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스무 살이 되고도 한동안 나는 ‘정치’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피했다. 뉴스 앱 알림을 끄고, 토론 프로그램 채널은 돌리고,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정치 얘기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꿨다. 너무 시끄럽고, 너무 복잡하고, 무엇보다 내 일상과는 상관없는 세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묶고, 오늘 입을 옷의 핏을 고민하고, 강의실에서 졸음을 참으며 노트북을 두드리는 내 하루와, 국회나 선거 같은 단어들은 서로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내 몸에 대해 비교적 솔직한 편이다.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는 옷을 좋아하고, 스스로 예쁘다고 느끼는 순간을 숨기지 않는다. 카페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괜히 마음에 들어서 한 번 더 돌아보기도 하고, 햇빛 아래에서 피부가 반짝이는 날이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감각적인 일상 속에서 ‘주권’이나 ‘유권자’ 같은 단어는 너무 딱딱하고 건조했다. 하지만 어느 날, 학교 게시판 한쪽에서 ‘5월 10일 유권자의 날’이라는 문구를 보았다. 이상하게도 그날은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유권자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투표권을 가진 사람인데, 정작 그 단어를 내 몸과 내 삶에 한 번도 제대로 붙여본 적이 없었다.
그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넘기며, 1948년 5월 10일이라는 날짜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날짜는 교과서 속의 연도가 아니라, 지금의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허락한 날이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가 치러진 날. 누군가는 그날을 맞이하지 못했고, 누군가는 그날을 위해 평생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스치자, 갑자기 내가 가진 투표권이 몸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손, 다리, 시선, 그리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이 글은 정치 전문가의 분석도 아니고,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선언문도 아니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한 20대 여대생이, ‘유권자’라는 단어를 자기 몸과 일상에 다시 붙여보며 겪은 감정의 기록이다. 부끄러움과 깨달음이 섞여 있고, 여전히 확신보다는 질문이 더 많다. 다만 분명한 건, 5월 10일이라는 날짜가 더 이상 나와 상관없는 숫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첫 장면
1948년 5월 10일. 이 날짜를 처음 제대로 읽었을 때, 이상하게도 머리가 아니라 가슴 쪽이 먼저 반응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국회의원 총선거가 열린 날.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라는 네 가지 원칙이 처음으로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한 사람, 한 표’라는 개념이, 그때는 엄청난 선언이자 실험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보통선거란 재산이나 성별, 신분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투표권이 주어진다는 의미다. 평등선거는 모든 표의 무게가 같다는 뜻이고, 직접선거는 누군가를 대신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다는 의미다. 비밀선거는 그 선택이 보호받는다는 약속이다. 이 네 단어를 하나씩 읽어 내려가다 보니, 마치 내 몸의 조건들과 겹쳐 보였다. 누구의 딸이냐, 어떤 외모냐, 어떤 배경이냐와 상관없이 ‘나’라는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감각. 그 시절의 투표소를 상상해 본다. 지금처럼 깔끔한 기표소도, 익숙한 안내문도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곳에 섰던 사람들의 심장은 지금의 나보다 훨씬 크게 뛰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나라의 방향에 손을 얹는 경험. 그 떨림은 분명히 육체적인 감각이었을 것이다. 나는 종종 내 몸을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내가 공간 속에서 어떤 존재로 느껴지는지에 민감하다. 그런 나에게 선거는 더 이상 추상적인 제도가 아니라, 몸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사회에 드러내는 방식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1948년의 유권자들은 말 그대로 몸을 움직여 투표소로 갔고, 그 행위 하나로 새로운 국가의 기초를 놓았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정치가 갑자기 멀지 않게 느껴졌다. 그것은 텔레비전 속 인물들의 언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계보 위에 지금의 내가 서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벅차게 다가왔다.
2012년, ‘유권자’를 다시 부른 이유
그렇다면 왜 2012년에 와서야 5월 10일이 ‘유권자의 날’로 지정되었을까.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나를 현재로 끌어왔다. 2012년 2월 17일, 「공직선거법」에 의해 5월 10일은 공식적인 기념일이 되었다. 국가가 법으로 특정한 날을 기념한다는 것은, 그 의미를 잊지 말라는 조용한 요구이기도 하다. 선거의 중요성과 의미를 되새기고, 주권의식을 높이기 위함. 문장은 단정하지만, 그 안에는 불안이 숨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너무 쉽게 투표를 귀찮아하고, 너무 쉽게 정치에서 등을 돌리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질문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 질문의 대상이었다. 투표는 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선택의 이유를 설명하라고 하면 말문이 막혔다. ‘다 비슷해 보여서’, ‘어차피 안 바뀔 것 같아서’ 같은 말들은 방어막처럼 편리했다. 하지만 유권자의 날이라는 이름은 그 방어막을 살짝 건드렸다. 유권자라는 말에는 ‘권리’와 동시에 ‘주체’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내 몸을 주체적으로 드러내고 싶어 한다. 남의 시선에 휘둘리기보다는, 내가 나를 어떻게 느끼는지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바디 포지티브라는 말이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나를 지탱하는 태도인 이유다. 그런 나에게 유권자의 날은 비슷한 메시지를 던졌다. 정치에서도 우리는 관객이 아니라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 2012년의 제정은 과거를 기념하는 동시에 현재를 경고하는 행위였다. 투표권은 자동으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사용될 때, 고민될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그 사실을 국가 차원에서 다시 한 번 상기시킨 날이 바로 유권자의 날이었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스무 살의 자리에서
여전히 나는 정치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여전히 헷갈리고, 때로는 지친다. 하지만 분명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나는 ‘유권자’라는 단어를 나와 분리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 이름처럼,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아침에 학교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강의실에서 자리를 잡고,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그 모든 일상 속에 정치가 스며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등록금, 주거, 안전, 노동, 성평등 같은 문제들은 모두 내 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여전히 여성으로서의 나를 즐긴다. 옷의 실루엣, 자세, 시선 하나하나에 나를 담는다. 그리고 이제는 그 감각을 사회 속에서도 확장하고 싶다. 투표는 그 확장의 한 방식이다. 완벽한 선택이 아니라도, 참여하는 선택. 그 선택을 통해 나는 더 이상 무관심 뒤에 숨지 않는다. 5월 10일 유권자의 날은 나에게 거창한 결심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기억하라고 말한다. 내가 가진 권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에 대해. 정치에 관심 없던 내가 ‘유권자’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된 날.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 더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몸을 가진 존재이고,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며, 이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5월 10일은 충분히 기억할 가치가 있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