮아’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바다로 가는 길은 도망이 아니라 정리라고 믿기로 했다. 눈앞에 넓은 수평선이 펼쳐지면, 내 감정도 그만큼 넓어질 것 같았다. 내가 작아지는 대신, 세상이 조금 더 크게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파도를 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바다 앞에 서면 항상 몸이 먼저 반응한다. 파도 소리가 귀가 아니라 가슴 쪽을 두드리는 것처럼 느껴지고, 소금기 섞인 공기가 입술 위에 얇게 앉는다. 바람이 민소매 사이로 스치면 팔의 솜털이 한꺼번에 일어서는 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어깨를 한 번 움츠린다. 물결이 밀려왔다가 빠질 때마다 발밑의 모래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는데, 그 작은 흔들림이 발목부터 종아리까지 전해져 올라오면 나는 숨을 고르게 된다. 모래가 젖어 단단해진 구간과, 마른 모래가 부드럽게 무너지는 구간을 번갈아 밟을 때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바뀌는 것 같아서, 정신이 이상하게 또렷해진다. 여태까지 나에게 바다는 휴식의 배경이었다. 사진을 찍기 좋은 풍경이었고, 여름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친구들이랑 웃으며 걷고, 바람에 머리가 엉망이 되어도 괜찮은 곳. 하지만 오늘은 바다가 ‘예쁘다’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파도는 늘 같은 방향에서 오는데도 매번 다른 모양으로 부서졌고, 그 반복은 오히려 인간의 계획과는 무관한 리듬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문득,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서 있는 이 바다가 누군가에게는 삶의 현장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경쟁의 무대였다는 사실이 스쳤다. 배가 드나드는 항로, 어선을 묶는 부두, 밤새 불을 켜 놓는 등대, 그리고 그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손. 바다는 낭만의 배경이 아니라 노동과 책임의 자리일 수 있었다. 내가 파도를 ‘힐링’이라고 부르며 가볍게 소비하는 동안, 누군가는 같은 바다를 ‘일’이라고 부르며 버텼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파도 소리가 이전보다 조금 무겁게 들렸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피부가 시원해지는데, 그 시원함 뒤에 묘하게 쓴맛 같은 감정이 남았다. 나도 모르게 발끝으로 모래를 긁으며, ‘나는 바다를 얼마나 알고 있었지?’ 하고 속으로 물었다.

바다는 이미 경쟁의 공간이었다

그 물음은 결국 바다의 ‘현재’로 나를 끌고 갔다. 1994년 11월, 유엔 해양법협약이 발효되면서 세계는 바다를 바라보는 방식을 더 노골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바다는 더 이상 막연히 열려 있는 공간이 아니라, 관리하고 확보해야 할 자원이 되었다. 해저에 묻힌 광물과 에너지, 풍부한 어장, 그리고 국가 간 물류가 오가는 항로는 곧 국력의 일부가 되었다. ‘바다를 가진 나라’라는 말이 낭만이 아니라 전략이 되는 순간이었다. 각국이 해양자원 개발과 확보를 두고 경쟁 체제로 전환했다는 문장을 읽으면, 나는 처음엔 조금 딱딱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바다 앞에 서 보니 그 말이 피부로 이해됐다. 파도 너머는 그냥 수평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선들이 겹겹이 놓인 지도였다. 일본이 7월 20일을 ‘바다의 날’로 제정하고, 미국이 5월 22일을 ‘바다의 날’로 지정한 것도 이런 흐름 속5월 31일 바다의 날, 파도 앞에 서 있는 나 -->

그런데 우리에게 바다는 갑자기 중요해진 게 아니다. 이야기는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시대, 해상 교역의 중심이었던 청해진과 그곳을 이끌었던 장보고의 이름은, 바다가 곧 국가의 생존과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바다를 통해 길을 만들고, 길을 지켜 사람을 살린다’는 감각은 이미 그때부터 있었던 것이다. 완도라는 지명만 들어도 나는 지도 위의 점이 아니라, 바람과 물비린내, 배의 나무 냄새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된다. 수백 년 전에도 누군가는 같은 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기회’로, 동시에 ‘위험’으로 받아들였겠지.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해양 개발은 필요하다. 에너지와 자원, 산업과 일자리가 걸려 있고, 국제 경쟁 속에서 뒤처질 수 없다는 압박도 있다. 하지만 개발만을 외치다 보면 바다의 상처는 누가 감당할까. 미세플라스틱과 해양오염, 어장 변화와 기후 위기는 이미 우리 일상으로 다가와 있다. 바다는 깊고 넓어서 다 받아줄 것 같지만, 사실 바다는 무한한 쓰레기통이 아니다. 오늘 내가 모래를 밟으며 느낀 촉감은 ‘자연이 내게 주는 감각’이었지, 내가 빼앗아도 되는 권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바다의 날이 내게는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균형을 배우는 날처럼 느껴진다. 경쟁과 공존, 개발과 보호 사이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묻는 날. 그리고 그 질문은 생각보다 사적인 자리에서 시작된다. 내가 바다를 소비하는 방식, 내가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 내가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마음. 오늘 해변에서 나는 잠깐 상처받았던 기분을 바다에 버리고 싶어서 왔는데, 오히려 바다가 나에게 더 큰 책임감을 돌려주었다.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이제는 내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줄 것 같다. 5월 31일이라는 날짜는, 바다를 ‘배경’으로 두던 나에게 바다를 ‘주제’로 세우라고 조용히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걸 손가락으로 정리하면서, 마음속으로 한 번 더 다짐했다. 파도는 계속 오고 가겠지만, 그 파도를 바라보는 내 태도는 달라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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