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오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겨울 동안 숨겨두었던 피부가 햇빛을 기억해내는 순간, 괜히 어깨가 가볍고 마음이 들썩인다. 스무 살, 대학생이 된 나는 봄이 오면 옷차림부터 달라진다. 얇아진 옷감이 몸선을 따라 흐를 때, 거울 속의 나는 아직 어설프지만 분명히 성장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달력 속 ‘4월 5일 식목일’은 조금 낯설고도 익숙한 기념일이다. 나무를 심는 날이라는 건 알지만, 실제로 삽을 들고 흙을 파본 기억은 흐릿하다. 식목일은 본래 나무심기 운동을 확산해 쾌적한 생활환경을 만들고 산림자원을 육성하자는 취지에서 제정되었다. 그 시작은 멀리 조선 성종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왕과 세자, 문무백관이 동대문 밖 선농단에서 직접 밭을 갈며 한 해의 농사를 기원했던 날, 그리고 1910년 친경제에서 순종이 직접 나무를 심었던 ‘친식’의 장면이 지금의 식목일로 이어졌다. 1949년 법정공휴일로 지정되었고, 한때 ‘사방의 날’로 이름과 날짜가 바뀌었다가 다시 4월 5일로 돌아왔다. 1982년에는 법정기념일이 되었고, 2006년부터는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 제도는 바뀌었지만 질문은 남는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어디에 나무를 심고 있을까.

어린 날의 화단과 포스터, 그리고 원룸 사이의 숲 없는 일상
어릴 적 집 앞에는 작은 화단이 있었다. 학교에서 식목일을 맞아 씨앗을 나눠주던 날, 나는 그 화단에 조심스럽게 흙을 파고 씨앗을 묻었다. 손에 흙이 묻는 게 싫으면서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그해 봄, 식목일 관련 포스터 그리기 대회에 참가했던 기억도 난다. 초록색 크레파스를 유난히 많이 쓰며 나무를 크게 그렸고, 선생님은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때의 나는 나무가 늘 곁에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원룸과 아스팔트 사이에서 하루를 보낸다. 창문을 열면 보이는 건 회색 건물과 도로, 그리고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이다. 캠퍼스로 가는 길, 짧은 치마 아래로 바람이 스칠 때마다 나는 내가 자연보다 도시와 더 가까워졌다는 걸 느낀다. 나무 그늘은 멀고, 햇빛은 콘크리트에 반사되어 더 뜨겁다. 숲과 멀어진 삶은 생각보다 빠르게 익숙해진다. 흙을 밟지 않아도 하루는 잘 흘러가고, 나무가 없어도 생활은 불편하지 않다. 하지만 가끔 어린 날의 화단을 떠올리면, 마음 한쪽이 허전해진다.
개발의 속도 속에서 느낀 나무의 무게와 차가워지는 마음
도시는 계속 바뀐다.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오래된 건물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다. 그 과정에서 나무는 늘 뒤로 밀린다. 녹지가 줄어들수록 도시는 더 효율적이지만, 사람의 마음은 더 각박해진다. 나는 등산을 하며 그 사실을 또렷이 느꼈다. 시험이 끝난 어느 날, 답답한 마음을 안고 산에 올랐다. 숨이 가빠질수록 머릿속은 오히려 맑아졌다. 나무 사이를 스치는 바람, 흙 냄새, 그늘 아래에서 느껴지는 안정감. 그 순간 나는 왜 나무가 중요한지 몸으로 이해했다. 도시로 돌아오자 다시 마음이 차가워졌다. 녹지가 부족한 환경에서는 스트레스가 쉽게 쌓이고, 감정의 진폭도 커진다. 같은 하루라도 나무가 있는 공간과 없는 공간에서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개발은 삶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정신 건강까지 책임지지는 않는다. 나무는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존재다.
식목일이 남긴 질문, 혼자에서 함께로 나무를 심는 방법
식목일을 맞아 나는 혼자 고민한다. 도시에서 나무를 심는다는 건 무엇일까. 꼭 산에 가서 삽을 들어야만 가능한 일일까. 옥상 정원, 학교 주변의 작은 화단, 아파트 단지의 공동 정원처럼 도시에 숨어 있는 공간들은 많다. 정책과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시민의 관심과 참여 없이는 어렵다. 나 혼자 나무의 중요성을 느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움직이게 하려면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식목일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날이다. 우리가 사는 도시를 어떤 모습으로 가꾸고 싶은지, 어떤 환경에서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싶은지. 오늘 나는 큰 나무 대신 작은 생각 하나를 심는다. 그 생각이 언젠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