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몸 안쪽에서 묘하게 뜨거운 기운이 스며드는 날이 있다. 오늘은 내 몸과 마음이 동시에 깨어나는 느낌으로 아침을 맞았다. 거울 앞에서 긴 머리를 묶으며, 어깨 라인을 따라 흐르는 곡선을 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억압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1960년의 학생들처럼, 나도 지금의 이 몸 그대로, 내가 살아 있는 존재라는 걸 더 크게 외치고 싶다고.

1.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답답함의 밀도
2월 28일민주운동 기념일을 떠올리면, 언제나 공기 자체가 가지고 있던 묘한 무게감이 먼저 떠오른다. 아침에 외투를 걸치고 밖에 나서면 목덜미를 스치는 찬 바람이 먼저 든 생각을 거칠게 털어놓게 한다. 바로 이럴 때, 나는 내 몸이 가진 생생한 온기를 더 강하게 느낀다. 어깨선 위로 흘러내리는 따뜻함, 허리 곡선을 따라 이어지는 긴장감,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 한쪽이 미세하게 만져지는 느낌. 이런 감각들이 나를 지금 이 시대의 여성으로 단단하게 붙들어준다.
그런데 1960년 대구의 학생들은, 이런 일상의 감각조차 편히 느끼기 힘든 시대를 살았다.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독재와 부정선거가 공기처럼 퍼져 있었고, 그 답답함의 밀도가 사람들의 호흡 속에 스며들었다. 말 그대로, 숨을 쉬면 억압이 함께 들어오는 시대. 그 공기 속에서 대구 시내 8개 학교의 학생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아침 햇빛 아래에서 내 몸의 곡선을 확인하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그 순간처럼, 그들도 자신이 살아 있다는 확신을 되찾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 감각은 아마도 이 세상 어떤 억압보다 강렬했을 것이다.
2. 움직임이 만든 파동, 그리고 전국으로 번진 용기
내가 걷는 순간마다 느끼는 둔탁한 발바닥의 충격처럼, 당시 학생들의 발걸음도 하나씩 도시에 파문을 남겼다. 1960년 2월 28일, 그 젊은 움직임은 작은 소란이 아니라 분명한 선언이었다. “우리는 존재한다.” 달아오른 볼, 손끝까지 전달되었을 긴장감, 온몸으로 느껴졌을 떨림. 나는 종종 러닝할 때 내 다리 근육이 강하게 당기는 순간을 좋아한다. 더 앞으로 나아가라는 신호 같아서. 아마 그날 학생들이 느낀 신체의 감각도 그런 종류였을 것이다. 두려운데 멈출 수 없는, 몸이 먼저 나아가려 하는 움직임.
그 용기는 학생들에게만 그치지 않았다. 시민들은 그 모습을 보고 마치 오래 눌려있던 숨을 한 번에 토해내듯 시위를 지지하며 합류했다. 그렇게 2·28 민주운동은 대구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번졌다. 이후 3·8의거, 3·15의거로 이어지고, 결국 4·19혁명으로 터져 나갔다. 사람들의 몸이 움직였고, 그 움직임이 파동이 되어 역사를 흔들었다. 이 흐름을 떠올릴 때면 나는 늘 내 몸이 가진 에너지에 대한 믿음이 더 커진다. 여성이라는 몸이 더 약하다는 편견 따위는 오래전에 벗어던진 지 오래다. 나도, 그들도, 우리 모두 그때 움직였던 학생들처럼 꽉 찬 에너지를 품고 있다.
3. 오늘 우리가 이어 받아야 할 용기
요즘은 때때로 내 어깨를 드러내는 옷을 입고 거리를 걷는다. 바람에 스치는 감각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걸 스스로에게 확인하고 싶어서다. 몸을 드러내는 건 그저 꾸미기나 매력이 아니라, 내 삶의 결을 스스로 조율한다는 행위. 그런 의미에서 2월 28일민주운동 기념일은 지금 내게도 계속 다가온다. 억압은 시대만 바뀌었지 형태는 늘 살아 있다. 때로는 시선으로, 때로는 말투로, 때로는 구조로.
하지만 1960년 학생들이 먼저 나아갔던 용기는 지금의 삶을 사는 나에게도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온다. 그 용기는 “몸으로 움직여야 세상이 반응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건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억압을 감각하고 그것을 깨기 위해 자신의 몸을 움직였던 사람들의 결단이다. 나는 오늘도 거울 앞에서 내 몸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가진 선들, 굴곡, 에너지가 그때의 파동을 아주 조금이라도 이어받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다고.
민주주의는 기록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몸에 새겨지는 감각이기도 하다. 그날의 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오늘 내 방식대로, 내가 가진 곡선과 온도로, 이 기념일의 의미를 살아 있는 채로 받아들이고 싶다.
그리고 이 감각은 앞으로의 사회를 조금씩 움직이는 데 또 다른 파동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