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햇살은 언제나 과감하다. 캠퍼스의 계단 난간을 타고 내려오는 빛이 다리선을 길게 드러내는 오후, 나는 그날도 여느 때처럼 짧은 재킷과 가벼운 원피스를 입고 봉사활동 장소로 향했다.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을 고르고, 립을 한 번 더 바르는 사소한 준비가 왠지 나를 보호해 주는 갑옷처럼 느껴지던 스무 살의 봄이었다. ‘도움 주러 간다’는 마음은 분명 선했지만, 마음 한켠에는 알 수 없는 긴장과 기대가 뒤섞여 있었다. 장애인 관련 봉사활동이라는 단어는 늘 교과서적 문장으로만 다가왔고, 현실의 결은 상상 속보다 훨씬 거칠다는 사실을 나는 아직 몰랐다. 현장에서 마주한 얼굴들은 나의 예상을 비틀었다. 웃음이 먼저 나오기도 했고, 침묵이 길어지기도 했다. 어떤 순간에는 내 몸의 움직임 하나, 시선의 높이 하나가 상대에게는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내가 ‘배려’라고 생각했던 행동이 오히려 거리감을 만들기도 했다. 봉사라는 이름 아래 놓인 하루는 생각보다 많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이렇게 조심스러워졌을까. 왜 괜히 몸을 웅크리거나, 반대로 과하게 밝아지려 했을까. 여성으로서, 그리고 스무 살 대학생으로서 내가 가진 몸과 태도, 말투가 관계의 온도를 바꾸는 장면들을 그날 처음으로 또렷하게 인식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다. 이 날짜가 품은 시간의 층위는 생각보다 깊다. 1970년 국제재활협회가 ‘재활 10년’을 선포하며 각 나라에 ‘재활의 날’을 권고했고, 1972년에는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통계적으로 비가 적은 4월 20일을 택해 ‘재활의 날’로 행사를 열었다. 1981년 UN이 ‘세계 장애인의 해’를 지정하자, 우리 사회도 4월 20일을 ‘장애자의 날’로 기념하기 시작했고, 1989년 「장애인복지법」을 통해 지금의 ‘장애인의 날’로 자리 잡았다. 이 흐름을 떠올리며 나는 깨달았다. 이 날은 동정의 감정을 나누는 날이 아니라, 권리의 언어를 배우는 날이라는 것을.

① 봉사활동 하루, 몸으로 배운 거리감
그날의 일정은 단순했다. 이동 보조, 프로그램 진행 보조, 식사 시간 안내. 그러나 단순한 일정 속에서 나는 수없이 멈춰 섰다. 휠체어 옆에 서 있을 때, 자연스럽게 내려다보는 시선이 상대를 작게 만드는 건 아닐지 고민했다. 그래서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추다가, 또 그 동작이 과장된 친절처럼 보이지는 않을지 스스로를 의심했다. 몸은 솔직했다. 긴장하면 어깨가 올라가고, 불안하면 손끝이 바빠졌다. 여성으로서 나의 몸이 가진 선과 곡선, 노출과 시선의 교차가 이 공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계속해서 감각하게 되었다. 예상과 달랐던 감정도 있었다. 연민보다는 웃음이 많았고, 미안함보다는 동료애에 가까운 순간들이 더 잦았다. 함께 점심을 먹으며 나눈 대화는 캠퍼스에서의 수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접근 방식이 달랐다. 같은 공간을 쓰되, 같은 방식으로 쓰지 않는다는 사실. 그 미묘한 차이를 몸으로 배우는 하루였다. 봉사는 ‘주는’ 행위가 아니라 ‘함께 조율하는’ 과정이라는 말이 그제야 이해되었다.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며, 물줄기가 피부를 타고 흐르는 감각 속에서 하루를 천천히 복기했다. 몸은 기억을 남긴다. 질문도 함께.
② 기념일의 역사, 동정에서 권리로
장애인의 날이 제정된 이유는 분명하다. 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깊게 하고, 재활 의욕을 북돋우며, 복지 증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이 문장은 행정 문서처럼 건조하지만, 그 안에는 오랜 투쟁과 전환의 역사가 담겨 있다. 초창기의 ‘재활’이라는 단어는 개인의 노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관점은 이동했다.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환경과 제도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도와주는 사람’과 ‘도움받는 사람’이라는 이분법은 서서히 해체되었다.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언어가 바뀌는 순간들이 보인다. 명칭의 변화, 법의 제정, 기념일의 공식화. 이 변화들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였다. 접근권,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봉사활동 현장에서 느꼈던 어색함은 개인의 미숙함만이 아니라, 아직 완전히 정비되지 않은 사회적 장치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깨닫자 마음의 방향이 달라졌다. 동정은 순간이지만, 권리는 구조다. 4월 20일은 감정의 고조로 끝나는 날이 아니라, 구조를 점검하는 날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또렷해졌다.
③ 같은 공간, 다른 접근 — 나의 작은 다짐
캠퍼스로 돌아온 나는 일상의 장면들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경사 없는 건물 입구, 너무 높은 안내 데스크,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 이전에는 배경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질문으로 다가왔다. 나는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거창한 답은 아니었다. 말의 속도를 조절하고, 시선을 수평으로 맞추고, ‘도와줄게요’ 대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를 묻는 것. 아주 작은 변화들이었다. 여성으로서 나의 몸을 긍정하는 일 역시 그 다짐의 일부였다. 내 몸을 숨기거나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태도. 그것은 타인의 몸을 존중하는 연습과 닮아 있었다. 봉사활동 하루가 남긴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은 해마다 돌아오지만, 질문은 매일의 선택 속에서 새로워진다. 같은 공간을 함께 쓰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대한 감동보다 지속적인 감각일지 모른다. 그 감각을 잃지 않겠다고,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