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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해외파병용사의 날을 생각하며

by JiwonDay 2026.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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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별일 아닌 하루였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자꾸 가라앉았다. 강의실 창가에 앉아 햇빛이 책상 모서리를 타고 흐르는 걸 멍하니 바라보다가, 괜히 손목을 만지작거리고, 가방 끈이 어깨에 닿는 감각이 거슬려서 자세를 몇 번이나 바꿨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바람이 불어 머리칼이 목덜미에 붙었는데 그 사소한 촉감마저 신경 쓰였다. 이유 없이 예민해진 날이었다. 친구와 나눈 대화도 어딘가 겉돌았고, 웃고 있었는데 마음은 다른 데 가 있었다. 이런 날에는 늘 그렇듯 혼자 걷는 시간이 필요했다. 캠퍼스 끝자락을 따라 천천히 걷다가 게시판에 붙은 작은 안내문을 보게 되었고, 그 짧은 문장이 오늘 하루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기념일이라는 단어는 늘 멀게 느껴졌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햇살이 스미는 캠퍼스의 일상, 국제적 공간의 단정한 긴장, 노을 속 사색이 한 인물의 시간처럼 이어진 삼분할 이미지.

 

기념일이라는 이름 아래의 무심함

솔직히 말하면 나는 기념일에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다. 달력에 적힌 글자들은 대부분 지나치게 정돈되어 있고, 그 정돈됨 속에서 실제 사람의 감정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기념일을 보면 늘 한 박자 늦게 생각한다. 아 그렇구나, 그런 날이 있었지, 하고 지나쳐버린다. 해외파병이라는 말도 그랬다. 텔레비전 뉴스나 교과서 속에서 몇 번 스쳐갔을 뿐, 내 삶의 결에 직접 닿아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낯선 땅으로 떠났다는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 안쪽이 묘하게 조여 왔다. 나는 지금 이 시간에도 따뜻한 강의실에 앉아 있고, 불편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마실 수 있고, 마음이 힘들면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같은 나이였을지도 모르는 시절에, 이름도 생김새도 다른 나라로 떠나야 했다는 사실이 갑자기 현실처럼 느껴졌다. 기념일은 추모를 강요하지 않지만, 기억을 요청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로 나간다는 것은 단순히 장소를 옮기는 일이 아니다. 언어가 다르고, 하늘의 색이 다르고, 밤의 소리도 다른 곳에서 매일을 살아낸다는 뜻이다. 그곳에서는 작은 표정 하나, 몸짓 하나에도 긴장이 깃들었을 것이다. 낯선 시선 속에서 자신의 몸을 다잡고, 군복이 피부에 닿는 감각을 느끼며 하루를 버텼을 것이다. 나는 가끔 거울 앞에 서서 내 몸을 바라본다. 어깨선이 어떤지, 허리가 어떻게 꺾이는지, 오늘은 얼굴이 좀 부은 것 같은지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그런 사소한 자의식조차 허락되지 않는 환경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내가 평소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감각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제도가 기억을 따라잡기까지의 시간

이 날이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미뤄질 수 있는지 생각했다. 이름은 있었지만 자리는 비어 있었던 시간, 의미는 있었지만 날짜는 없었던 시간. 그 공백은 곧 관심의 부재였을 것이다. 어떤 희생은 너무 조용해서, 너무 먼 곳에서 이루어져서,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 틈을 얻지 못한다. 해외에서의 파병은 늘 국제라는 단어 뒤에 숨어 있었고, 평화라는 말 뒤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평화는 누군가의 긴장 위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제도가 뒤늦게나마 그 날을 특정했다는 것은, 국가가 기억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제도라는 말을 들으면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 안에는 사람의 선택과 결정이 쌓여 있다. 누군가는 이 날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왜 지금이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렇게 오랜 논의 끝에 한 날이 정해졌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특히 국제적인 평화를 기념하는 날과 같은 날로 선택되었다는 점에서, 해외파병이라는 행위가 단순한 군사 활동이 아니라 세계 속의 약속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 약속은 종이에 쓰인 문장이 아니라, 실제 사람의 몸과 시간으로 지켜졌을 것이다.

나는 아직 국가라는 말이 완전히 실감나지 않는다. 투표를 하고, 세금을 내고, 뉴스를 보면서도 국가는 늘 추상적이다. 하지만 해외파병용사의 이야기를 읽으며 처음으로 국가가 개인의 삶에 어떻게 들어오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어떤 선택은 개인의 의지이면서 동시에 국가의 요청이었을 것이다. 그 경계에서 흔들렸을 마음, 명령이라는 말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접어야 했던 순간들을 상상해본다. 그 상상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그 불편함이 오히려 진짜 기억에 가까워 보였다.

 

같은 시대를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감각

나는 스무 살이고, 내일 입을 옷을 고민하며 잠들고, 시험이 끝나면 어디로 놀러 갈지를 생각한다. 내 몸은 아직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고, 감정은 자주 요동친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해외로 떠났던 그들도 누군가의 스무 살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 그들도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만지며 고민했을 것이고,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미워했을 것이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을 것이다. 다만 그 생각을 눌러야 했을 뿐이다. 그 눌림이 쌓여 몸에 남았을지도 모른다.

돌아온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기념일은 돌아온 순간을 축하하지만, 돌아온 이후의 시간을 충분히 말해주지는 않는다. 익숙했던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몸은 이미 다른 시간을 지나왔을 것이다. 밤에 잠들지 못하는 날, 갑작스러운 소리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불안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은 훈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나는 가끔 이유 없이 우울해질 때가 있다. 아무 일도 없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잘 안 쉬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약한 건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한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감정은 늘 이유를 갖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해외파병용사의 날을 기리는 방식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삶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같은 시대를 살았던 누군가로서 조용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내가 느꼈던 사소한 감각들, 햇빛의 온기와 바람의 차가움, 불편한 마음까지 포함해서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잠시라도 생각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억이다. 이 날은 그렇게, 내 일상의 온도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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