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한국과 일본) 왜 일본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할 규칙이 많고, 한국에서는 말로 싸우는 규칙이 많은가

by JiwonDay 2026. 1. 22.
반응형

일본에서 일하거나 생활해 본 사람들은 종종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데 다들 알고 있는 규칙이 너무 많다”고 느낀다. 회의에서 언제 말을 꺼내야 하는지, 어디까지 질문이 허용되는지, 규정집에는 없지만 어기면 분위기가 달라지는 지점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규칙은 다 적혀 있는데, 왜 그걸 두고 이렇게까지 말로 다퉈야 하느냐”는 피로가 자주 언급된다. 문서는 충분한데, 해석과 책임을 둘러싼 언어적 충돌이 줄지 않는다.

이 차이는 흔히 문화나 성격의 문제로 설명되지만, 그런 설명은 원인을 너무 앞에서 끊어버린다. 일본과 한국은 모두 규칙을 법과 제도로 관리하는 사회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두 사회는 규칙을 어떤 절차로 만들고, 어떤 방식으로 바꾸며, 그 과정에서 말과 침묵 중 무엇에 더 많은 책임을 부여하도록 설계되어 있는가. 이 글은 규칙의 내용이 아니라, 규칙이 작동하도록 설계된 구조의 차이를 비교한다.

같은 인물이 왼쪽에서는 말을 아끼고 상황을 읽는 자세로, 오른쪽에서는 손짓하며 설명하는 모습으로 대비된다. 일본의 암묵 규칙과 한국의 언어화된 규칙 구조가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규칙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바뀌는가

일본과 한국 모두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에서는 취업규칙을 문서로 만들고 행정기관에 제출하도록 법으로 정해두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두 나라 모두 규칙을 제도 안에 두고 관리하는 사회다. 그러나 규칙이 만들어지고 변경되는 순간의 절차를 들여다보면 차이는 분명해진다. 일본에서는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 근로자 과반수 대표의 의견을 듣는 것이 핵심 절차로 설계되어 있다. 의견은 공식적으로 수렴되지만, 그 의견이 반드시 변경을 막는 장치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규칙은 최종적으로 조직이 결정하고, 구성원은 그 결정에 적응하는 구조가 기본값이다.

한국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취업규칙 변경, 특히 근로자에게 불리한 변경의 경우 집단적 동의가 법적 요건이 된다. 이로 인해 규칙 변경 과정은 단순한 행정 절차를 넘어 설명과 설득, 합의의 과정으로 확장된다. 왜 바꾸는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이 있는지, 불이익은 어떻게 정당화되는지에 대한 언어적 교환이 필수적이다. 이 구조에서 규칙은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지시라기보다 말로 성립되는 합의의 결과물에 가깝다.

이 설계 차이는 규칙을 둘러싼 갈등의 성격을 바꾼다. 일본에서는 규칙을 두고 공개적으로 말로 다툴 유인이 상대적으로 적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규칙이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논쟁의 대상이 된다. 규칙을 말로 다투는 사회와, 규칙을 말 밖에 두는 사회의 분기점은 바로 이 절차 설계에서 형성된다.

문서에 적히지 않은 영역은 무엇으로 채워지는가

규칙이 문서로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문서가 모든 상황을 설명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일본의 취업규칙은 핵심 사항을 담고 있지만, 실제 운용의 상당 부분은 관행과 선례에 맡겨져 있다. 문서에 명시되지 않은 영역이 넓고, 그 공간은 선배와 후배의 관계, 과거 사례, 조직 내부의 암묵적 합의로 채워진다. 이때 중요한 점은 규칙을 설명해야 할 책임이 조직에 강하게 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성원은 “말해주지 않아도 알아야 하는 것”을 스스로 습득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조직에 들어온다.

이 구조에서는 질문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다. 규칙을 묻는 행위는 규칙을 모른다는 신호가 되고, 이는 곧 조직 적응 실패로 해석될 위험을 동반한다. 그래서 규칙은 설명되기보다 관찰되고, 수정되기보다 누적된다. 반면 한국에서는 문서에 적히지 않은 영역이 곧 분쟁 가능성으로 인식된다. 규칙이 불명확하면 책임이 떠돌게 되고, 이는 조직 운영의 리스크가 된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규칙이 점점 더 상세해진다. 내규와 지침, 매뉴얼이 계속 추가되고, 문서는 참고 자료를 넘어 판단과 책임의 기준이 된다. 설명하지 않은 규칙은 관리 실패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직은 규칙을 말과 글로 반복해서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규칙은 고정된 질서라기보다, 끊임없이 해석되고 재정의되는 텍스트가 된다.

갈등은 어디에서 드러나고, 어떻게 남는가

규칙 설계의 차이는 갈등이 발생했을 때 더욱 선명해진다. 일본에서는 규칙 위반이 즉각적인 언어적 충돌로 이어지기보다 관계 조정이나 배치 변경, 비공식적인 거리 두기로 흡수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공식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지 않고, 개인의 체감 속에 남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직이 조용하지만, 긴장은 내부에 누적된다.

한국에서는 갈등이 빠르게 언어화된다. 규칙 위반은 곧 문제 제기와 항의로 이어지고, 그 과정은 회의록, 메신저 기록, 민원, 신고 등 다양한 형태로 남는다. 갈등은 자주 표면화되지만 제도 안으로 들어온다. 이는 피로를 유발하지만, 동시에 문제가 개인의 침묵 속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다. 누적 대신 기록을 선택한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이 차이는 외부인에게 서로 다른 장벽으로 작동한다. 일본에서는 암묵 규칙을 습득하지 못한 외부인이 설명 없이 배제되기 쉽다. 한국에서는 규칙은 열려 있지만, 해석과 주장 경쟁 속에서 지속적인 소모를 요구받는다. 한쪽은 침묵의 장벽을, 다른 한쪽은 언어의 장벽을 가진 사회다.

당신이 불편함을 느낀 지점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암묵 규칙과 한국의 말로 싸우는 규칙은 어느 한쪽의 우월함이나 미성숙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규칙을 어떻게 만들고, 바꾸고, 책임을 귀속시키도록 설계했는가의 결과다. 일본에서는 규칙이 말 밖에 놓이도록 설계되었고, 한국에서는 규칙이 말 안으로 들어오도록 설계되었다. 만약 일본에서 “왜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가”라는 답답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개인의 눈치 부족이 아니라 그런 적응을 요구하는 구조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국에서 “왜 이렇게까지 말을 해야 하나”라는 피로를 느꼈다면, 그것 역시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말로 합의를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제도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규칙은 사람의 태도를 바꾸지만, 그 규칙을 만든 것은 개인이 아니다. 독자가 자신의 경험을 다시 바라보는 위치를 옮길 수 있다면, 이 비교의 목적은 이미 달성된 셈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