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늘 내 몸부터 먼저 깨어나게 만든다. 얇아진 옷감이 피부에 닿을 때의 감각,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바람이 허리선을 스치며 지나갈 때의 미묘한 긴장감, 그리고 그 모든 감각 위에 얹히는 스무 살의 자의식. 나는 지금 이곳에 있고, 살아 있고,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낀다. 강의실로 향하는 길, 게시판에 붙은 포스터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4월 19일 4ㆍ19혁명기념일’. 솔직히 말하면 그 전까지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너무 크고 딱딱해서, 내 일상과는 어딘가 분리된 개념처럼 느껴졌다. 시험 범위에 포함되면 외웠고, 뉴스에서 나오면 흘려들었다. 취업 걱정, 성적 관리, 오늘 입을 옷을 고르는 일 같은 훨씬 더 급한 문제들이 늘 앞에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햇빛에 바랜 포스터 앞에서 잠시 멈춰 선 순간, 내가 이렇게 자유롭게 걷고, 말하고, 나를 드러내는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민주주의는 책 속의 문장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몸이 누리고 있는 상태라는 사실이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스며들었다.

캠퍼스에서 마주한 4월 19일, 몸으로 느낀 일상
수업 시작 전, 커피를 한 손에 들고 캠퍼스를 걷는 아침은 늘 비슷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봄의 캠퍼스는 조금 다르다. 햇살이 강해질수록 나도 모르게 어깨가 펴지고, 거울에 비친 내 실루엣을 한 번 더 확인하게 된다. 몸의 선이 드러나는 옷을 입는다는 건 단순히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나 자신을 긍정하는 방식이다. 스무 살의 나는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그 불완전함마저 껴안고 걷고 싶다. 그런 상태로 마주한 4ㆍ19혁명기념일 안내 포스터는 묘하게도 나를 붙잡았다. 시험 기간이 다가오고, 취업 이야기가 슬슬 들려오는 요즘,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늘 뒤로 밀려나 있었다.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이면서도 정치 이야기는 피곤하게 느껴졌고, 사회 문제는 ‘언젠가’의 일처럼 미뤄두었다. 하지만 포스터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지금 이 캠퍼스가 얼마나 안전하고 자유로운 공간인지 새삼 실감했다. 친구들과 웃으며 의견을 나누고, 교수님의 말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으며, SNS에 내 생각을 적는 일이 가능한 이유. 이 일상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잊고 있었던 질문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민주주의는 멀리 있는 개념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몸과 일상을 감싸고 있는 공기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이 거리로 나섰던 1960년 4월
1960년 4월 19일, 역사의 무게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학생들의 어깨 위에 올려졌다.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분노는 교실과 집 안에 머물지 않았다. 학생과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고, 그 외침은 단순한 항의가 아니라 체제 자체를 흔드는 힘이 되었다. 독재 정권에 맞선 이 민주주의 운동은 결국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사건을 기리기 위해 1973년 3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4ㆍ19의거 기념일’이 제정되었고, 1994년 12월 ‘4ㆍ19혁명기념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 기념일의 제정 이유는 분명하다. 4·19 혁명 정신을 기리고, 민주 이념을 계승·발전시켜 정의사회를 구현하며, 희생자 영령을 추모하기 위함이다. 지금의 나는 강의실에서 토론을 하고, 도서관에서 조용히 책을 읽지만, 그 시절의 학생들은 몸으로 부딪혀야 했다.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그들은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라, 사회를 바꾸는 주체였다. 이 사실을 떠올리면, 오늘의 대학생이라는 위치가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역사는 먼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의 기준을 만들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오늘의 자유와 나의 선택
지금의 나는 자유롭게 옷을 입고, 자유롭게 생각을 말하며, 나의 몸을 긍정한다. 여성으로서 나를 드러내는 일은 때로 시선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나 자신에게 허락한 자유이기도 하다. 이런 선택들이 가능한 사회는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4ㆍ19혁명은 민주주의가 누군가의 희생과 용기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오늘의 자유는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계속해서 지켜야 할 상태다. 포스터 앞에서 멈춰 섰던 그날 이후, 나는 뉴스를 조금 더 천천히 읽게 되었고, 사회적 이슈를 이전보다 덜 피하게 되었다. 스무 살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크지 않을지 몰라도, 기억하고 말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의 선택과 태도에서 살아 움직인다. 캠퍼스를 걷는 내 몸이 느끼는 이 자유로움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과거의 선택들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잊지 않으려 한다. 4월 19일은 그래서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현재형의 질문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