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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방재의 날, 재난은 모두에게 공평하지만 준비는 그렇지 않다

by JiwonDay 2026.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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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 몸은 먼저 반응한다. 어깨가 살짝 굳고, 손끝에 미세한 긴장이 감돈다. 뉴스에서 태풍 경로가 바뀌었다는 속보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몸은 이미 상황을 상상하며 대비 태세에 들어간다. 나는 20대 여대생이고, 서울의 작은 원룸에서 혼자 산다. 재난이라는 단어는 교과서나 뉴스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 이렇게 혼자 사는 나의 일상과 직접 맞닿아 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면 계단을 내려가야 하고, 정전이 되면 어둠 속에서 스마트폰 불빛 하나에 의지해야 한다. 이런 순간마다 나는 깨닫는다. 재난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오지만, 그것을 맞이하는 준비 상태는 결코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5월 25일 방재의 날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이런 감각적인 경험 이후였다. 방재의 날은 단순히 달력 속 기념일이 아니라, 나처럼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왜 대비가 필요한지를 상기시키는 장치다. 이 날이 제정된 이유는 명확하다. 자연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교육과 홍보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재난을 ‘운이 나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처럼 여기며 지나친다. 나 역시 그랬다. 몸으로 느끼기 전까지는 말이다. 방 안에 앉아 비상 상황을 상상하면, 심장이 조금 빨리 뛰고 호흡이 얕아진다. 이런 신체 반응은 공포라기보다 경고에 가깝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알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묻는 신호다. 방재의 날은 바로 그 질문을 사회 전체에 던지는 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 개의 프레임에 같은 인물이 각기 다른 의상과 포즈로 등장해, 재난 대비와 행동의 변화를 밝고 역동적인 분위기로 표현한 합성 포스터 이미지.

 

국가가 방재의 날을 만든 이유, 그리고 개인의 자리

방재의 날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기념일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반복되는 자연재해와 누적된 피해, 그리고 이를 줄이려는 국제사회의 고민이 있다. 유엔은 1989년 12월 22일 총회에서 1990년대를 ‘자연재해 경감을 위한 10개년 계획 기간’으로 정했다. 자연재해를 단순한 불가항력으로 보지 않고, 체계적인 대응을 통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매년 10월 둘째 주 수요일을 ‘세계 자연재해 경감의 날’로 지정했다. 이 흐름은 곧 한국 사회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는 1996년 「자연재해대책법」과 같은 법 시행령에 따라 5월 25일을 ‘방재의 날’로 지정했다. 이후 전국적으로 방재 관련 행사가 실시되었고, 재난 대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끌어올리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2004년에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시행령」에 방재의 날 조항이 추가되면서, 방재는 자연재해를 넘어 사회 전반의 안전 문제로 확장되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재해대책법」에서는 방재의 날 관련 조항이 삭제되었다. 이는 방재의 개념이 특정 재해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 전체의 안전 관리 체계 속으로 흡수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제도적 변화는 국가 차원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흐름 속에서 개인의 자리를 생각하게 된다. 법과 제도는 틀을 만들지만, 실제 재난 상황에서 몸을 움직이는 건 결국 개인이다. 어두운 계단을 내려갈 때 느끼는 차가운 손잡이의 감촉, 비상 가방을 들어 올릴 때 손목에 전해지는 무게감, 대피로를 확인하며 머릿속에 그려지는 동선. 이런 감각들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다. 방재의 날은 국가가 만든 기념일이지만, 그 의미는 개인의 몸과 생활 속에서 완성된다고 나는 느낀다.

법은 진화했지만 준비의 격차는 남아 있다

재난 관련 법과 제도는 분명 발전해 왔다. 자연재해대책법에서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재난을 보다 종합적으로 관리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제도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준비의 격차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누구는 비상 가방을 미리 준비해 두고, 누구는 재난 문자가 와도 제대로 읽지 않는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어도 대응 능력은 제각각이다. 이 차이는 결국 평소의 관심과 교육에서 비롯된다.

나는 자취를 시작한 이후에야 대피 요령과 비상 물품 목록을 제대로 살펴보게 되었다. 혼자 있는 공간에서 재난을 맞닥뜨린다는 상상은 묘하게도 내 몸의 감각을 또렷하게 만든다. 바닥에 맨발로 서 있을 때 느껴지는 차가움, 정전이 되었을 때 방 안을 채우는 정적, 휴대전화 진동이 울릴 때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 이런 감각들이 쌓이며 나는 준비의 필요성을 체감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경험은 낯설다. 그래서 방재의 날과 같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방재의 날은 단순한 행사나 캠페인이 아니라, 준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이다. 교육과 홍보를 통해 재난을 ‘나와 무관한 일’이 아니라 ‘언젠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인식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나는 이 날이 일회성으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매년 반복되며 생활 속 습관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준비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준비하지 않는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위험하다.

내 몸이 기억하는 대비, 그리고 방재의 날의 의미

재난 대비를 생각할 때 나는 항상 내 몸의 감각을 기준으로 삼는다. 불안으로 굳어지는 어깨를 풀기 위해, 나는 준비를 선택한다. 비상 가방을 정리하며 하나씩 물건을 넣을 때, 손끝에 전해지는 질감은 나를 안심시킨다. 대피로를 미리 걸어보며 숨이 얼마나 차는지, 계단의 폭은 어떤지 확인하는 과정은 내 몸이 공간을 기억하게 만든다. 이런 자기 인식은 단순한 정보 습득을 넘어선다. 그것은 나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몸으로 배우는 과정이다.

방재의 날은 이런 개인적인 대비를 사회적으로 연결하는 날이다. 재난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닥치지만, 그 순간을 어떻게 통과하느냐는 각자의 준비에 달려 있다. 나는 여대생이라는 이유로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다. 동시에 무력한 존재도 아니다. 내가 알고, 준비하고, 행동할 수 있는 만큼 나는 안전해질 수 있다. 방재의 날이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경각심을 높이고, 교육과 홍보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은 결국 개인의 선택과 연결된다.

5월 25일 방재의 날을 떠올리면, 나는 더 이상 추상적인 재난을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내 몸이 기억하는 감각들을 떠올린다. 어둠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미리 그려 둔 동선, 긴급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한 작은 준비들. 방재의 날은 나에게 공포의 날이 아니라, 안심을 연습하는 날이다. 그리고 그 연습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된다. 재난은 모두에게 공평하지만, 준비는 선택이다. 나는 그 선택을 이미 내 몸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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