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비정규직, 다른 출발선
일본과 한국은 모두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사회다. 그러나 ‘비정규직이 많다’는 동일한 결과만으로 두 나라의 제도를 같은 방향으로 이해하면 곧바로 오해가 시작된다. 이 글의 목적은 비정규직을 둘러싼 도덕적 평가나 정책 처방이 아니라, 각 나라에서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가 어떤 전제 위에 설계되었고, 그 설계가 실제로 어떤 생활 경로를 만들어내는지를 구조적으로 설명하는 데 있다. 일본과 한국은 모두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지만, 그 구분이 작동하는 방식, 그리고 그 구분을 통해 국가가 ‘어떤 삶을 상정하는지’는 상당히 다르다. 이 차이는 통계 수치보다 계약 구조, 전환 규칙, 사회보험 연결 방식 같은 제도 내부의 장치에서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고용 형태를 바라보는 제도의 시선
일본에서 비정규직은 하나의 단일한 법적 개념이라기보다는 ‘고용형태(雇用形態)’의 집합으로 다뤄진다. 파트, 아르바이트, 계약사원, 파견사원처럼 서로 다른 이름의 고용 형태들이 병렬적으로 존재하며, 이들은 통계와 행정에서 비정규 고용으로 묶이지만 각각의 법적 처리 방식은 다르다. 특히 파견노동은 「労働者派遣法」이라는 별도의 법체계로 관리되며, 이 법은 노동자의 보호와 동시에 노동 수급의 조정을 목적으로 한다. 다시 말해 일본의 제도는 비정규 고용을 노동시장의 예외적 실패로만 보지 않고, 일정 부분은 시장 조정 장치로 전제한 상태에서 관리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계약의 반복 갱신이라는 관행에서도 드러난다. 일본의 유기계약은 반복 갱신이 일반적이며, ‘계속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제도 해석의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반면 한국에서 비정규직은 법률적으로 보다 명확하게 정의되고 분류된다. 기간제, 단시간, 파견이라는 구분이 각각 개별 법률의 적용 대상이 되며, 비정규직이라는 범주는 제도적으로 강하게 법률화되어 있다. 특히 기간제 근로계약에는 총 2년이라는 명확한 사용 상한이 설정되어 있고, 반복 갱신 역시 이 기간 계산에 포함된다. 이 구조에서 비정규직은 계약 관행의 문제라기보다는 법정 기간의 문제로 다뤄진다. 일본이 ‘어떤 방식으로 계속 고용되는가’를 묻는 구조라면, 한국은 ‘얼마나 오래 사용할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제도를 설계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차이는 이후의 전환 규칙과 생활 경로를 결정짓는 출발점이 된다.
전환 규칙과 임금·보험의 연결 방식
일본의 비정규직 제도에서 핵심적인 장치는 이른바 무기 전환 구조다. 동일 사용자와의 유기계약이 통산 5년을 초과할 경우, 근로자는 계약 기간의 제한이 없는 무기계약으로 전환을 신청할 수 있다. 이 전환은 자동으로 발생하지 않으며, 근로자의 신청이라는 행위를 전제로 한다. 제도 설계상 중요한 점은 비정규 상태가 일정 기간 지속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실제 현장에서는 5년 도달 이전에 계약을 종료하거나 갱신을 제한하는 운영도 동시에 존재한다. 일본의 제도는 이처럼 장기 지속과 조기 종료라는 두 갈래의 가능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으며, 어느 쪽으로 작동하는지는 기업의 운영 방식과 산업별 관행에 따라 달라진다. 이러한 구조는 임금과 처우에서도 반영된다. 일본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통해 격차의 존재 자체보다 격차의 합리성을 설명하도록 요구하며, 이는 임금·수당·복리후생이 왜 다른지를 제도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구조로 이어진다. 이 흐름은 후생노동성의 정책 문서와 행정 지침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한국의 전환 규칙은 보다 단선적이다. 기간제 근로자가 2년을 초과해 사용될 경우 원칙적으로 무기계약 근로자로 간주되며, 이는 근로자의 신청이 아니라 법적 효과로 발생한다. 제도 설계만 보면 비정규직의 장기 고착을 억제하는 장치로 보인다. 그러나 이 구조는 동시에 2년 도달 시점에서 계약 종료, 재채용, 외주화 같은 운영상의 분기를 낳는다. 임금과 처우 문제 역시 사후적 시정 구조에 가깝다. 한국은 기간제·단시간 근로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시정하는 절차를 제도화했다. 이 절차의 중심에는 노동위원회가 있으며, 격차의 합리성 여부는 분쟁을 통해 판단된다. 즉 일본이 설명 의무를 통해 사전적 정당화를 요구한다면, 한국은 시정 절차를 통해 사후적으로 교정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생활 로 이어지는 제도, 그리고 남는 질문
이러한 차이는 비정규직의 ‘생활 가능성’을 둘러싼 전제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일본의 제도는 비정규직 상태가 일정 기간 지속되는 것을 제도적으로 배제하지 않는다. 무기 전환 신청권, 단시간 근로자에 대한 사회보험 적용 확대 등은 비정규직을 제도권 안에 점진적으로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이로 인해 비정규직은 항상 과도기적 상태라기보다는, 조건에 따라 장기간 지속될 수 있는 고용 형태로 상정된다. 물론 이는 안정성을 보장한다는 의미는 아니며, 오히려 불안정성이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 역시 함께 내포한다. 일본의 비정규직 제도는 ‘지속 가능성’과 ‘불확실성’을 동시에 제도 안에 담아두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제도는 반대로 비정규직을 일정 시점 이후에는 종결되거나 전환되어야 할 상태로 설정한다. 2년 상한 구조는 비정규직의 장기화를 제도적으로 문제 삼는 설계이며, 사회보험과 임금 체계 역시 정규직을 기준으로 조직되어 있다. 그 결과 비정규직은 제도적으로 ‘머무는 자리’라기보다는 ‘지나가는 자리’로 상정된다. 이 구조는 비정규직을 둘러싼 불안정성을 단기간에 압축하는 효과를 낳기도 하고, 동시에 계약 만료 시점에 위험을 집중시키는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결국 일본과 한국의 차이는 어느 쪽이 더 보호적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비정규직이라는 상태를 사회가 어떻게 위치시키는가의 문제다. 한쪽은 관리 가능한 상시 상태로, 다른 한쪽은 정리되어야 할 임시 상태로 설계한다. 이 글이 남기는 질문은 단순하다. 비정규직이 일상이 되는 사회에서, 제도는 그 ‘일상’을 어디까지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설계 속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