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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도시농업의 날, 텃밭은 힐링이 아니라 생존 연습이었다

by JiwonDay 2025. 12. 29.

스무 살의 나는 늘 바빴다. 강의실에서 계단을 내려오면 바로 알바로 뛰고, 집에 돌아오면 거울 앞에서 하루의 피로를 씻어냈다. 몸은 젊고 선명했다. 운동으로 다져진 허벅지와 균형 잡힌 골반, 스스로를 긍정하는 태도는 나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하지만 그 자신감과는 달리, 마음 한켠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 늘 있었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물가 상승, 기후 위기, 식량 이야기들은 내 일상과 동떨어진 듯하면서도 묘하게 피부에 와 닿았다. 그러던 중 환경 동아리 과제로 시작한 ‘상자 텃밭’이 학교 옥상에 놓였다. 흙보다 SNS에 익숙한 세대인 내가 씨앗을 만지며 시간을 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엔 그저 예쁜 사진 한 장 남기기 위한 취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몇 주가 지나며 텃밭은 나에게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4월 11일 도시농업의 날이 왜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몸으로 이해하게 된 순간들이었다. 도시농업은 도시 속에서 자연을 흉내 내는 장식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갈 방식을 다시 배우는 연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 옥상과 텃밭을 배경으로, 흙과 도시 사이에서 성장하는 스무 살 지원이의 생존 연습을 담은 삼분할 포스터 이미지.

 
 

흙보다 SNS에 익숙했던 첫 농사, 취미라는 착각

학교 옥상으로 올라가던 첫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바람이 세게 불었고, 머리를 묶은 포니테일이 목덜미를 스쳤다. 나는 늘 그렇듯 몸에 잘 맞는 옷을 입고 있었다. 스스로의 실루엣을 숨기지 않는 건 나만의 방식이었다. 텃밭 앞에 서니 그 당당함이 잠시 흔들렸다. 흙은 생각보다 거칠었고, 물은 생각보다 많이 필요했다. 상자 속 작은 공간에서 시작된 도시농업은 정의 그대로였다. 도시지역의 건축물과 생활공간을 활용해 농작물을 기르는 일. 책에서 읽으면 간단했지만, 실제로는 서툴렀다. 흙을 고르고 씨앗을 심으며 손톱 밑에 흙이 들어갔다. 처음엔 그게 싫었다. 예쁘게 관리하던 손이 망가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흙이 이상하게도 자랑스러워졌다. 도시농업을 취미라고 부르는 게 어쩐지 가볍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건 시간을 들여야 하고, 몸을 써야 하며,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다. SNS처럼 즉각적인 반응은 없었지만, 대신 살아 있다는 감각이 있었다. 스무 살의 몸으로 흙을 만지며, 나는 도시농업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는 첫인상을 얻었다.

물가와 기후 위기 속에서 텃밭이 사회가 되다

상추가 자라던 시기에 물가는 더 빠르게 올랐다. 장을 보러 갈 때마다 계산대 앞에서 잠시 망설이게 되는 순간들이 늘었다. 텃밭에서 자란 작은 채소를 따며, 뉴스 속 단어들이 현실로 이어졌다. 기후 위기, 식량 안보. 그 말들은 더 이상 추상적이지 않았다. 비가 오지 않던 날, 흙이 마르고 잎이 처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도시농업은 개인의 힐링을 넘어 사회적 안전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도시농업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을 것이다. 2017년 3월 21일,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을 통해 이 날이 만들어진 이유는 분명하다. 국민에게 자연친화적인 도시환경의 중요성을 알리고, 흩어져 있는 도시농업의 힘을 모으기 위해서다. 텃밭 앞에서 햇빛을 받으며 서 있던 나는, 내 몸이 느끼는 따뜻함과 사회가 겪는 냉기를 동시에 생각했다. 여성으로서, 청년으로서, 나는 아직 연약하지만 동시에 가능성도 많다. 도시농업은 그 가능성을 붙잡는 하나의 방법처럼 보였다. 흙을 가꾸는 일은 곧 도시를, 그리고 우리 삶을 돌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농업의 날, 청년을 위한 생존 연습의 시작

도시농업의 날은 아직 많은 또래에게 낯설다. 도시농업 자체가 생소하고,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의 연결도 약하다. 기술과 경험을 나눌 제도적 기반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청년 친화적인 도시농업 정책과 공간이. 우리는 각자의 몸을 긍정하며 살아가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도 함께 안고 있다. 도시농업은 그 불안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는 연습이 될 수 있다. 텃밭에서 땀을 흘리며 나는 배웠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조금씩 익숙해지는 과정이라는 것을. 4월 11일 도시농업의 날은 그런 과정을 사회적으로 확장하는 날이어야 한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이 흙을 통해 연결되고, 기술과 이야기를 나누며, 미래를 준비하는 날. 스무 살의 나는 아직 배울 것이 많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텃밭은 힐링이 아니라, 우리가 내일을 살아내기 위한 생존 연습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