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생활하거나 일해본 사람들은 비슷한 장면에서 전혀 다른 긴장감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일본에서는 규칙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상황 설명과 조정이 먼저 이루어지고, 한국에서는 규칙이 명확하게 제시되며 그 적용 여부가 빠르게 문제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차이는 흔히 문화나 국민성, 혹은 개인의 태도 차이로 설명되지만, 실제로는 규칙이 어떻게 설계되었고 어떤 경로로 작동하도록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지 않으면 설명이 어렵다. 규칙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무엇을 먼저 보고, 무엇을 나중에 판단할지를 미리 배열해 둔 제도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특히 행정, 조직, 학교처럼 개인이 규칙을 선택할 수 없는 영역에서는 이 차이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어떤 제도에서는 규칙이 ‘판단을 시작하기 위한 기준’으로 기능하고, 어떤 제도에서는 규칙이 ‘조정을 진행하기 위한 배경’으로 작동한다. 이 글은 일본과 한국의 규칙을 감정적 인상이나 평가 언어로 비교하지 않는다. 대신 규칙의 법적 성격, 제정자와 현장 사이의 거리, 재량의 위치, 위반 이후의 처리 경로라는 동일한 분석 축을 통해, 왜 두 사회에서 규칙 앞에 선 개인의 행동 전략이 달라지는지를 구조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규칙의 성격과 현장까지의 거리
일본의 규칙은 법과 명령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법적 구속력이 약하거나 없는 지침, 권고, 내부 기준이 규칙 체계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예가 행정지도인 行政指導(ぎょうせいしどう)이다. 이는 법 위반을 바로 제재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대방의 자발적 협력을 통해 문제를 조정하는 장치로 설계되어 있다. 일본의 행정절차법은 행정지도가 강제 수단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지도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주는 것을 금지한다. 규칙은 여기서 ‘지켜야 할 최종선’이 아니라, ‘조정을 시작하기 위한 공통 언어’로 기능한다.
한국에서도 행정지도는 존재하지만, 규칙 전반의 성격은 보다 강한 기준 설정에 가깝다. 규칙은 판단의 출발점이 되며, 위반 여부가 먼저 확인된다. 행정, 조직, 학교에서 규칙은 현장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참고 자료라기보다, 적용 여부를 가르는 기준선으로 작동한다. 이 차이는 규칙 제정자와 현장 적용자 사이의 거리에서도 나타난다. 일본에서는 중앙에서 정한 규칙이 현장에서 조정될 수 있다는 전제가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반면, 한국에서는 현장 판단이 규칙 일탈로 해석될 위험이 더 크게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규칙은 현장을 포함한 구조로, 한국의 규칙은 현장을 통제하는 구조로 설계되는 경향을 보인다.
재량의 위치와 위반 처리 경로
재량, 즉 裁量(さいりょう)이 제도 안에서 어디에 놓여 있는지는 규칙 체감의 핵심이다. 일본에서는 재량이 명문화되지 않아도 제도의 전제처럼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규칙 위반이 발생했을 때 곧바로 개인 책임을 특정하기보다, 조직 내부에서 조정하고 수습하며 재발 방지를 도모하는 경로가 먼저 열려 있다. 이 과정에서 규칙은 판단을 억제하는 장치가 아니라,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으로 기능한다. 누가 잘못했는지를 가리기보다,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가 우선 질문이 된다.
한국에서는 재량이 제도적으로 허용된 범위 안에 있을 때만 안전하다. 규칙 위반은 즉시 판단 대상이 되며, 사실 확인과 책임 귀속이 빠르게 진행된다. 재량은 문제 해결의 자원이기보다, 사후 책임을 떠안을 위험 요소로 인식되기 쉽다. 이 때문에 규칙이 모호한 상황에서도 규칙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같은 상황에서도 일본에서는 판단을 시도한 사람이 제도 안에서 보호받을 가능성이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판단을 최소화한 사람이 보호받기 쉽다. 이 차이는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규칙 위반 이후에 열리는 처리 경로의 구조적 차이에서 비롯된다.
공정성의 정의와 규칙을 대하는 사람의 위치
규칙과 공정성이 연결되는 방식 역시 두 사회에서 다르게 설계되어 있다. 일본에서 공정성은 동일한 결과보다는 관계의 안정과 설명 가능성에 가깝다. 같은 규칙 아래에서도 상황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으며, 그 차이가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면 제도적으로 수용된다. 규칙은 고정된 기준이기보다는, 관행과 합의를 통해 서서히 조정되는 도구로 취급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규칙을 앞세워 주장하기보다, 분위기와 맥락을 조정하는 행동이 합리적인 전략이 된다.
한국에서 공정성은 동일 규칙의 동일 적용과 강하게 결합된다. 규칙이 다르게 적용되는 순간, 불공정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규칙의 변경이나 완화는 법령·내규 개정이라는 공식 절차를 거쳐야 하며, 그 이전까지는 규칙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이 구조에서는 규칙을 근거로 말하는 사람이 보호받는다. 결국 일본과 한국의 차이는 규칙의 우열이 아니라, 규칙이 개인을 어떤 위치에 세우는가의 차이다. 당신이 규칙 앞에서 조정자가 되기를 요구받는지, 아니면 규칙을 근거로 발언하는 주체가 되기를 요구받는지는 성격이 아니라 제도 설계의 결과다. 이 글을 읽고 자신이 속한 조직의 규칙을 바라보는 위치가 조금 달라졌다면, 규칙은 이미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구조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