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80년의 5월을 모른다. 그날의 공기, 총성의 방향, 밤마다 닫히던 창문의 소리도 경험하지 못했다. 교과서 속 몇 줄로만 접한 사건은 늘 나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그 거리감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나는 그때 거기 없었다”라는 문장은 나를 안전하게 만들어주었고, 동시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면죄부처럼 느껴졌다. 달력 속 5월 18일은 매년 찾아왔지만, 일정 사이에 끼어 있는 기념일 하나로만 지나갔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어폰 너머로 음악이 흐르고, 어깨에 닿는 바람이 생각보다 따뜻하던 어느 봄날에도 그 날짜는 내 몸의 감각과 연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달력이 달라 보였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나의 몸은 조금 더 세상에 민감해졌다. 강의실의 공기, 지하철 손잡이에 닿는 손바닥의 온기, 뉴스 속 문장을 읽을 때 가슴 어딘가가 미세하게 조여오는 감각 같은 것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고, 이상하게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경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이상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른 채 지나온 시간이 내 몸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으로 쌓여 있었다. 기억하지 않는 선택 역시 하나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자, 숨이 조금 가빠졌다. 그날의 역사를 모른 채 자란 세대라는 사실이, 갑자기 내 정체성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기억하기까지
5·18 민주화운동이 오늘의 법정기념일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은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랜 침묵과 왜곡, 그리고 뒤늦은 재평가가 겹겹이 쌓인 결과였다.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에야 비로소 5·18에 대한 국가 차원의 재평가가 시작되었고, 각종 기념사업이 이루어졌다. 그 전까지는 말해지지 않던 이야기들이 조심스럽게 기록으로 남기 시작했다. 이 과정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국가가 과거를 다시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였다.
1996년에는 광주시의회가 5월 18일을 ‘5·18민중항쟁기념일’로 지정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지역의 이름으로 먼저 기억을 선택한 것이다. 그 다음 해인 1997년 2월, 광주시는 정부에 법정기념일로 제정해 줄 것을 공식적으로 건의했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5ㆍ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다. 이 일련의 흐름은 우연이 아니었다. 5·18민주화운동을 기리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국가가 책임을 지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과정을 알게 되자, 기념일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달력에 표시된 하루가 아니라, 오랜 시간 누군가가 싸워서 얻어낸 기억의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억은 이미 제도 속에 자리 잡았지만, 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동시에 느껴졌다. 국가가 기억을 선택했다면, 이제는 내가 선택할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선택은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몸과 감각, 일상의 태도까지 포함하는 일이었다.
경험하지 않아도 책임은 남는다
나는 여전히 그날의 현장을 모른다. 하지만 모른다는 사실이 더 이상 나를 비켜서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공백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수업을 마치고 카페에 앉아 뉴스를 읽을 때, 손끝에 전해지는 컵의 따뜻함과 함께 마음 한쪽이 서늘해진다. 자유롭게 말하고, 웃고, 사랑하고, 내 몸의 감각을 솔직하게 느낄 수 있는 이 일상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교과서 속 개념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호흡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경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것은 쉬운 선택이다. 하지만 그 선택이 반복될수록, 기억은 점점 얇아지고 왜곡되기 쉽다. 누군가는 그 틈을 이용해 사실을 흐리고, 누군가는 침묵을 당연한 것으로 만든다. 나는 그런 흐름 속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 얼마나 편한지 잘 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내 일상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나 그 편안함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었다.
20대 여대생으로서 느끼는 내 몸의 존재감은 때로는 사소해 보이지만, 동시에 분명하다.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흔들리기도 하고, 스스로를 인식하는 순간 강해지기도 한다. 이 감각은 민주주의와 닮아 있다. 쉽게 사라질 수 있고, 지켜내지 않으면 무너진다. 그래서 경험하지 않았어도 책임은 남는다. 기억하려는 노력, 말하려는 태도, 왜곡에 불편함을 느끼는 감각 자체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참여라는 생각이 든다.
선택된 기억이 민주주의를 만든다
기억은 강요로 남지 않는다. 선택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것이 된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법정기념일로 제정된 이유는 단순히 과거를 봉인하기 위함이 아니다. 5·18민주화운동을 기리고, 그 정신을 오늘로 이어가기 위함이다. 계승이라는 단어는 늘 현재형이다.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기준으로 다시 묻고, 오늘의 삶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고, 모든 감정을 정확히 언어로 옮길 수도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기억하지 않는 자유는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침묵 역시 선택이며, 그 선택이 어떤 방향으로 쌓이는지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보아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불완전한 문장으로라도 이 이야기를 적는다. 몸으로 느낀 불편함과 감정의 진폭을 숨기지 않은 채, 경험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기억을 선택한다.
5월 18일은 더 이상 달력 속의 하루가 아니다. 나에게 이 날은 질문을 멈추지 말라는 신호다. 내가 누리는 자유가 어디에서 왔는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끊임없이 묻는 날이다. 5·18을 모른 채 자란 세대일지라도, 기억을 선택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선택들이 모여 오늘의 민주주의를 만든다. 나의 작은 호흡과 감각, 불규칙한 감정의 흔들림까지 포함해서, 이 기억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