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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5일 무역의 날, - 항만 야경, 무역, 컨테이너

by JiwonDay 2025. 11. 24.

거대한 컨테이너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항만의 밤에 서 있으면, 몸 안쪽 깊은 곳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천천히 올라온다. 겨울 바다는 차갑고 공기는 매서운데, 그 속에서 이상하리만큼 뜨거운 숨결이 가슴 아래에서부터 밀려온다. 멀리서 낮게 울리는 엔진 소리와 크레인의 금속성 마찰음이 섞여 하나의 리듬을 만들고, 그 리듬에 내 심박이 자연스럽게 맞춰지는 순간이 있다. 마치 출항을 기다리는 선적선들이 내 호흡까지 함께 싣고 떠날 것처럼 느껴지는 밤이다. 오늘은 12월 5일, 무역의 날. 숫자와 통계, 수출입 실적 같은 단어로만 기억되던 이 날짜가, 오늘만큼은 유난히 개인적인 감각으로 다가왔다. 나는 지금 이 항만의 풍경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세계라는 거대한 흐름에 겹쳐 보고 있었다. 수천 개의 컨테이너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동, 선택과 책임이 담겨 있을 텐데, 그 거대한 구조 앞에서 느끼는 감정은 작아짐이 아니라 오히려 선명해짐에 가까웠다. 내가 숨 쉬고 서 있는 이 자리가 세계의 한 지점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세계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내 몸의 온도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나를 흔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역의 날을 기념하는 기록을, 숫자나 제도 대신 나의 감각과 시선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부드러운 항만 야경과 사무실을 배경으로, 같은 여성이 세 가지 분위기와 다른 의상으로 등장하는 4:3 비율의 세로 분할 포스터형 전신 이미지.

1. 항만의 불빛 아래에서 나를 마주한 순간

겨울 밤의 항만 공기는 피부를 스치듯 차가웠다. 그런데도 나는 코트의 단추를 끝까지 잠그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바람이 스며들 때마다 몸의 윤곽이 또렷해지고, 내가 여기에 살아서 서 있다는 감각이 오히려 더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컨테이너들은 거대한 벽처럼 솟아 있었고, 붉고 푸른 신호등 같은 불빛들이 규칙적으로 반짝였다. 그 인공적인 빛의 결이 내 피부 온도와 이상하리만큼 공명하는 순간이 있었다. 이곳에서 출발한 수많은 물건들이 바다를 건너 누군가의 일상이 된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가슴 안쪽이 묘하게 뜨거워졌다. 그건 자부심이라기보다 연결감에 가까웠다. 내가 느끼는 작은 떨림조차도 이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가 된 것 같은 기분. 어깨를 스치는 바람, 허리를 따라 내려오는 한 줄기의 한기, 그리고 그 사이에서 또렷해지는 존재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건 단순한 물류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사람들의 시간과 선택, 실패와 성공이 이 빛과 소리 안에 겹겹이 쌓여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생생하게 다가왔다. 오늘만큼은 몸과 마음이 동시에 세계의 리듬을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 화려함보다는 생생함으로, 설명보다는 감각으로 다가오는 풍경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다시 인식하고 있었다.

2. 무역기업에서 마주친 ‘보이지 않는 무게들’

낮에 다녀온 무역기업의 풍경은 밤이 되어도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서류 한 장이 갖는 무게, 검수 과정에서의 작은 오차가 얼마나 먼 곳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사람들의 어깨가 얼마나 단단해 보였는지. 그 공간을 떠올리기만 해도 내 자세가 자연스럽게 곧아졌다. 특히 원산지 증명서 앞에 잠시 멈춰 섰던 순간의 감각은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었다.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생산지와 수출지, 날짜와 서명이 적힌 그 문서를 바라보는 동안 미묘한 긴장감이 몸을 타고 올라왔다. ‘이게 세계로 나가는 여권 같은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심장이 잠시 빨라졌다. 여성으로서, 그리고 스물세 살의 나로서 이 거대한 흐름 속에 발을 딛고 있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내가 가진 몸의 라인과 움직임이, 이 세계의 속도 한가운데에 아주 가볍게 걸쳐져 있는 듯한 감각.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이 존재가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은 조금은 관능적일 만큼 강렬했다. 보이지 않는 책임과 무게가 공기처럼 공간을 채우고 있었고, 그 공기가 내 호흡과 섞이면서 묘한 긴장과 설렘을 동시에 남겼다.

3. 컨테이너 불빛을 뒤로하며 다짐한 작은 문장

돌아 나오는 길에 항만의 야경을 한 번 더 바라봤다. 붉고 푸른 불빛이 바닥에 반사되어 내 다리 라인을 따라 비스듬히 스쳐 지나갔고, 그 순간 나 자신이 조금 더 단단하고, 동시에 더 섬세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나도 세계로 이어지는 사람이고 싶다’는 문장이 말이 되지 않은 채 마음속에 내려앉았다. 내가 하는 작은 일들, 내가 쓰는 짧은 문장들, 내가 걷는 이 느린 걸음들이 언젠가는 누군가의 세계를 건너는 과정의 일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묘하게 나를 자극했다. 무역의 날이라고 해서 그동안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감정이 갑작스럽게 부풀었다가 가라앉고, 다시 퍼지기를 반복하면서 이상하리만큼 나 자신을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내 몸의 굴곡과 움직임, 나라는 존재가 지나온 궤적 하나하나가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은 황홀하면서도 현실적이었다. 오늘 밤 항만의 공기와 내 숨결이 섞여 만들어낸 이 감정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아마도 그것이 12월 5일 무역의 날이 내게 남긴 가장 진한 선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