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이상하게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달이다. 얇아진 셔츠 아래로 햇살이 스며들고, 강의실 창가에 앉아 있으면 바람이 목선을 스친다. 나는 지원이다. 스무 살, 대학생. 거울 앞에 서서 오늘 입을 옷을 고를 때, 예전보다 내 몸을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날씬함이나 기준 같은 것보다, 내가 나로 서 있는 감각. 숨 쉬고, 걷고, 웃고, 배우는 이 몸이 지금의 나라는 사실이 좋았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어쩌면 그 감각에서 시작되었다.
5월 11일, 입양의 날. 달력 속 작은 글씨였던 이 날짜는, 어느 날부터 내 안에서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겐 기념일이고, 누군가에겐 캠페인의 하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이 날은 질문이다. 가족이란 무엇인지,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나는 어디에 서 있는 사람인지.
나는 내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아주 늦게 알았다. 드라마처럼 극적인 장면은 아니었다. 밥을 먹다 말고, 옷을 정리하다 말고, 너무 일상적인 순간에 툭 떨어진 말 한마디. 그날 이후로 내 하루는 똑같이 흘러갔지만, 내 안에서는 아주 조용한 지진이 일어났다. 무너진 건 가족이 아니었다. 무너진 건 내가 당연하게 믿어왔던 ‘가족의 정의’였다.
내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날
그날도 평소처럼 학교에 갔다. 강의실 계단을 오르며 치마 자락을 한 번 정리하고, 친구에게서 “오늘 예쁘다”는 말을 들었다. 괜히 어깨가 펴지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런 순간들이 좋았다. 내가 내 몸으로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집에 돌아와서는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었다. 그리고 아주 평범한 대화 끝에, 아주 평범한 톤으로 그 말이 나왔다.
“사실 너는…” 그 뒤의 말들은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입양. 그 단어 하나만이 공기처럼 남았다.
슬프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더 정확한 감정은 ‘어색함’이었다.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이 갑자기 설명을 필요로 하게 된 기분. 내 웃음, 내 습관, 내 몸짓까지도 이유를 붙여야 할 것 같았다.
왜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는지 이해하려 애썼다. 사회가 입양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불편한지 알았으니까. 입양아라는 말 뒤에 붙는 괄호들. 불쌍하다, 다르다, 특별하다. 그 모든 단어들이 가족의 입을 닫게 했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다.
하지만 마음은 따로 움직였다. 왜 나는 ‘알게 되는 순간’을 가져야 했을까. 왜 내 삶은 누군가의 침묵 위에 세워져 있었을까. 입양 자체보다, 그 사실이 숨겨졌다는 점이 나를 더 흔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내 몸을 더 자주 만졌다. 손목, 어깨, 허리. 이 몸이 어디서 왔든, 지금까지 나를 살아오게 한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나는 나였고, 그 사실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입양의 날은 왜 만들어졌을까 ― 제도의 언어로 본 입양
5월 11일이 입양의 날로 지정된 것은 2005년이다. 2005년 3월 31일,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의해 공식적으로 정해졌다. 이 법의 목적은 분명했다. 건전한 입양문화를 정착시키고, 국내입양을 활성화하기 위함.
‘건전한 입양문화’라는 말은 참 조심스럽다.
그 말 속에는 그 이전의 입양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개인의 희생에 의존해왔는지가 담겨 있다. 특히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해외입양에 의존해왔다. 아이들은 국경을 넘어갔고, 국가는 그 책임에서 한 발 물러나 있었다.
입양의 날은 그런 구조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되었다. 입양을 개인의 선의나 감동적인 선택으로만 두지 않겠다는 선언. 국가가 책임지고,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제도라는 인식의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법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시선이 곧바로 바뀌지는 않는다. 입양 가정은 여전히 설명해야 했고, 입양아는 여전히 질문받았다. 제도와 현실 사이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은, 당사자들의 삶 위를 지나간다.
입양의 날은 축하의 날이기보다, 정착의 날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별함을 강조하는 날이 아니라, 특별할 필요가 없어지는 날. 그게 이 기념일이 가진 가장 중요한 의미일지도 모른다.
입양을 특별하게 만들지 않는 사회를 바라며
나는 여전히 대학생이다. 과제를 미루고, 밤늦게 라면을 먹고, 가끔은 내 몸이 예쁘다고 느끼고, 가끔은 그렇지 않다. 입양아라는 사실이 내 하루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회는 종종 그 한 단어로 나를 요약하려 한다.
입양은 동정의 대상도, 미담의 소재도 아니다.
그건 하나의 관계이고,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 혈연만이 가족을 만든다는 생각은 너무 좁다. 함께 밥을 먹고, 싸우고, 화해하고, 시간을 쌓아온 관계. 그게 가족이다.
내 몸을 긍정하는 법을 배운 것처럼, 내 삶의 출처도 긍정하고 싶다. 숨기지 않아도 되고, 드러내도 특별해지지 않는 상태. 그런 사회라면 입양의 날은 언젠가 필요 없어질지도 모른다.
5월 11일 입양의 날. 이 날이 나에게 남긴 건 축하가 아니라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아직 진행 중이다. 가족의 정의는, 여전히 확장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