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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 자전거의 날 ― 두 개의 바퀴로 시작된 질문

by JiwonDay 2026.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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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캠퍼스는 늘 조금 과장되어 있다. 벚꽃은 이미 절정의 순간을 지나 바람에 흩날리고, 햇빛은 겨울의 무게를 완전히 잊은 얼굴로 아스팔트 위에 내려앉는다. 나는 그날도 평소처럼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강의실로 향하고 있었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문득 방향을 틀었다. 자전거 거치대 쪽으로. 특별한 결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오늘은, 오늘만은 바람을 조금 더 가까이 느끼고 싶었다. 페달을 밟자 몸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쏠렸고, 허벅지와 종아리가 동시에 긴장했다. 운동을 하겠다는 의지도, 환경을 생각하겠다는 거창한 다짐도 아니었다. 그저 내 몸이 이 계절을 어떻게 통과하는지 알고 싶었다.

자전거를 타고 캠퍼스를 가로지르며 느낀 건 속도였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생각이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 자동차 안에서는 창밖이 배경이 되고, 지하철에서는 풍경이 사라지지만, 자전거 위에서는 모든 것이 나와 같은 높이에서 움직였다. 나무의 그림자, 지나가는 사람의 옷자락, 숨이 약간 가빠지는 순간까지. 땀이 이마에 맺히는 걸 느끼며 나는 묘하게 자랑스러워졌다. 오늘의 이동은 누군가에게 맡긴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내 몸으로 해냈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자전거의 날’이라는 말. 어렴풋이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그게 법으로 정해진 날이라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 왜 하필 4월 22일일까. 두 개의 바퀴 위에서 시작된 이 질문은 생각보다 멀리 굴러가기 시작했다.

알아보니 4월 22일 자전거의 날은 단순한 캠페인이나 상징적 이벤트가 아니었다. 2010년 6월,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과 그 시행령에 의해 공식적으로 제정된 법정기념일이었다. 심각해지는 교통 혼잡, 악화되는 환경 문제, 에너지 낭비라는 현실 앞에서 국가는 ‘자전거’를 하나의 해답으로 선택했다. 국민의 건강을 증진하고, 근검절약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며, 무엇보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자전거를 타는 나의 오늘 아침이, 생각보다 오래된 질문과 정책의 연장선 위에 있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페달을 밟는 이 단순한 행위가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그 순간, 자전거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처럼 느껴졌다.

 

봄빛이 감도는 세 장면 속에서 같은 인물 지원이가 캠퍼스와 도심, 강변을 배경으로 서로 다른 표정과 자세를 보여준다. 자전거를 매개로 한 하루의 이동이 몸의 균형과 도시의 풍경을 하나의 흐름으로 잇는다.

 

 

제도의 탄생 ― 국가가 자전거를 선택한 이유

2010년 이전의 한국 사회에서 자전거는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어린 시절의 놀이이거나, 운동 마니아의 취미이거나, 혹은 차를 살 수 없는 사람의 대안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도시가 커질수록, 도로 위의 차가 늘어날수록 문제는 분명해졌다. 출퇴근 시간의 정체는 일상이 되었고,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는 뉴스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교통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불편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부담이 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자전거는 갑자기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호출된다. 엔진도 연료도 필요 없는 이동수단,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이는 교통수단. 효율적이고 조용하며, 도시의 공간을 덜 차지하는 존재.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법은 자전거를 단순히 권장하지 않았다. 이용 환경을 만들고, 인식을 바꾸고, 제도로 뒷받침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상징적인 장치가 바로 ‘자전거의 날’이다. 특정한 하루를 정해 자전거를 이야기하고, 타고, 떠올리게 하는 것. 법정기념일이라는 형식은 자전거를 선택하는 행위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방향임을 보여준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더 이상 소수의 특이한 선택을 한 사람이 아니라, 정책이 지지하는 주체가 되는 순간이다.

이 제정 이유 속에는 흥미로운 단어들이 함께 들어 있다. 교통과 환경이라는 거대한 문제 옆에 ‘국민의 건강증진’, 그리고 ‘근검절약하는 사회적 분위기’라는 표현이 나란히 놓여 있다. 이는 자전거가 단지 환경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삶의 방식 전반을 바꾸는 열쇠로 여겨졌다는 뜻이다. 몸을 움직이며 건강을 지키고,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줄이며, 절제된 이동을 선택하는 것. 그 모든 것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상징으로 자전거가 선택된 것이다. 법은 차갑지만, 그 안에 담긴 방향성은 의외로 생활 밀착적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아침에 자전거를 탔던 내 선택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숫자에 담긴 상징 ― 4월과 22일이 말하는 것

자전거의 날이 4월 22일로 정해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먼저 4월이라는 계절. 겨울의 얼음이 완전히 풀리고, 여름의 열기가 아직 시작되지 않은 시기. 두꺼운 외투 없이도 바람을 맞을 수 있고, 땀이 고통이 아니라 생동감으로 느껴지는 달이다. 자전거를 타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계절을 찾기 어렵다. 국가가 날짜를 정할 때 계절을 고려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정책 속에 ‘몸의 감각’이 들어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리고 22일. 이 숫자는 자전거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를 상징한다. 앞과 뒤, 두 개의 바퀴.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놓치기 쉬운 상징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자전거는 두 개의 바퀴가 동시에 굴러갈 때만 앞으로 나아간다. 하나라도 멈추면 균형은 무너진다. 이 단순한 구조는 이동의 원리이자, 삶의 비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두 바퀴 모두가 필요하다는 사실. 빠르게 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숫자와 계절을 결합한 이 날짜 선택은 자전거의 날을 설명하는 데 묘한 설득력을 가진다. 억지로 외우지 않아도 기억에 남고, 의미를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4월 22일은 단순한 날짜가 아니라, 자전거라는 존재를 직관적으로 떠올리게 만드는 장치다. 나는 이 상징을 알고 나서부터 달력을 볼 때마다 이 날짜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되었다. 숫자 두 개가 바퀴처럼 겹쳐 보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자전거를 떠올린다.

 

 

나의 두 바퀴 ― 몸으로 이해한 자전거의 날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달라진 건 몸에 대한 감각이었다. 허벅지가 단단해지고, 숨이 조금 더 깊어졌다. 거울 속의 나는 여전히 20살의 대학생이고,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몸은 긍정적인 존재가 되었다. 자전거 위에서의 나는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스스로의 리듬에 집중한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이어지는 근육의 긴장과 이완, 바람에 옷이 살짝 밀착되는 느낌. 이 모든 것이 내 몸이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도시의 풍경도 달라 보였다. 같은 길을 걸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자전거 위에서는 눈에 들어왔다. 신호등 옆에 새로 생긴 자전거 도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출근하는 사람들,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물빛. 속도가 만들어내는 거리감 덕분에 나는 도시 안에 있으면서도 도시와 약간 떨어져 있는 느낌을 받았다. 이 거리감이 주는 여유는 생각보다 컸다. 자전거는 나를 서두르게 하지 않았다. 대신 주변을 인식할 시간을 주었다.

자전거의 날 제정 이유 중 하나인 ‘자전거 이용자의 자긍심 고취’라는 문장이 이제는 조금 이해된다.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단순히 교통수단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 몸을 믿는 선택이고, 도시를 다른 방식으로 통과하겠다는 선언이다. 4월 22일 자전거의 날은 그래서 기념일이라기보다 질문에 가깝다. 우리는 어떤 속도로, 어떤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는가. 두 개의 바퀴 위에서 시작된 이 질문은 여전히 내 일상 속에서 굴러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가능하다면 자전거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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