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공기가 아직 차가운 날, 강의실로 가기 전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묶다가 문득 바다가 떠올랐다. 스무 살이 된 나는 이제 대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도시의 리듬 속에 살고 있지만, 몸 어딘가에는 여전히 짠내와 파도의 기억이 남아 있다. 살짝 드러난 어깨와 허리선, 단단해진 다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몸이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누군가가 새벽의 바다로 나갔기 때문이라는 걸. 4월 1일 수산인의 날은 달력 속 작은 글자지만, 그 하루는 결코 작지 않다. 수산업과 어촌의 가치를 알리고, 수산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되새기기 위해 만들어진 이 날은 내 일상과도 은근히 맞닿아 있다. 오늘은 바다에서 시작해 식탁에 닿기까지의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온몸으로 건너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 천천히 꺼내보고 싶다.

새벽 바다, 하루의 시작을 몸으로 기억하다
새벽 바다는 늘 말이 없다. 어릴 적 친척을 따라 처음 배를 탔던 날도 그랬다. 아직 해가 뜨기 전, 어둠과 푸른빛이 섞인 바다 위에서 배는 낮게 울렸고, 찬 바람은 옷 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갑판 한쪽에 서서 몸을 꼭 움츠렸는데, 그 옆에서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물을 정리하고 있었다. 굽은 허리, 단단한 팔, 물에 젖은 장화.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습은 투박했지만 이상하게도 아름다웠다. 몸을 숨길 수 없는 공간에서, 그들은 몸으로 일하고 몸으로 버텼다. 수산인의 하루는 이렇게 새벽에 시작된다. 파도가 높든 낮든, 바다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날 이후 나는 몸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단정함보다 기능, 가냘픔보다 단단함. 지금의 내 몸도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캠퍼스를 오가며 다져진 다리, 움직임에 맞춰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허리선. 이 모든 일상이 사실은 바다와 연결돼 있다는 걸, 새벽의 그 기억이 가끔씩 나를 붙잡는다.
어획에서 유통까지, 길고 젖은 시간
수산물은 바다에서 바로 식탁으로 오지 않는다. 어획, 양식, 선별, 위판, 유통. 이 긴 여정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위험하다. 대학에 들어와 바닷가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나는 그 과정을 몸으로 조금이나마 느꼈다. 햇볕 아래에서 물을 뒤집어쓰고, 무거운 상자를 옮기며 허리를 숙였다 펴기를 반복했다. 잠깐이었지만 몸은 금세 반응했다. 땀이 흐르고, 근육이 당겼다. 그날 숙소에서 샤워를 마치고 거울을 봤을 때,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어깨와 복부가 낯설게 느껴졌다. 피곤했지만 이상하게도 스스로가 또렷했다. 수산인의 노동은 이런 몸의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1996년 세계무역기구 체제 출범 이후 개방화가 가속되며 농어업은 더 어려워졌고, 그 부담은 현장의 몸으로 먼저 전해졌다. 그래서 한때 ‘어민의 날’은 ‘권농의 날’로 통합되기도 했고, ‘농어업인의 날’, ‘바다의 날’ 속으로 흡수되기도 했다. 그러다 2011년 「수산업법」으로 다시 어업인의 날이 부활했고, 2016년 「수산업·어촌 발전 기본법」에 따라 ‘수산인의 날’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이 변화의 시간만큼이나, 그들의 하루는 길고 젖어 있다.
감사의 날로서의 4월 1일 수산인의 날
4월 1일 수산인의 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다. 이 날은 바다를 삶으로 선택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조용한 존중이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드는 생선 한 점, 그 부드러운 살과 무게 뒤에는 수많은 새벽과 위험이 겹쳐 있다. 스무 살의 나는 아직 배울 게 많고, 내 몸도 내 삶도 계속 변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식탁 앞에서 잠시 멈춰 서게 된다. 1968년 수산청 고시로 시작된 ‘어민의 날’부터 지금의 수산인의 날까지, 이 날이 걸어온 길은 수산업이 얼마나 쉽게 잊히는지, 또 얼마나 끈질기게 버텨왔는지를 보여준다. 감사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 지속 가능한 수산물을 선택하는 것, 어촌과 수산업의 현실에 관심을 갖는 것, 그리고 이 노동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 내 몸을 긍정하는 바디 포지티브처럼, 수산인의 노동도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4월 1일 수산인의 날은 그렇게, 바다와 나, 그리고 우리의 일상을 다시 연결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