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공기가 조금씩 가벼워질 즈음이면, 내 일상도 늘 비슷한 속도로 흘러간다. 아침에는 강의실에 앉아 노트를 펴고, 점심에는 친구들과 캠퍼스 잔디를 건너며 별것 아닌 이야기로 웃는다. 거울 앞에 서면 오늘의 옷차림과 몸의 선이 먼저 보인다. 나는 스무 살의 대학생이고, 여전히 나 자신을 알아가는 중이다. 내 몸이 만들어내는 곡선과 리듬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게 나를 지탱하는 작은 자존감이기 때문이다.
그런 평범한 하루의 틈에서 4월 28일이라는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 교과서에서, 시험 범위에서, 혹은 광화문을 지날 때 무심코 보던 동상의 이름. 솔직히 말하면, 예전의 나는 이 날을 달력 속 글자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올해는 달랐다. ‘위기’라는 단어가 자꾸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취업, 관계, 미래.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많아질수록, 나는 왜 이 사람을 아직도 기억하는지 궁금해졌다.
이 글은 영웅을 찬양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다. 완벽한 사람의 전설을 되풀이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위기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던 한 사람을 통해, 지금의 나를 비춰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시작점이 바로 4월 28일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이다.

1. 탄신일이 만들어진 진짜 이유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이 제정된 이유는 분명하다. 충무공 이순신의 애국 위훈을 길이 전승하고, 민족자주정신을 선양하기 위함.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솔직히 마음에 바로 와 닿지는 않았다. ‘애국’이나 ‘자주’ 같은 말은 나에게 너무 크고, 너무 먼 단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곱씹어 보니, 이 문장은 감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순신을 무조건 존경하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의 선택과 태도를 기억하자는 제안에 가깝다. 그래서 1967년 1월 16일, 문교부령 제179호로 4월 28일이 ‘충무공 탄신기념일’로 제정되었다. 그리고 1973년 3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충무공 탄신일’은 법정기념일이 되었다.
국가가 날짜 하나를 공식적으로 지정한다는 건, 그만큼 반복해서 되새길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나는 요즘 내 선택 하나에도 흔들린다. 조금만 불리해 보여도 뒤로 물러나고 싶어진다. 그런 나에게 이 기념일은 묘하게 질문을 던진다. ‘너라면, 어떤 순간까지 버틸 수 있니?’
이순신의 삶은 언제나 위기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탄신일을 만든 이유는, 바로 그 태도를 잊지 않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2. 국가는 어떻게 한 사람을 기억해왔는가
이순신을 기리는 행사는 그가 죽은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조금 놀랐다. 영웅은 시간이 흐른 뒤에 만들어지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은 달랐다.
조선 선조는 경상남도 통영에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효종 때에는 남해도 노량에 사당이 세워졌고, 숙종 때에는 아산에 사당이 세워졌다. 왕이 바뀌어도, 시대가 달라져도, 이순신을 기억하려는 흐름은 끊기지 않았다.
정조는 이순신에게 의정부 영의정을 추증했다. 생전에 오르지 못했던 최고 관직을 사후에 내린 것이다. 이건 단순한 예우가 아니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이 사람의 선택이 옳았다”고 선언한 셈이다.
해방 이후에도 기억은 이어졌다. 1945년 이후 충무공기념사업회 주관으로 매년 4월 28일 탄신제전이 열렸고, 1966년 4월에는 아산 현충사 경내 성역화 사업이 추진되었다.
1968년에는 서울 광화문에 충무공 동상이 세워졌다. 나는 그 동상을 수없이 지나쳤다. 버스를 기다리며, 친구와 사진을 찍으며, 아무 생각 없이.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 자리는 권력의 중심이고, 선택의 중심이다.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은 4월 28일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이다.
국가는 이렇게 한 사람을 기억해왔다. 기억은 우연이 아니라 선택이고, 반복이다.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나도 조금씩 배우게 된다.
3. 오늘의 위기 속에서 읽는 이순신
요즘 나는 내 몸을 조금 더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여성적인 곡선, 움직일 때 생기는 리듬, 거울 속에서 느껴지는 낯설고도 익숙한 나. 그걸 인정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위기는 꼭 전쟁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나에게 위기는 나 자신을 부정하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비교당하고, 흔들리고, 숨고 싶어질 때. 그때마다 이순신의 이름이 떠오른다.
그는 완벽해서 버틴 게 아니었다. 두려움이 없어서 자리를 지킨 것도 아니었다. 다만, 책임을 알고 있었고, 도망치지 않았다.
광화문 동상 앞을 지날 때, 나는 이제 그를 다른 시선으로 본다. 위기 속에서도 중심을 지킨 사람. 그리고 그 중심은 칼이 아니라 태도였다.
4월 28일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은 과거를 기리는 날이면서 동시에 현재를 묻는 날이다.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고, 자주 흔들린다. 그래도 도망치지 않는 선택이 있다는 걸, 그 선택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걸, 이 날을 통해 배운다.
그래서 오늘, 이 글을 남긴다. 위기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던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나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