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 있다. 몸은 하루아침에 어른이 되지 않지만, 책임은 어느 순간 갑자기 몸 위에 내려앉는다.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아침 햇살 속에서 나는 내 그림자를 확인한다. 길고 곧게 뻗은 다리, 단단한 허벅지,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고요히 확장되는 가슴의 리듬. 이 몸으로 세상을 걷는다는 건 자유이자 위험이다. 그래서 4월 16일은 달력 속 숫자에 머물지 않는다. 그날의 공기, 그날의 색, 그날 이후 우리가 배워야 했던 질문들이 내 일상에 스며든다. 수업 사이 휴대폰 알림을 확인하며 멈칫하던 기억, 뉴스의 자막이 교실의 소음을 밀어내던 순간, “괜찮다”는 말이 얼마나 가벼운지 깨닫던 밤. 국민 안전의 날은 추모로 시작했지만, 나에게는 몸의 감각으로 이어진다. 안전은 규칙이 아니라 생활이고, 기억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라는 사실. 오늘도 나는 몸을 긍정한다. 동시에 그 몸이 지켜질 권리를 요구한다. 이 글은 애도의 기록이면서, 살아 있는 몸의 선언이다.

1. 희미해져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의 잔상
시간은 기억을 얇게 만든다. 사건의 날짜와 숫자는 외워도, 그날의 감정은 조금씩 흩어진다. 하지만 4월 16일만큼은 다르다. 수업에 늦지 않으려고 빠르게 걷던 발걸음이 멈추고, 가벼운 옷차림 위로 찬 공기가 스치던 순간이 되살아난다. 여고생이던 시절, 교복의 색처럼 차분했던 하루가 갑자기 낯설어졌다. 지금의 나는 대학생이고, 더 많은 선택을 하고, 더 많은 책임을 진다. 몸은 더 당당해졌고, 스스로를 숨기지 않는다. 바디 포지티브라는 말은 내게 유행어가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다. 내 몸을 존중할수록 위험을 감지하는 감각도 예민해진다. 밤길의 그림자, 지하철의 밀도, 비상구 표지의 위치. 기억은 이렇게 생활의 센서로 변한다. 세월이 흘러도 4월 16일의 잔상은 내 하루의 리듬을 바꾼다. 괜찮겠지라는 말 대신 확인하고, 대충이라는 태도 대신 준비한다. 감정은 크고 불규칙하게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이 나를 깨어 있게 한다. 잊지 않는다는 건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몸의 선택을 바꾼다는 뜻이다.
2. 날짜를 기념으로 만든 사회의 선택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사회는 단순한 애도를 넘어 질문을 시작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그리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사회는 질문을 피할 수 없었다. 왜 구조는 늦었는지, 왜 경고는 무시되었는지, 왜 책임은 흐려졌는지.... 12월 30일,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개정되며 4월 16일은 법정기념일 ‘국민 안전의 날’이 되었다. 이는 추모를 넘어 학습을 제도화한 결정이었다. 특히 청소년의 안전문화 의식을 높이기 위해 교육부장관이 학생 안전교육을 실시하려는 취지로 신설되었다는 점은 중요하다. 안전은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사회의 설계라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2015년부터 국가 기념행사와 국민안전 다짐대회가 이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념일은 기억을 고정하는 장치다. 날짜를 공유하면 책임도 공유된다. 국가가 날짜를 붙들어 매는 이유는, 잊힘이 반복을 낳기 때문이다. 제도는 차갑지만, 제도가 없으면 감정은 쉽게 흩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같은 날, 같은 질문을 다시 꺼낸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이며, 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3. 개인의 슬픔을 사회의 책임으로 확장하기
스무 살의 나는 이제 안다. 기억을 개인에게만 맡기면, 애도는 고립되고 변화는 지연된다. 국민 안전의 날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날은 슬픔을 전시하는 날이 아니라, 시스템을 점검하는 날이어야 한다. 나는 내 몸을 사랑한다. 여성으로서의 곡선, 힘을 기른 하체, 숨의 리듬을 믿는다. 동시에 이 몸이 안전하게 이동하고, 안전하게 배울 권리를 요구한다. 비상구는 열려 있는가, 안내는 명확한가, 교육은 반복되는가. 기억은 질문으로 바뀔 때 힘을 가진다. 개인의 눈물이 사회의 책임으로 전환될 때, 비극은 교훈이 된다. 4월 16일을 기억한다는 건 과거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오늘의 선택을 바꾸고, 내일의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선언이다. 나는 조용히 살아남는 데서 멈추지 않겠다. 몸의 긍정은 안전의 요구로 이어져야 한다. 이것이 내가 국민 안전의 날을 살아내는 방식이다. 기억하지 않으면 반복된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한다. 그리고 행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