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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스승의 날, 편지를 쓰지 않게 된 날에도 남아 있던 마음

by JiwonDay 2026.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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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되면 공기가 조금 달라진다. 얇아진 옷 사이로 바람이 스칠 때, 괜히 어깨가 먼저 반응하고, 햇볕이 피부에 닿는 감각이 예민해진다. 스무 살이 되고 나서야 나는 계절을 ‘몸으로’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강의실로 향하는 길, 짧아진 치마와 노출된 종아리, 팔에 닿는 햇살이 어색하면서도 익숙해진 요즘, 문득 달력을 보다 5월 15일이라는 날짜에서 시선이 멈췄다. 스승의 날. 어릴 때는 너무 당연해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그 이름이, 이상하게도 요즘의 나에게는 조금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초등학교 때는 손편지를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연필로 몇 번이나 고쳐 쓴 문장,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는 말 뒤에 붙일 표현을 고민하며 괜히 얼굴이 달아올랐던 기억. 그땐 몰랐다. 감사라는 감정이 제도보다 먼저 존재한다는 걸.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편지를 쓰지 않게 되어도 그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것도. 스무 살의 대학생이 된 지금, 나는 더 이상 선생님 앞에서 줄을 맞춰 서지도 않고, 카네이션을 달아드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날은 여전히 남아 있다.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5월 15일 스승의 날은 단순히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지금의 나처럼 조금은 노출된 옷차림으로 캠퍼스를 걷는 스무 살의 몸과도 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가르침과 존중, 시선과 관계. 이 모든 것이 겹쳐지는 날이 바로 스승의 날이라는 사실이, 이제야 조금은 느껴진다.

세 개의 장면 속 기억, 이해, 성장을 지나며 스승의 날의 의미를 몸으로 담아낸다.


편지를 쓰던 아이에서, 기억으로 남기는 사람이 되기까지

내가 처음 스승의 날을 ‘의식’했던 건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담임선생님의 책상 위에 몰래 올려두던 작은 꽃, 수줍게 고개를 숙이며 건네던 편지. 그때의 나는 아직 몸에 대해 잘 몰랐고, 누군가의 시선이 나를 어떻게 규정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선생님은 ‘어른’이었고, 존경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관계는 달라졌다. 중학생이 되자 선생님은 점점 멀어졌고, 고등학생이 되자 존경보다는 거리감이 먼저 생겼다. 그리고 대학생이 된 지금, 나는 더 이상 ‘학생’이라는 울타리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짧은 상의 아래 드러난 허리선, 바람에 스치는 다리의 감각, 타인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인식하는 몸이 되었다. 그 변화 속에서, 나는 스승의 날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스승의 날은 원래 이렇게 거창한 날이 아니었다.

1958년, 대한적십자사가 세계적십자의 날인 5월 8일을 기념하며 청소년적십자(JRC)가 조직된 학교에서 스승을 위로하는 행사를 연 것이 시작이었다. 누군가를 높이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고단한 어른을 잠시 쉬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한 날. 이 사실이 나에게는 유난히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1963년에는 충청남도 내 JRC가 9월 21일을 ‘은사의 날’로 정하고 도 전역에서 사은행사를 진행했다. ‘은사’라는 말. 요즘은 잘 쓰이지 않지만, 그 단어 안에는 분명히 ‘은혜’라는 체온이 있다. 나는 그 단어를 떠올리며, 누군가가 나의 스무 살을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게 만든 보이지 않는 손길들을 생각했다.

이제 나는 편지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한다. 그리고 기억하는 방식은, 어릴 때보다 훨씬 더 몸에 가깝다. 존경은 의무가 아니라 감각이 되었고, 스승의 날은 행사보다 경험에 가까워졌다.


5월 15일이라는 날짜가 선택된 이유

1965년 4월, 스승의 날은 세종대왕의 탄생일인 5월 15일로 옮겨졌다.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솔직히 조금 놀랐다. 문자를 만든 왕의 생일에, 가르치는 사람을 기린다는 선택. 그 안에는 분명히 상징이 있었다.

가르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다. 세종대왕이 문자를 만든 이유가 백성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듯, 스승이라는 존재도 누군가가 자기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도록 돕는 사람이다. 나는 지금, 강의실 맨 뒷줄에 앉아 다리를 꼬고, 노트북 화면을 내려다보며 수업을 듣는다. 하지만 그 자세와는 다르게, 내 안에서는 여전히 배움이 일어난다.

1973년에는 스승의 날이 ‘국민교육헌장 선포 기념일’과 통합되며 잠시 사라지기도 했다. 그리고 1982년,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다시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다. 이 과정은 단순한 행정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가 스승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집단적 고민의 흔적처럼 느껴진다.

스승의 날이 법으로 정해진 이유는 분명하다. 스승 존경의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고, 교권 확립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높이기 위함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문득 지금의 나를 떠올렸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그 시선에만 휘둘리지 않으려 애쓰는 몸. 존중받고 싶지만, 존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배우는 중인 스무 살.

5월 15일은 그래서, 과거의 기념일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인 질문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과연, 누군가를 제대로 존중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존중은, 말과 행동, 제도와 감각 속에서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


편지는 사라졌지만, 스승의 날이 남아 있는 이유

요즘 나는 종종 거울 앞에 선다. 옷을 고르기 전, 화장을 마친 뒤, 혹은 하루가 끝난 밤. 그때마다 느끼는 건, 내 몸이 이제 하나의 언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움직임과 시선, 표정과 태도가 나를 설명한다.

스승의 날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예전처럼 손편지를 쓰지 않아도, 우리가 어떤 태도로 누군가를 대하는지가 그 날의 의미를 완성한다. 교권은 멀리 있는 단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감각이다. 존경은 강요될 수 없지만, 환경은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스승의 날은 아직 필요하다.

나는 스무 살이고, 아직 배울 것이 많다.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기도 하고, 어떤 한마디에 오래 흔들리기도 한다. 그 모든 순간 뒤에는 나를 여기까지 이끈 가르침이 있다. 그 가르침은 교실 안에서만 오지 않았고, 교과서에만 적혀 있지도 않았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은, 그래서 나에게 과거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날이다. 편지는 쓰지 않게 되었지만, 기억은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오늘의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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