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법이라는 단어가 교과서 안에만 살지 않는다는 걸. 고등학교 때까지의 법은 시험 범위였고, 뉴스 속 자막이었고, 나와는 한 칸 떨어진 어른들의 세계 같았다. 나는 그저 대학생이 되었고, 조금 더 짧은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내 몸의 곡선을 스스로 인정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었다. 바람에 스커트가 흔들릴 때의 기분, 몸에 꼭 맞는 니트가 내 실루엣을 솔직하게 드러낼 때의 자신감. 그런 감각들로 하루를 살아가면서도, 법이 나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은 잘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일상은 생각보다 빨리 현실을 들이밀었다. 아르바이트 계약서에 적힌 작은 글씨, 월세 계약을 앞두고 들은 보증금 이야기, 클릭 한 번으로 동의해버린 서비스 약관들. 아무렇지 않게 넘겼지만 마음 한편이 계속 불편했다. 혹시 손해를 보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너무 쉽게 나를 내준 건 아닐까. 그 불안은 묘하게도 내 몸을 의식할 때의 감정과 닮아 있었다. 드러내는 것과 보호받는 것은 다르다는 걸, 그때 조금 알게 되었다. 법은 나를 통제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선을 만들어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4월 25일, ‘법의 날’이라는 이름이 새롭게 보였다. 그동안 달력 속 작은 글씨로만 존재하던 기념일이 갑자기 지금의 나와 연결되는 느낌. 법의 날이 국민의 준법정신을 높이고 법의 존엄성을 고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문장은 더 이상 추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잘 몰라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알고 선택하기 위해 필요한 약속의 이름처럼 다가왔다.

법을 몰랐던 스무 살, 그리고 불안
대학교에 입학하고 가장 먼저 느낀 건 자유였다. 시간표도, 옷차림도, 말투도 이전보다 훨씬 내 마음대로였다. 몸을 조이는 교복 대신, 내 체형을 드러내는 옷을 고르고, 시선이 느껴질 때조차 숨기지 않으려 애썼다. 바디 포지티브라는 말을 알기 전부터, 나는 내 몸을 긍정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유가 커질수록 불안도 함께 따라왔다.
아르바이트 첫 달, 시급이 약속과 달랐을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계약서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이유로, 괜히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 될까 봐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법을 모른다는 건, 내 권리를 말할 언어가 없다는 뜻이라는 걸. 준법정신이라는 말이 갑자기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지키기만 하는 태도가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알아야 하는 최소한의 감각.
불안은 사소한 순간에도 고개를 들었다. 중고 거래에서 연락이 끊겼을 때, 환불 규정을 찾느라 새벽까지 화면을 넘기던 시간들. 그때마다 느꼈다. 법은 누군가를 처벌하기 전에, 누군가를 덜 불안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는 걸. 국민의 준법정신을 높인다는 법의 날 제정 이유는, 바로 이런 일상의 틈에서 태어난 말이 아닐까. 나처럼 평범한 스무 살을 기준으로 말이다.
법의 날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법의 날은 처음부터 지금의 날짜였던 건 아니다. 1958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5월 1일을 ‘법의 날’로 지정하면서 시작되었다. 법이 민주주의 사회의 뼈대라는 인식이 퍼지던 시기였다. 1963년 제1차 세계법률가 대회에서는 이 기념일을 세계 각국에 권고했다. 법을 지키는 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약속이라는 메시지였다.
한국에서도 1964년 4월, 「법의 날에 관한 건」에 따라 5월 1일이 법의 날로 지정되었다. 이후 1973년에는 ‘교도관의 날’이 법의 날에 통합되었다. 처벌과 교정의 이미지를 넘어, 법 전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바라보려는 흐름이었다. 그리고 2003년 2월, 법의 날은 지금의 날짜인 4월 25일로 옮겨졌다.
이 날짜는 갑오개혁 당시 제정된 「재판소구성법」이 시행된 날이다. 근대적 사법제도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순간. 단순한 기념일 변경이 아니라, 법의 출발점을 다시 기억하자는 선택이었다. 그 이야기를 알고 나니, 지금 내가 누리는 일상의 안정감이 얼마나 오래된 고민 위에 세워졌는지 조금은 실감이 났다. 오늘의 나를 보호하는 규칙은, 과거 누군가의 치열한 선택에서 시작되었다.
법의 존엄성은 누가 지키는가
법의 존엄성은 법전 속 글자에서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이 법을 신뢰할 때, 그리고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을 때 유지된다. 예전에는 재판, 헌법, 사법제도 같은 말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내가 계약서를 읽고, 질문하고, 이해하려 할 때 이미 법은 내 삶 안으로 들어와 있다.
내 몸을 존중하는 일과 법을 아는 일은 닮아 있다. 드러내되 무방비가 되지 않는 것, 선택하되 강요당하지 않는 것. 법은 나를 억누르기 위한 규칙이 아니라, 나의 경계를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언어다. 그래서 준법정신은 복종이 아니라 합의에 가깝다. 서로의 선을 넘지 않겠다는 약속.
4월 25일 법의 날을 기억하는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나는 여전히 스무 살의 대학생이고, 거울 앞에서 내 몸을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제 안다. 이 평범한 일상이 수많은 법적 고민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법은 교과서 속에만 있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나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