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이 되면 저는 잠시 걸음을 늦추고, 부산을 향해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이 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1950년 6·25전쟁이라는 참혹한 역사 속에서,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던 먼 나라의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이 땅으로 왔습니다. 그들은 국적도, 언어도, 문화도 달랐지만 ‘침략으로부터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하나의 신념 아래 함께 싸웠습니다. 그 결과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게 되었고, 우리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너무 쉽게 잊고 살아가지는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UN 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은 바로 이런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11월 11일 11시, 전 세계가 동시에 부산을 향해 1분간 묵념하는 ‘Turn Toward Busan’은 전쟁의 비극을 넘어 연대와 평화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올해도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국제추모식이 열립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이 날이 왜 여전히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이 추모식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차분히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 부산을 향하여 – ‘Turn Toward Busan’의 의미
11월 11일 11시, 전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부산을 향해 동시에 고개를 숙입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전쟁의 기억을 국제사회가 함께 공유하는 매우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Turn Toward Busan’은 2007년 캐나다 참전용사 빈센트 커트니 씨의 제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자신과 전우들이 잠들어 있는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참전국들이 함께 묵념하자는 뜻을 전했습니다. 이 작은 제안은 빠르게 공감을 얻었고, 결국 대한민국은 2020년 3월, 11월 11일을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이라는 법정기념일로 제정하게 되었습니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은 세계에서 유일한 UN군 묘지로, 14개국 2,333분의 참전용사가 안장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곳이 단순한 묘지가 아니라, 국제사회가 함께 지켜낸 평화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묵념은 단 1분이지만, 그 시간 속에는 수많은 생애와 희생, 그리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의 근원이 담겨 있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이 짧은 순간은 과거를 애도하는 동시에, 다시는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Turn Toward Busan’이 과거를 향한 시선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약속이라고 느낍니다.
🌼제19회 국제추모식 – 올해 부산에서 열리는 행사 구성
올해 열리는 제19회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식은 11월 11일 오전 10시 50분부터 부산 유엔기념공원 상징구역에서 거행됩니다. 국가보훈부 주관으로 열리는 이 행사는 국내외 참전용사와 유가족, 주한 외교사절, 학생과 시민 등 약 800여 명이 함께합니다. 행사는 ‘Turn Toward Busan’을 주제로, 참전국 국기 게양과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여는 영상, 11시 정각 1분간 묵념, 헌화, 추모공연, 추모사, 헌정공연 순으로 진행됩니다. 특히 올해는 7개국에서 UN 참전용사 본인 13분이 직접 참석해 더욱 의미를 더합니다. 국내 청소년들이 직접 제작한 22개의 양귀비 꽃은 미래세대가 기억의 주체로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될 것입니다. 또한 참전용사 후손들과 소년소녀합창단의 공연은 기억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감동적으로 전달합니다. 이 모든 순서는 KTV에서 생중계될 예정이며, 자세한 내용은 국가보훈부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구성이 단순한 의례를 넘어, 국제적 연대와 세대 간 기억의 연결을 동시에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추모식은 과거를 되돌아보는 자리이면서도, 현재를 사는 우리가 어떤 책임을 가져야 하는지 조용히 묻는 시간입니다.
🌏 기억과 감사
저는 이 추모식이 단순한 역사 행사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삶과 연결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6·25전쟁 당시 참전용사들 중 많은 이들은 지금의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나라를 넘어, 이름조차 낯선 대한민국을 위해 싸웠고, 그 선택은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었습니다. 행사에서 울려 퍼지는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합창곡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감사의 언어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기억이란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는 행위가 아니라, 현재의 삶을 책임 있게 살아가겠다는 태도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이들의 희생을 기억할 때, 자유와 평화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가치가 됩니다. 11월 11일 11시, 부산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그 1분은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수많은 희생을 되새기는 시간입니다. 저는 이 짧은 시간이 결코 짧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이어질 때, 그 희생은 역사 속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밝히는 힘이 됩니다. 올해도 저는 묵념의 순간을 통해, 오늘의 평화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다는 다짐을 다시 새기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