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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 흙의 날, 지구의 피부를 돌아보는 날

by JiwonDay 2025. 12. 17.

나는 가끔 맨발로 흙 위에 서 본다. 도시의 바닥은 늘 차갑고 매끈한데, 흙은 다르다. 발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온기와 미세한 요철, 숨 쉬듯 미묘하게 변하는 감촉이 몸을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깨운다. 3월 11일, 흙의 날은 그런 감각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날이다. 우리는 흔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환경을 말하고, 바다를 떠올리며 위기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정작 매일 밟고 서 있는 흙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잊는다. 흙은 지구의 피부다. 피부가 상처 입으면 몸 전체가 아프듯, 토양이 망가지면 생태와 인간의 삶도 함께 흔들린다. 이 날은 거창한 선언보다, 나의 몸과 흙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솔직하게 느껴보는 시간에 가깝다. 흙 위에 앉아 치마 자락이 조금 더러워져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내가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다시 받아들인다. 흙은 농업의 근간이자 생명의 저장고다. 하지만 도시화와 산업화는 이 피부를 점점 거칠게 만들었다. 그래서 흙의 날은 만들어졌다.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오래 외면해 온 감각을 회복하자는 제안처럼 느껴진다.

세 장의 프레임 속 모델이 자연·도시·초록의 공간에서 서로 다른 의상과 포즈로 흙의 의미와 감정을 표현한다.

 

 

1. 3월 11일이 가진 의미, 흙의 날의 탄생

3월 11일이라는 날짜는 숫자 놀이처럼 보이지만, 꽤 정교한 상징을 품고 있다. 3·11을 풀어보면 3·1·1, 그리고 다시 3·1, 삼일 토양층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딛고 사는 땅이 사실은 몇 천 년에 걸쳐 아주 얇게 쌓인 층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의미다. 이 얇은 층이 무너지면 농업도, 생태도 함께 흔들린다. 그래서 흙의 날은 농업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날이면서 동시에 시간의 깊이를 상상하게 하는 날이다. 법적으로는 2015년 3월 27일,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이유는 명확하다. 흙은 농업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인데도,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묘한 감정을 느낀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쉽게 잊힌다는 사실. 피부처럼 늘 드러나 있지만, 아플 때가 되어서야 존재를 자각한다는 점에서 흙과 인간의 몸은 닮아 있다. 20대의 몸으로 살아가며 나는 내 신체를 숨기기보다 드러내는 쪽을 택해왔다. 흙도 마찬가지다. 덮어두고 감추기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비로소 가치를 이해하게 된다. 흙의 날은 그런 태도를 사회적으로 선언한 날이다.

2. 기후와 도시화가 잠식하는 토양의 현실

요즘 흙은 조용히 아프다. 소리 없이 깎이고, 씻겨 나가고, 숨이 막힌다. 기후변화로 집중호우와 가뭄이 반복되면서 토양은 예전보다 훨씬 쉽게 유실된다. 비가 쏟아질 때 흙은 물을 붙잡지 못하고 함께 떠내려간다. 유기물은 줄고, 미생물의 균형은 깨진다. 여기에 도시화가 겹치면 상황은 더 빨라진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땅을 덮으면서 흙은 호흡할 틈을 잃는다. 물이 스며들지 못해 도시는 홍수에 취약해지고, 흙은 점점 생명력을 잃는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몸을 떠올린다. 숨 쉴 공간이 없을 때의 답답함, 꽉 조이는 옷 속에서 느껴지는 불편함. 흙도 비슷하지 않을까. 농약과 화학비료의 남용은 토양을 빠르게 피로하게 만든다. 단기적인 생산성은 높아질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농산물의 안전과 국민의 건강을 위협한다. 흙이 오염되면 결국 그 위에서 자란 것이 우리 몸으로 들어온다. 피부에 닿는 옷의 질감이 하루의 기분을 좌우하듯, 토양의 상태는 우리의 삶을 조용히 결정한다. 이 보이지 않는 위기를 감각적으로 느끼는 순간, 흙은 더 이상 추상적인 환경 문제가 아니라 아주 개인적인 문제가 된다.

3. 흙을 지키는 일은 결국 우리의 내일을 지키는 일

흙은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인간의 몸이 상처를 회복하듯, 토양도 천천히 스스로를 치유한다. 그래서 지금의 선택이 중요하다. 콘크리트를 덜 깔고 빗물이 스며들 틈을 남기는 것, 유기물 기반의 토양 회복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 도시 텃밭처럼 작은 숨구멍을 만드는 것. 이런 행동들은 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느린 변화가 가진 힘을 믿는다. 몸을 아끼는 습관이 시간이 지나서야 차이를 만들듯, 흙을 아끼는 선택도 미래를 바꾼다. 나의 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일, 곡선을 숨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흙을 대하는 자세와 닮아 있다. 흙은 완벽하지 않고, 늘 깨끗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 안에서 생명은 자란다. 3월 11일 흙의 날은 거창한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오늘 하루만큼은 발밑을 한 번 더 바라보고, 지구의 피부에 손을 얹어보자는 제안이다. 흙을 살리는 일은 결국 나를 살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이해하는 날. 나는 그 감각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