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막 올라오는 캠퍼스에서 나는 스무 살의 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얇은 니트가 어깨선을 따라 흐르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다리 근육이 탄탄하게 반응한다. 거울 속 내 몸은 아직 미완성 같지만, 그래서 더 솔직하다. 새내기 특유의 어색함과 과감함이 동시에 깃든 몸. 강의실로 가는 길, 달력 앱 알림이 잠깐 뜬다. 3월 15일, 3ㆍ15의거 기념일. 순간 숨이 멎듯 멈춘다. 투표권도, 발언도 너무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처럼 살아왔는데, 그 자연스러움이 사실은 누군가의 상처 위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스친다.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교과서에선 늘 단정했지만, 현실 속에서는 땀과 체온, 분노와 두려움이 뒤섞인 상태였을 것이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내 몸의 감각을 느낀다. 숨, 맥박, 긴 다리의 균형. 이 평온한 일상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질문은 생각보다 무겁고도 개인적이다. 그래서 오늘은 기록을 읽고, 나의 현재를 덧대어 써보려 한다. 그날, 거리에서 시작된 민주주의를.

1. 1960년 3월 15일, 숫자와 사실로 남은 분노
1960년 3월 15일은 제4대 대통령·부통령 선거일이었다. 선거는 형식만 남긴 채 이미 결과가 정해진 과정에 가까웠다. 공개 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경찰과 공권력의 조직적 개입. 기록에 남은 단어들은 차갑다. ‘부정’, ‘탄압’, ‘사상자’. 그러나 그날 거리로 나온 것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시민과 학생들은 선거의 정당성을 요구하며 항거했고, 시위는 빠르게 확산되었다. 저녁 무렵부터 긴장이 고조되었고, 공권력은 무력으로 대응했다. 최루탄이 터지고 곤봉이 휘둘러졌으며, 총성이 울렸다.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이후 신문 지면에 짧게 실렸지만, 며칠 뒤 바다에서 발견된 학생의 시신은 사건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그 몸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부정선거가 어떤 대가를 요구했는지를 드러내는 증거였다. 나는 이 기록을 읽으며 의도적으로 감정을 눌러본다. 숫자와 사실을 따라가려 애쓴다. 그래야만 오히려 더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교정의 벤치에 앉아 있는 내 몸은 안전하다. 하지만 그 안전은 공짜가 아니었다. 그날 거리로 나선 사람들의 몸은 방패도, 보호막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나왔다. 민주주의는 선언이 아니라 행동이었고, 그 행동은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 그리고 상처 입은 몸으로 남았다.
2. 지역의 항거에서 혁명의 불씨로
3ㆍ15의거는 지역적 사건으로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촉매였다. 마산에서 시작된 항거는 전국으로 번졌고, 한 달여 뒤 4ㆍ19혁명으로 이어졌다. 중요한 것은 연결의 방식이었다. 부정선거에 대한 분노는 단지 결과에 대한 불복이 아니라, 정치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되었다. 학생과 시민은 더 이상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주체임을 자각했다. 그 자각은 제도를 흔들었고, 권력의 기반을 무너뜨렸다. 나는 이 대목에서 내 몸을 다시 의식한다. 스무 살의 몸은 아직 완전히 사회화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더 솔직하다. 강의실에서 손을 들 때의 망설임, SNS에 의견을 올릴 때의 두근거림. 작은 행동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선택은 ‘말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3ㆍ15의거가 남긴 것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시민 행동의 가능성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연대했을 때 구조가 바뀔 수 있다는 경험. 민주주의의 구조는 이 사건을 통해 처음으로 크게 흔들렸고, 그 흔들림은 붕괴가 아니라 재정렬이었다. 시민을 중심에 두는 방향으로의 이동. 나는 몸을 긍정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날씬함이나 강함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감각. 그 감각은 민주주의를 대하는 태도와 닮아 있다. 스스로를 주체로 인식할 때, 변화는 시작된다.
3. 오늘의 기념일, 현재형 민주주의로 이어지다
그래서 3월 15일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이 날은 2010년 3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의해 공식적인 ‘3ㆍ15 의거 기념일’로 제정되었다. 제정 이유는 명확하다. 1960년 3월 15일 마산 시민과 학생들이 부정선거에 항거한 3ㆍ15 의거의 역사적 의미와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함이다. 기념일은 기억을 현재로 끌어오는 장치다. 나는 오늘도 스마트폰으로 사전투표 일정을 확인하고, 사회 이슈를 공유하며, 캠퍼스에서 토론한다. 이런 일상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가끔 그 근원을 잊는다. 하지만 몸은 기억한다. 자유롭게 걷고, 말하고, 선택하는 이 감각을. 민주주의는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계속 사용해야 하는 생활의 기술이다. 사용하지 않으면 굳어버린다. 3월 15일을 기념하는 일은 거창한 의식이 아니다. 오늘의 선택을 조금 더 의식적으로 하는 것, 불편하더라도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스무 살의 나는 아직 흔들린다. 그러나 그 흔들림 속에서 배우고, 말하고, 움직인다. 그날 거리에서 시작된 민주주의는 지금도 이렇게, 우리의 몸과 일상 속에서 호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