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속 빨간 숫자, 그리고 나의 몸이 기억한 노동
5월 1일이라는 날짜는 언제나 달력 속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설날처럼 들썩이지도 않고, 크리스마스처럼 반짝이지도 않는 숫자. ‘근로자의 날’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냥 누군가는 쉬고, 누군가는 쉼 없이 일하는 날. 그 정도였다.
스무 살, 대학생이 된 이후로 내 하루는 꽤 단순하면서도 복잡해졌다. 강의실과 도서관, 그리고 아르바이트 매장 사이를 오가는 생활. 거울 앞에서 옷을 고르며 오늘은 조금 더 여성적인 라인을 드러내볼까 고민하고, 긴 머리를 묶어 올릴 때 목선이 드러나는 순간 괜히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내 몸은 아직 젊고, 탄력이 있고, 세상과 부딪히며 계속 변하고 있다. 이 몸으로 나는 공부를 하고, 웃고, 일한다.
근로자의 날이 다가왔을 때, 단톡방에서는 늘 같은 질문이 오간다. “너 알바 쉬어?” “우리 매장은 정상근무래.” 같은 날짜, 다른 하루. 누군가는 침대에서 늦잠을 자고, 누군가는 유니폼을 입고 출근한다. 그 차이가 왜 생기는지,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날인지, 그때의 나는 잘 몰랐다. 다만 분명했던 건, 내 몸이 그날도 움직일 거라는 사실이었다.
출근 준비를 하며 거울을 보던 아침, 몸에 밀착되는 티셔츠와 청바지가 오늘따라 유난히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 몸으로 나는 노동을 한다. 계산대를 넘고, 음료를 만들고, 손님에게 웃는다. ‘근로자’라는 단어는 아직 어색하지만, 분명 나는 누군가의 서비스가 되고, 누군가의 하루를 구성하는 사람이었다. 그 순간 처음으로 생각했다. 근로자의 날은 왜 존재할까. 이 날은 누구를 위로하고 싶었던 걸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처음 만난 근로자의 날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 나는 아직도 학생이라는 보호막 안에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근로계약서를 쓰는 순간에도 ‘잠깐 일하는 거니까’라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하루 네 시간, 여섯 시간을 서서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다리는 묵직했고 어깨는 굳어 있었다. 몸은 솔직했다. 노동의 무게를 그대로 기억했다.
근로자의 날이 다가왔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매니저에게 물었다. “그날 쉬나요?” 돌아온 대답은 담담했다. “우리는 해당 안 돼.” 그 한 문장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근로자의 날인데, 근로자인 나는 쉬지 못한다는 사실. 위로를 받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날에, 나는 여전히 계산대를 닦고 있었다.
근로자의 날의 제정 이유는 분명하다. 근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근로자의 노고를 위로하며, 근무 의욕을 높이기 위해서. 말은 따뜻한데, 현실은 늘 차갑다. 그래도 그날을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이 이름을 붙이기 위해 고민했고, 법으로 남기기 위해 싸웠을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나는 내 몸을 더 의식하게 되었다. 오래 서 있어도 흐트러지지 않게 허리를 펴고, 유니폼 안에서 숨 쉬는 가슴의 리듬을 느끼며, 나도 누군가에게는 성실한 노동자로 보이고 싶었다. 노동은 단순히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내 몸과 시간을 세상에 내어주는 일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근로자의 날이라는 이름이 조금은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8시간을 요구했던 사람들, 메이데이의 시작
하루 여덟 시간 근무가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지금, 그 기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다. 하지만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여덟 시간은 너무도 치열한 요구였다. 1884년, 미국노동조합연맹은 결의했다. 1886년 5월 1일부터 하루 8시간만 일하겠다고.
그 요구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잠들 시간, 가족을 만날 시간, 스스로를 돌볼 시간을 되찾고 싶다는 외침이었다.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며 5월 1일이 ‘메이데이’로 정해졌을 때, 이 날은 전 세계 노동자들의 기억이 되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다리를 주무르며 그 역사를 떠올리면, 이상하게 마음이 복잡해진다. 내가 당연하게 누리는 짧은 휴식이 누군가의 삶을 건 투쟁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서서 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메이데이는 축제가 아니라 기억이다. 피로 얼룩진 손과 굽은 허리, 그리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욕망. 스무 살의 나는 아직 그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이 날이 그냥 생긴 것은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게 되었다.
5월 1일이 되기까지, 한국의 근로자의 날
한국에서 근로자의 날은 처음부터 5월 1일이 아니었다. 1957년, 대한노총 대의원대회에서는 창립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결의했다. 이후 1963년,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식적으로 ‘근로자의 날’이 되었다.
1973년에는 각종 기념일 규정에 포함되었고, 1994년 3월, 법이 개정되면서 지금의 5월 1일로 변경되었다. 국제적인 흐름과 메이데이의 역사적 의미를 반영한 선택이었다. 날짜 하나가 바뀌는 데에도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논의가 필요했다.
지금의 근로자의 날은 여전히 모두에게 같은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쉬고, 누군가는 일한다. 나 역시 그날 출근하는 사람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날은 쉬느냐 마느냐를 넘어, 노동을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드는 하루라는 것을.
거울 앞에 서서 내 몸을 바라본다. 젊고, 건강하고, 아직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몸. 이 몸으로 나는 계속 일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완전히 ‘근로자’라는 이름을 당당히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은, 그렇게 나에게 노동을 생각하게 만든 날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