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커튼 틈으로 스며들 때, 나는 아직 잠기 덜 깬 몸으로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다리를 늘어뜨린다. 스무 살, 대학 새내기라는 말은 가볍게 들리지만, 몸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강의실 계단을 오르내리며 느끼는 허벅지의 단단함, 밤늦게 과제를 하다 보면 배 속에서 올라오는 묘한 긴장, 그리고 거울 앞에서 옷을 고를 때 마주하는 나 자신의 실루엣. 3월 21일 암 예방의 날은 이런 일상의 한가운데서 나를 멈춰 세운다. 아직 젊고 건강하다고 믿는 지금, 왜 굳이 ‘암 예방’이라는 단어를 꺼내야 할까. 이 날은 2006년 10월 27일 「암관리법」 개정을 통해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암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높이고, 예방·치료·관리 전반에 대한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서다. 국가가 굳이 날짜를 정해 말 걸어오는 이유는 단순하다. 암은 일부 사람의 불운이 아니라, 모두의 생활과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병원보다 캠퍼스 잔디밭이 익숙한 나이지만, 그렇기에 더 솔직하게 이 이야기를 내 몸의 언어로 풀어보고 싶었다.

국가가 만든 하루, 개인의 몸으로 내려오는 순간
암 예방의 날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조금 멀게 느껴졌다. 보건소 게시판에 붙은 포스터, 뉴스 자막 속 날짜 하나쯤으로 스쳐 지나갈 뻔했다. 하지만 이 기념일이 만들어진 배경을 알고 나니 감정의 결이 달라졌다. 국가 암 관리 정책은 단순한 행정이 아니라, 국민의 몸을 장기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가깝다. 암 예방의 날을 지정하고, 예방과 관련된 행사와 교육, 홍보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한 이유는 ‘알게 하려는 것’이다. 암을 무서운 병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이해 가능한 대상으로 끌어내리기 위해서다. 캠퍼스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 나는 내 몸을 꽤 자주 사용한다. 계단을 오르며 숨이 차고, 강의실 의자에 앉아 허리를 곧게 세우고, 밤에는 스트레칭으로 근육을 풀어준다. 이런 일상 속 몸은 관리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즐거움의 원천이다. 국가가 말하는 암 관리 정책도 결국은 이 지점에 닿아 있다. 병원 안에서만 암을 이야기하지 않고, 생활의 자리에서 암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 스무 살의 몸에도 이 정책은 분명히 닿아 있다.
조기 발견은 ‘확인’이고, 예방은 ‘선택’이다
사람들은 종종 검진과 예방을 같은 말처럼 쓴다. 나 역시 그랬다. ‘나중에 검진 받으면 되지’라는 생각은 어딘가 안심을 준다. 하지만 조기 발견과 예방은 닮아 보이지만 전혀 다른 행위다. 조기 발견은 이미 몸 안에서 시작된 변화를 빠르게 찾아내는 일이다. 반면 예방은 그 변화가 시작되지 않도록 일상을 설계하는 선택의 연속이다. 나는 아직 국가 암 검진 대상 연령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예방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술자리가 잦은 새내기 시절, 밤샘 과제 뒤에 먹는 인스턴트 음식, 운동을 미루는 습관. 이런 것들이 쌓여 몸의 미래를 만든다. 예방은 눈에 보이지 않아 쉽게 무시되지만, 사실은 가장 관능적인 행위다. 내 몸의 곡선과 리듬을 느끼고, 무리하지 않도록 조율하는 감각. 검진이 차가운 의료기기의 언어라면, 예방은 내 몸과의 대화다. 이 둘을 혼동하면 우리는 ‘아직 괜찮다’는 말 뒤에 숨게 된다.
예방과 검진을 함께 설계하는 스무 살의 전략
밤이 되면 하루를 정리하듯 샤워 후 거울 앞에 선다. 물기를 머금은 피부, 하루 종일 움직인 다리, 그리고 숨을 고르며 서 있는 나 자신. 이 순간 나는 깨닫는다. 예방과 검진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함께 설계해야 하는 구조라는 것을. 예방은 지금의 생활을 다듬는 일이고, 검진은 그 선택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장치다. 국가가 마련한 암 관리 정책과 검진 제도는 개인의 예방 노력을 대신해 주지 않는다. 대신 그 노력을 점검할 기회를 제공한다. 스무 살의 나는 아직 모든 것을 완벽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 몸을 긍정하고, 관리하며, 필요할 때는 검진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만큼은 선택할 수 있다. 3월 21일 암 예방의 날은 나에게 거창한 결심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오늘의 선택을 조금 더 의식하라고 말한다. 예방은 삶의 감각이고, 검진은 그 감각을 확인하는 기준점이다. 이 둘을 함께 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내 몸의 미래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