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세계인의 날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나는 그다지 특별하게 느끼지 못했다. 달력 속 기념일 중 하나, 시험 기간에 스쳐 지나가는 날짜 정도로 인식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내가 살아가는 공간이 조금씩 변하면서 이 날의 의미는 내 몸의 감각처럼 서서히 다가왔다. 캠퍼스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언어의 소리, 카페에서 옆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던 외국인 손님, 같은 강의실에서 함께 웃고 졸던 친구들. 예전에는 그저 ‘다른 풍경’으로 인식되던 장면들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며들었다. 그 변화는 머리로 이해한 결과라기보다는, 몸이 먼저 익숙해진 감각에 가까웠다. 낯선 억양을 들으며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던 긴장감, 말 한마디를 건네기 전 심장이 살짝 빨라지던 순간들이 점점 사라지고, 대신 숨을 고르듯 편안한 거리감이 생겨났다. 관능적이라는 표현이 과하다면, 최소한 나는 이 변화가 생각보다 육체적인 경험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시선이 머무는 시간, 거리의 간격, 목소리를 내는 높낮이 같은 것들이 서서히 조정되었다. 세계인의 날은 그렇게 내 삶에서 추상적인 기념일이 아니라, 나의 감각이 바뀌어 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하는 날이 되었다. 그리고 이 개인적인 변화 뒤에는,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합의해 온 역사와 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 날은 더욱 또렷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문화 차이는 갈등이 아니라 해석의 차이였다
처음 외국인 친구를 사귀었을 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묘한 긴장감이 남아 있다. 잘못 말하면 상처를 주지 않을까, 내가 너무 무례해 보이지는 않을까 스스로를 검열하느라 몸이 먼저 굳어버렸다. 웃는 타이밍, 고개를 끄덕이는 방식, 농담의 수위까지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 낯섦은 머리보다 몸에서 먼저 반응했다. 어깨가 조금 올라가고, 손끝에 힘이 들어가며, 말끝을 흐리게 만드는 습관 같은 것들. 하지만 시간을 함께 보내며 알게 되었다. 우리가 불편함이라고 느꼈던 많은 순간들은 ‘틀림’이 아니라 ‘해석의 차이’였다는 것을. 문화와 언어가 다르면 같은 행동도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힐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내 몸은 다시 느슨해졌다. 웃음은 더 자연스러워졌고, 시선은 덜 조심스러워졌다. 차이를 설명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냥 나와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바라보게 되자 관계는 훨씬 편안해졌다. 이 과정에서 나는 정체성이 단일한 것이 아니라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도 체감했다. 나 역시 한국인이라는 틀 안에서만 설명될 수 없는 감각과 취향을 가지고 있었고, 그 점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많이 닮아 있었다. 문화 차이는 갈등의 씨앗이 아니라, 서로를 새롭게 해석할 기회라는 것을 몸으로 배운 순간들이 쌓이면서, 세계인의 날이 말하는 ‘공존’이라는 단어가 추상적이지 않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세계인의 날은 우연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결과였다
개인의 경험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궁금해졌다. 왜 하필 5월 20일일까, 왜 ‘외국인의 날’이 아니라 ‘세계인의 날’일까. 찾아보니 이 기념일은 감성적인 선언이 아니라 사회적 논의와 합의의 결과였다. 2006년 3월, 외국인의 날 지정을 논의하기 위한 이민정책 포럼이 열렸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 수렴과 설문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외국인’이라는 구분보다,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의미를 담기 위해 ‘세계인의 날’이라는 명칭이 선택되었다. 날짜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 유엔이 정한 세계 문화 다양성의 날인 5월 21일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이미 부부의 날이라는 다른 기념일과 겹치는 문제로 하루 앞당겨 5월 20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2007년,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에 의해 공식적으로 5월 20일이 세계인의 날로 지정되었다. 이 모든 과정은 국민과 재한 외국인이 서로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고민의 흔적이었다. 이름 하나, 날짜 하루에도 이런 고민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 기념일은 훨씬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개인의 감각 변화와 사회의 제도적 선택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은 묘하게 안정감을 주었다. 마치 나 혼자만 느끼던 변화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조율해 온 리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러워졌다는 건, 연습이 쌓였다는 뜻
지금의 나는 예전처럼 국적이나 언어를 먼저 떠올리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의 체온, 말투, 웃음 같은 감각이 먼저 다가온다. 그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경험이 쌓인 결과였다. 세계인의 날이 상징하는 공존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공존은 선언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연습 속에서 조금씩 몸에 배는 감각이다.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이해, 혐오를 줄이기 위한 노력,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는 교과서 문장보다 일상 속 선택에서 드러난다. 나는 아직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고, 스스로의 시선을 돌아보며 부끄러워지는 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경직된 몸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20대인 지금, 내가 만들어 가는 이 작은 변화들이 다음 세대에게는 자연스러운 기본값이 되기를 바란다. 세계 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오늘 만난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가에 대한 선택의 반복이다. 5월 20일 세계인의 날은 그 선택을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날이다. 처음엔 낯설었고, 지금은 자연스러워진 이 감각을 앞으로도 계속 연습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