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행정 민원을 제기했을 때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는, 개인의 성향이나 문화적 기질보다 제도의 설계가 인간의 행동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일본에서는 절차가 길고 답변이 더디다는 인상이 남는 반면, 한국에서는 절차가 매끄럽지 않더라도 문제가 비교적 빠르게 정리되었다는 체감이 남는 경우가 많다. 이 차이는 단순히 ‘느리다’거나 ‘급하다’는 성격 대비가 아니라, 행정이 무엇을 신뢰의 근거로 삼고, 실패와 책임을 어디에 귀속시키는지를 어떻게 설계했는가에서 비롯된다. 이 글은 일본과 한국을 ‘절차 중심 행정’과 ‘결과 중심 행정’이라는 동일한 분석 축 위에 놓고, 제도가 실제 일상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며 시민과 공무원의 선택을 어떻게 유도하는지를 구조적으로 살펴본다.

절차의 법적 위치와 공무원 재량의 범위
일본의 행정에서 절차는 단순한 행정 순서가 아니라, 행정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정당성의 근거로 기능한다. 「행정절차법(行政手続法)」은 행정의 공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으며, 절차 준수 여부는 행정 행위의 합법성과 책임 판단에서 가장 먼저 확인되는 요소다. 이 구조에서 공무원의 재량은 사전에 규정된 범위 안에서만 허용되고, 규칙을 벗어난 판단은 결과가 긍정적이더라도 위험 요소로 기록될 수 있다. 즉, 문제를 해결했는지보다 절차를 지켰는지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절차는 보호 대상이며, 행정은 이 절차가 반복 가능하고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도록 유지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반면 한국 역시 「행정절차법」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 행정 현장에서는 절차가 문제 해결을 위한 운영 수단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고도 성장기와 압축 행정의 경험 속에서 신속성과 효율성은 중요한 행정 성과로 자리 잡았고, 공무원의 판단에는 규정 외에도 상황의 긴급성, 민원의 강도, 사회적 파급 가능성이 함께 고려되어 왔다. 그 결과 절차 일부의 조정이나 우회가 현실적 판단으로 용인되는 경우가 존재하며, 절차는 고정된 기준이라기보다 상황에 따라 조율 가능한 장치로 기능한다.
민원 처리의 실패 기준과 예외 처리 방식
민원 처리 과정에서 무엇이 실패로 간주되는지는 행정 시스템의 성격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다. 일본에서는 절차 미준수가 가장 큰 실패다. 민원이 접수되고 검토되며 결과가 통지되는 일련의 흐름이 규정대로 이루어졌는지가 우선 확인되고, 그 결과가 시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절차가 유지되었다면 행정 책임은 제한된다. 예외는 제도 밖의 임기응변이 아니라, 제도 안에서 별도로 명문화된 ‘특별 조치’로 관리되며, 예외 적용 자체가 보고와 감독의 대상이 된다. 이는 행정이 예외를 허용하되, 그 예외조차 규칙 속에 가두려는 설계다. 반면 한국에서는 문제 미해결이 가장 큰 실패로 인식되기 쉽다. 절차를 모두 지켰다는 사실만으로는 행정의 책임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으며, 실제로 문제가 해결되었는지가 평가의 핵심 기준으로 작동한다. 이 과정에서 전화, 방문, 비공식 조정 등 공식 절차 외의 경로가 병행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외는 별도로 분리되기보다 현장 판단 속으로 흡수되며, 해결 과정의 일부로 기능한다. 이러한 구조는 일본이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축적해 온 반면, 한국이 상황 대응력과 유연성을 축적해 왔다는 차이를 만들어냈다.
행정 신뢰, 책임 귀속, 그리고 시민의 위치
행정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는 기준 역시 제도의 설계에 따라 달라진다. 일본에서 시민은 동일한 사안에 동일한 절차가 적용되는지를 통해 행정을 신뢰한다. 개인적 만족이나 즉각적인 해결 여부보다 시스템의 일관성이 중요하며, 책임은 개인보다는 제도와 규칙 차원에 남는 구조를 갖는다. 절차를 지켰다면 공무원 개인의 책임은 제한되고, 문제는 규칙의 설계와 운영 방식으로 환원된다. 반면 한국에서는 시민이 체감하는 결과가 신뢰의 핵심 기준으로 작동한다. 실제로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생활상의 불편이 해소되었는지가 중요하며,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책임은 개인이나 조직으로 집중되기 쉽다. 이 차이는 어느 제도가 더 우수한가를 판단하기 위한 근거가 아니라, 제도가 시민과 공무원에게 요구하는 역할의 차이를 보여준다. 같은 시민이라도 일본의 제도 안에 들어가면 절차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되고, 한국의 제도 안에 들어가면 해결을 요구하고 조정을 시도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독자는 이 지점에서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는 관찰자의 위치를 벗어나, 각 제도 안에 들어간 사용자로서 자신의 행동을 상상하게 된다. 행동의 차이는 개인의 성격이나 문화적 기질이 아니라, 제도가 설계한 합리성의 결과이며, 행정 제도는 시민에게 서로 다른 방식의 합리적 선택을 요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