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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 새마을의 날- 나에게는 어떤 의미 인가?

by JiwonDay 2026.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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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앱을 넘기다가 ‘4월 22일 새마을의 날’이라는 글자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말하면 마음이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공휴일도 아니고, 캠퍼스에 포스터가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SNS에서 해시태그가 쏟아지는 날도 아니었다. 그냥 조용히 지나가는 날짜였다. 강의실로 향하는 길, 이어폰을 낀 채 빠르게 걷는 나에게 ‘새마을’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오래된 교과서의 페이지처럼 느껴졌다. 지금의 내 일상은 과제 마감, 아르바이트 시간표, 혼자 사는 원룸의 불 켜짐과 꺼짐으로 채워져 있는데, ‘마을’이라는 말은 그 틈에 들어올 자리가 없어 보였다.

나는 스무 살의 대학생이다. 몸은 늘 분주하고, 마음은 자주 흔들린다.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고치며 오늘의 나를 확인하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숨이 찬 순간마다 ‘아, 내가 지금 살아 있구나’ 같은 감각을 느낀다. 이런 감각은 너무 개인적이라서, 공동체나 국가, 운동 같은 단어와는 잘 연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의문이 들었다. 이 날은 누구를 위한 기념일일까. 부모님 세대에게는 익숙했을지 모를 이 단어가, 왜 나에게는 시험 범위가 끝나면 바로 잊히는 역사 용어로만 남아 있을까.

그러다 우연히 과제 때문에 자료를 찾다가 알게 됐다. 새마을의 날은 그냥 캠페인 이름이 아니라, 법으로 정해진 기념일이라는 사실을. 2011년 3월 3일, 「새마을운동 조직 육성법」에 의해 4월 22일이 공식적으로 지정되었다는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누군가는 이 이름을 계속 남기고 싶어 했고, 그래서 제도까지 만들었다는 뜻이니까. 그때부터였다. ‘상관없는 날’이라고 넘기기 전에, 왜 만들어졌는지 한 번쯤은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도시의 고요한 일상에서 시작해 마을의 기억을 지나, 따뜻한 공동체의 빛으로 나아가는 여대생의 감정 변화를 담은 3프레임 합성 이미지.

 

 

① 기념일이 된 이유부터 다시 읽다

새마을운동은 1970년, 농촌개량운동으로 출발했다. 지금처럼 모든 집에 인터넷이 깔리고, 배달 앱으로 저녁을 해결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당시 농촌은 생활 환경이 열악했고, 국가 전체가 가난을 벗어나는 것이 절실한 과제였다. 그래서 정부가 주도해 시작한 것이 바로 새마을운동이었다. 스스로 일하고, 스스로 돕고, 함께 나아가자는 근면·자조·협동의 구호는 그 시절에는 생존과 직결된 언어였다.

이 운동은 단기간에 농촌의 모습과 사람들의 생활 태도를 바꾸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물론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한계도 분명하다. 정부 주도의 방식, 성과 중심의 평가, 개인의 다양성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부분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시대의 사람들은 ‘함께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웠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새마을운동은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경험이었다.

 

2011년에 새마을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제정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마을운동을 과거의 성과로만 남기지 않고, 그 정신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였다. 국민의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공동체라는 가치를 현재형으로 유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료를 읽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중요한 취지라면, 왜 나는 학교에서 시험용 연도로만 배웠을까. 왜 지금의 일상에서는 이 이야기가 거의 들리지 않을까.

 

 

② 나의 일상에는 왜 새마을이 보이지 않았을까

나는 원룸에 산다.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마주쳐도 가볍게 고개만 끄덕일 뿐, 이름은 물론 얼굴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동네 이름은 주소 때문에 알고 있지만, 그 안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는 모른다. 이런 생활이 불편하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편하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옷을 벗어두고, 몸을 스트레칭하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 시간은 나에게 꽤 소중하다. 내 몸과 감각에 집중하는 이 시간이, 나를 지켜주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가끔은 이상한 공허가 스친다. 새마을운동 당시의 마을은 함께 일하고, 함께 결정하고, 함께 나누는 구조였다고 한다. 지금의 나는 효율적으로 살아가지만, 모든 선택을 혼자 감당한다. 봉사활동이나 지역 연계 수업에서 잠깐 ‘같이 무언가를 하는’ 순간을 경험하면, 마음 한편이 묘하게 따뜻해지면서도 동시에 낯설어진다. 왜 이런 감각이 어색할까. 아마도 우리는 너무 오래 개인 중심의 리듬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 순간 깨닫게 된다. 새마을운동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 내가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공동체는 없어졌기보다, 내 시야에서 멀어졌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기념일이 갑자기 나와 조금 더 가까워졌다.

 

 

③ 그래서 새마을의 날은 지금도 의미가 있을까

이제 나는 새마을의 날을 과거를 찬양하는 날로 보지 않는다. 대신 지금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의 날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역 소멸, 고독사, 관계의 붕괴 같은 단어들이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지금, ‘함께 해결하려는 태도’는 여전히 유효하다.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과거와 똑같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혼자서만 버티는 사회가 답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스무 살의 여대생인 나에게 이 날은 갑자기 애국심이 솟아오르는 날도 아니고, 무조건 과거를 미화하는 날도 아니다. 대신 내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 이웃과의 거리를 어디까지 허용하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만드는 날이다. 내 몸을 긍정하고, 나의 삶을 사랑하는 것처럼, 관계와 공동체도 다시 감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상관없는 날이라고 생각했던 기념일이, 결국은 나의 삶을 가장 많이 설명해주고 있었다. 4월 22일 새마을의 날은 그렇게, 조용하지만 묵직한 질문으로 내 일상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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