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바쁜 하루들 사이에서 문득, 내 몸이 숨을 쉬고 있는지조차 잘 모르겠던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잠깐의 틈을 주려고 국립공원을 찾았고, 그때 느꼈다. 숲의 숨결은 내 체온과 닿을 때 더 선명해진다는 걸. 이 글은 그런 내 경험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의미를 되새겨야 할 3월 3일 국립공원의 날이다.

1. 자연의 이름을 처음으로 불렀던 날 – 국립공원의 날의 의미
3월 3일 국립공원의 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조용히 되묻는 날이다. 국가가 자연을 ‘보호해야 할 자산’으로 처음 지정한 건 1967년, 지리산이 제1호 국립공원이 된 순간부터다. 그리고 2020년 6월 9일, 자연공원법 개정과 함께 매년 3월 3일이 기념일로 자리 잡았다. 나는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게 된 뒤로 풍경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젖은 이마를 닦아내며 바람을 맞을 때, 내 몸의 곡선과 움직임조차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20살의 나는 언제나 내 신체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려고 애써왔고, 국립공원에서 걸을 때는 그 감정이 더 자유로워진다. 허리를 스치는 바람, 햇빛 아래 드러나는 피부의 결, 걷는 리듬에 맞춰 흔들리는 내 어깨선까지…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눈치 주지 않고 받아주었다. 그래서 이 날의 의미는 단순히 제정 이유—국민의 관심과 이해를 높이기 위함—을 넘어서, ‘우리 몸도 자연이다’라는 사실을 조용히 느끼게 만든다. 인간과 자연의 경계는 실은 그렇게 뚜렷하지 않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게 된다.
2. 숲에서 깨어나는 감각들 – 몸으로 느낀 국립공원
국립공원을 걸으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습기가 목덜미를 적시는 순간, 가슴 근육이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돌길을 밟을 때 다리의 탄력이 조금 더 살아나고, 숨이 깊어질수록 갈비뼈 아래까지 차오르는 공기의 무게가 색다르게 느껴진다. 이런 신체적 감각은 마치 내 몸의 모든 감정이 다시 켜지는 느낌이다. 숲속에서 새가 멀리서 날갯짓하는 소리를 들으면, 어깨를 뒤로 젖히는 내 동작도 한층 느긋해진다. 자연은 내 몸에 닿는 방식으로 말을 걸고, 나는 그 말을 피부로 받아들인다. 특히 햇빛 아래서 살짝 반짝이는 내 팔 라인이나, 경사길을 오르며 골반이 리듬을 타는 순간들은 몸의 존재감을 기쁜 방식으로 확인하게 해준다. 이건 관능이라기보다 ‘살아 있다는 실감’에 가까운 감정이다. 그렇게 천천히 숲길을 오르다 보면, 자연을 지키는 일이 왜 중요한지 감각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풍경은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니까. 내가 숨을 쉬는 방식, 내가 걸음을 내딛는 방식, 내가 세상을 만지는 방식까지 자연은 조용히 바꾸어 놓는다.
3. 풍경을 소비하지 않는 마음 – 우리가 지켜야 할 작은 책임들
자연 속에서 내 몸이 살아나는 경험을 하고 나면, 국립공원을 ‘관광지’로만 보는 것이 얼마나 아쉬운 일인지 실감하게 된다. 풍경을 소비하는 시선은 금방 지나가지만, 자연을 보호하는 태도는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나는 국립공원을 걸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작은 약속을 한다. 쓰레기를 남기지 않기, 지정된 탐방로를 벗어나지 않기, 생태계를 해치는 행동을 하지 않기. 이런 실천들은 거창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내 몸을 긍정하듯, 자연도 그렇게 긍정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나의 곡선, 나의 체온, 나의 호흡처럼 자연도 누군가의 손길에 쉽게 흔들리고 다친다. 그래서 국립공원의 날은 ‘기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날이고, 그만큼 자연을 보호할 책임이 몸에 새겨지는 순간이다. 내가 숲길을 내려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느꼈던 건 단순한 여운이 아니라, 몸과 자연이 서로 닿아 있었다는 감각이다. 그 감각이 남아 있는 한, 나는 앞으로도 자연을 더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대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그 길을 걸을 때, 오늘의 3월 3일이 떠오를 것 같다. 자연이 나를 받아준 하루, 그리고 내가 자연에게 작게나마 책임을 내어준 하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