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을 때였다. 알람을 끄고, 무의식적으로 캘린더 앱을 열었다. 시험 일정, 과제 마감, 친구 생일… 그 사이에 낯선 문장이 하나 끼어 있었다. ‘5월 11일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공휴일도 아니고, 빨간 글씨도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그냥 스쳐 지나갈 뻔했다. 요즘의 나는 역사보다 오늘 입을 옷, 수업 시간, 카페에서 마실 커피의 당도가 더 중요했다. 스무 살, 이제 막 대학생이 된 나는 여전히 거울 앞에서 “오늘은 좀 여성적으로 보일까, 아니면 편하게 입을까” 같은 고민을 한다.
얇은 니트가 어깨선을 따라 흘러내릴 때, 치마가 허벅지를 스칠 때 느껴지는 감각이 싫지 않다. 그건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라는 몸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간다는 감각에 가깝다. 그렇게 아주 사적인 일상 한가운데에서, 그 낯선 기념일이 자꾸 눈에 걸렸다.
‘동학농민혁명.’ 교과서에서 본 단어. 시험을 위해 외웠다가 잊어버린 이름. 그런데 왜 지금, 왜 하필 5월 11일일까. 왜 국가가 굳이 ‘법정기념일’로 지정했을까.
궁금증은 생각보다 쉽게 커진다. 검색창에 단어를 치는 건 3초면 충분하고, 한 번 눌러본 링크는 나를 1894년으로 데려간다. 그곳에는 지금의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 글은 거창한 역사 정리가 아니다. 스무 살의 내가, 여성의 몸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내가 캘린더 속 작은 문장을 계기로 과거와 마주한 기록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다.

① 버티는 사람이 먼저 무너진다 ― 삼정의 문란과 삶의 붕괴
1894년의 조선은, 한마디로 말하면 ‘버티는 사회’였다. 열심히 일하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이미 깨진 상태. 농사를 지어도 남는 것이 없었고, 세금은 줄지 않았다.
삼정의 문란이라는 말은 교과서에서는 짧다. 하지만 그 안에는 하루하루를 견디던 사람들의 숨이 들어 있다. 토지세는 공평하지 않았고, 군포는 이유 없이 늘어났으며, 환곡은 구휼이 아니라 착취가 되었다.
나는 지금 월세를 낸다. 알바를 하고,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한숨을 쉰다. 물론 시대는 다르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구조가 나를 밀어내는 느낌’은 묘하게 닮아 있다.
탐관오리는 개인의 도덕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이미 굳어버린 시스템이었다. 법은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힘이 법을 이겼다. 사람들은 점점 국가를 믿지 않게 되었고, 그 불신은 분노가 되었다.
고부에서 봉기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참고, 참고, 또 참고… 그러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선을 넘었을 때, 사람들은 움직였다.
그 움직임은 충동이 아니었다. 삶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지금의 나처럼, 그들도 각자의 몸으로 하루를 살고 있었을 뿐이다.
② 1894년의 선택 ― 개혁과 국권 수호라는 두 개의 목표
동학농민혁명은 단순한 폭동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너뜨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바꾸고자 했다.
부패한 봉건제도를 개혁하고 싶었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규칙을 원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말은, 지금 들어도 여전히 낯설고 대담하다.
동시에 그들은 외세를 느끼고 있었다. 일제의 침략은 이미 그림자처럼 다가오고 있었고, 국권을 잃는다는 감각은 막연한 공포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 혁명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진다. 안으로는 봉건 질서를 바꾸려 했고, 밖으로는 나라를 지키려 했다.
집강소라는 농민 자치는 특히 인상 깊다. 질서를 부수는 대신, 그들은 직접 운영해 보았다. 이게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로서는 혁명이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쉽게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지. 하지만 실제로 바꾸는 일은 언제나 복잡하고, 어렵다.
1894년의 농민들도 그랬을 것이다. 의도는 분명했지만, 현실은 거칠었다. 그럼에도 그 선택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③ 기억은 저절로 남지 않는다 ― 법정기념일과 기록의 힘
동학농민혁명이 오늘날 5월 11일 법정기념일이 되기까지는 무려 125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2004년 3월 5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이건 단순한 법이 아니다. 국가가 과거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그리고 2019년 2월 26일, 기념일 규정이 개정되며 동학농민혁명은 법정기념일이 되었다. 같은 해 5월 11일, 정부 주관으로 제125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나는 이 사실이 조금 늦었다고 느끼면서도, 그래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억은 저절로 남지 않기 때문이다.
2023년,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지역의 사건이, 세계의 언어로 번역된 순간이다.
기념일 제정의 이유는 분명하다.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재조명하고, 애국애족정신을 높이기 위함이다.
여기서 애국은, 누군가를 배제하는 말이 아니다. 공동체를 지키고, 불의에 침묵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스무 살의 나는 여전히 거울 앞에 선다. 오늘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고, 괜히 예민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5월 11일이라는 날짜를 알고 난 뒤, 나는 캘린더의 그 문장을 그냥 넘기지 않게 되었다.
공휴일은 아니지만, 그날만큼은 조금 더 생각하며 살고 싶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기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